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1.12 09:29
[4대 시중은행 전문직 신용대출 잔액 3년새 23% 증가]
최저 2%대 금리 앞세워 전문직·공무원 시험 갓 합격한 사람들에 판촉
펀드판매·카드 발급… 추가 실적 올리기 위해 역마진 감수하면서 영업
최근 세무사 시험에 합격한 김모(30)씨는 서울의 한 시중 은행 지점에서 주최한 세무사 합격자 대상 설명회에 다녀왔다. 세무사 생활에 대한 설명과 진로 상담을 해준다는 것이 설명회 취지였다. 그런데 쉬는 시간에 은행 직원들이 강연장에 들어와 마이너스 통장(신용 한도 대출) 영업을 시작했다. 40대 은행원이 앞에 나와 "이번 마이너스 통장은 특판으로 나온 저금리 상품"이라고 소개하면서 "일 시작하면 이래저래 돈 쓸 일도 많은데, 이번 기회 놓치면 1~2%포인트 높게 이자를 내야 하기 때문에 지금 해놓는 게 좋다. 당장 돈 필요 없으면 안 쓰면 그만"이라고 설득했다. 마이너스 통장 개설 조건은 5000만원 한도(취업하면 1억원으로 증액)에 연금리 3.23%의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설명과 함께 다른 은행원들은 마이너스 통장 개설에 필요한 서류와 펜이 든 종이봉투를 빠르게 나눠줬다. "형광펜으로 표시된 곳에 체크하고 서명만 하면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절차를 밟겠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이날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한 김씨는 "금리도 매우 낮고, 신청 절차도 편리해 안 할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
◇은행들, 전문직 등에게 마이너스 통장 공세
은행들이 최근 전문직과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공격적인 마이너스 통장 영업에 나서고 있다. 세무사를 비롯해 회계사·변호사·의사·교사·감정평가사 등이 주대상이다. 지난달 기준으로 4대 시중 은행(신한·국민·KEB하나·우리)의 전문직 신용 대출(마이너스 통장 포함) 잔액은 9조879억원으로 2012년 말(7조3879억원)보다 23% 증가했다.
은행이 마이너스 통장 영업을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접근하는 대상은 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사회 초년생들이다. 서울 노량진 고시촌에 있는 은행 지점들은 7·9급 공무원이나 경찰 공무원 합격자 등을 대상으로 특판 상품을 자주 내놓는다. 한 은행 직원은 "전문직·공무원 시험에 갓 합격한 사람 중에는 오랜 수험 생활에 지쳐 자유롭게 돈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아 설득하기도 쉽다"고 말했다.
한도 내에서 아무 때나 돈을 꺼내 쓰는 상품인 마이너스 통장의 경우 대출 금리가 통상 일반 신용 대출(만기 일시 고정형)보다 1%포인트 정도 높다. 그런데 우량 고객을 대상으로 한 은행의 마이너스 통장 금리는 연 3%대 후반~4%대 초반에 불과하고, 특판 상품일 경우는 연 2%대 중반~3%대 초반까지 떨어지기도 한다. 일반 은행 고객보다 최대 3~4%포인트가량 낮은 초저금리를 제시하는 것이다.
◇부수 거래가 목적
은행이 역마진을 감수하면서까지 마이너스 통장 영업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 부수 거래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하면 은행 지점 입장에서는 이른바 '활동성 고객(수신 평잔 30만원 이상 등 금융 활동을 하는 소비자)'이 늘고, 펀드 판매나 카드 발급 등의 추가 실적을 올리기 쉽다. 은행들이 적극 유치하고 싶어하는 급여 이체를 끌어 올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러한 부수 거래는 모두 지점 성과 지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평가 요소들이다. 한 시중 은행 인사 담당 임원은 "연간 실적이 낮은 지점장은 직위를 박탈당하고, 후선으로 빠져 홀로 영업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에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지점장들이 인맥을 총동원해 대규모로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하는 '뭉텅이 영업'이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