産銀·캠코 등 '高임금 베짱이' 솎아낸다

    입력 : 2015.11.05 09:49

    [금융公기업 성과급 비중 연봉 30%로 높여… 시중銀 확대 유도]


    지점장급 이상 관리직 바로 시행, 성과와 무관 '무늬만 연봉제' 개선
    생산성 낮은데 인건비 비중 높아 高비용탓에 정규직 채용 못늘려


    경기도 성남의 A은행 지점에서 근무하던 40대 고참 차장 박모씨는 지난 3년간 대출, 예금, 펀드 등 상품 판매 실적이 한 건도 없었다. 지각은 예사로 했고, 근무 시간에 온라인 바둑을 두는 지경이었다. 20~30분마다 담배 피운다며 자리를 비웠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농땡이'였다. 박 차장은 이러고도 1억원 넘는 급여를 받았다.


    서울 강북의 B은행 지점에 근무하던 이모 과장은 2년 전부터 주식 투자에 빠져 근무 시간에 스마트폰을 붙들고 주식 투자에 몰두하고 있다. 이 과장의 급여는 연 8000만원이 넘는다.


    C은행의 한 지점에는 '화장실'이라는 별명을 가진 여직원이 있다. 복잡한 대출 상담 등이 떨어질 것 같으면 화장실 간다고 자리를 피하기 때문이다. 이들을 은행에서는 '승포자(승진포기자)'라고 부른다. 승진을 포기하고, 제멋대로 지내면서도 월급은 호봉제에 따라 다른 직원들과 똑같이 받는다. 시중은행 인사 담당 임원들은 "10명 중 1~2명꼴로 이렇게 놀고먹는 직원들이 있다"고 말한다.



    이런 베짱이 은행원들이 화이트칼라 대표 직장인 은행에서 버틸 수 있는 것은 업무 성과와 무관하게 고임금을 받는 연공서열 위주의 '호봉제' 덕분이다. 현재 우리나라 은행들은 노조의 반대로 지점이나 부서 단위의 집단평가만 하고, 개인별 평가를 하지 않고 있다. 예컨대, 한 지점의 성과급 등급이 정해지면 모든 직원이 같은 대우를 받는다. 이래서 무임승차가 가능하다.


    ◇국책은행 성과급 비중 30%로 높여라


    금융위원회는 이런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우선 올해 안에 산업·수출입·기업은행 등 3개 국책은행과 예금보험공사,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캠코(자산관리공사), 주택금융공사 등 금융공기업을 대상으로 성과급 비중을 높이도록 할 방침이다. 산은 등 일부 금융공기업은 "연봉제를 시행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무늬만 연봉제'에 불과하다. 정부 관계자는 4일 "당장 연봉제를 전면 실시하기 힘들다면, 국책은행과 금융공기업의 급여 가운데 17%에 불과한 성과급 비중을 30%로 높이도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지점장급 이상 관리직에 대해서는 곧바로 시행토록 하고, 노조 동의가 필요한 차장급 이하 직원들에 대해서도 정부가 대주주 자격으로 성과급 비중을 상향 조정하도록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는 국책은행 등이 성과급 비중을 높이는 방식으로 실질적인 연봉제로 전환하면, 민간 은행에도 파급 효과를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 민간 은행에서 성과급 비중은 임금의 13%에 그친다, 일부 은행에서 연봉제 도입의 사전 작업으로 개인별 평가제를 도입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노조의 반대로 진척이 안 되고 있다. 지난달 말 국민은행이 개인별 실적 조회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는데, 노조가 "개인별 평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반발하면서 담당 부행장의 출근을 저지하는 바람에 이 시스템 도입 논의는 잠정 중단됐다.


    ◇'베짱이 은행원'생산성도 갉아먹는다


    고임금-저효율의 베짱이 은행원들은 은행의 생산성도 갉아먹고 있다. 전국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시중은행 7곳(신한·KB·우리·구 하나·구 외환·SC·씨티)의 직원 1인당 평균 생산성은 지난 2004년 1.91에서 2014년 0.63으로 떨어졌다. 10년 전에 비해 3분의 1 수준이다. 이 지경인데도 매년 호봉이 높아지니 평균 임금은 올랐다. 같은 기간 1인당 평균 임금이 5620만원에서 7928만원으로 뛰었다. 지난해 기준으로 은행원 4명 중 1명이 억대 연봉자다.


    이런 고액 연봉 탓에 우리나라 은행들은 영업 활동 전반에 들어가는 판매관리비 중 인건비 비중이 매우 높다. 미국 은행(투자은행 제외)의 경우 45.5%인데, 국내 은행은 62.2%에 달한다. 고비용 구조를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워진 은행들은 정규직 채용을 줄이는 식으로 대응한다. 90년대까지 한 해 1000명씩 대졸 행원을 뽑던 대형 은행들이 요즘엔 연 200명도 채용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