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1.13 09:38
[韓銀, 5개월째 금리 年 1.5%로 동결한 까닭은]
- "금리 내려봐야 효과 없다" 판단
1130조 넘는 가계빚은 내수 위협… 저금리로 연명하는 좀비기업도
기업 구조조정에 걸림돌로 작용, 더이상 추가 금리인하 없을듯
이주열〈사진〉 한국은행 총재가 5개월째 멈춰섰다. 12일 이 총재가 주재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만장일치로 기준 금리를 현행(연 1.5%)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6월 이후 5개월째 동결이다. 지난해 취임한 이후 경기 부양을 위해 작년 8월부터 올 6월까지 총 1%포인트를 내려 2.5%였던 기준 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낮췄던 이 총재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금리 인하가 더 이상 경기를 살리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점인 경기 부양은 기대하기 어렵고, 약점인 가계부채 급증만 확대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저금리가 장기화되면서 '좀비기업'을 연명시켜 기업 구조조정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지적까지 받는다.
이 총재는 이날 "그동안은 경제의 모멘텀(동력)을 살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해서 저금리를 유지했다. 저금리의 부작용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이제는 성장 모멘텀도 중요하지만, 가계부채 관리와 한계기업 구조조정 등을 병행해야 한국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이런 인식을 갖고 있고, 한은도 동의한다고 했다. 5개월째 멈춰선 것은 방향을 정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방향을 바꾸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다. 당장 금리를 올리지는 않겠지만, 다음 발걸음은 금리 인하 쪽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고 한은 고위 관계자는 밝혔다.
◇금리 인하론 더 이상 경기 부양 못 한다
이 총재는 경기 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다. 그는 이날 금통위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수출 부진은 경기적 요인만 아니라 이제는 구조적 요인도 같이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수출 부진은 통화정책으로 대응할 수 없는 문제다. 금리 인하가 어느 정도는 환율 상승에 영향을 미쳐 수출 증대에도 영향을 준다. 그렇지만, 환율과 수출의 상관관계가 약해지고 있다. 가격 경쟁력만 아니라 기술 경쟁력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수출 부진은 금리 인하로 환율 상승을 만들어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내수가 호전되면서 우리 경제가 '완만한 회복세'를 보인다고 했다. 지난 3분기(7~9월) 성장률이 1.2%로, 6개 분기 만에 0%대 성장률에서 벗어난 것은 수출이 아니라 전적으로 내수의 힘이었다. GDP 성장률(1.2%) 가운데 내수 기여도는 1.9%, 순수출(수출에서 수입을 뺀 것) 기여도는 -0.7%였다. 이런 내수를 위협하는 것이 113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다. 삐끗할 경우 급격한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경기 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를 요구했던 정부도 태도를 바꿨다. 한은 관계자는 "기획재정부 쪽에서도 금리 인하에 대한 압박이 사라진 지 꽤 된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를 둘러싼 대외 환경 변화가 임박한 것도 이유다. 다음 달로 예고된 미국의 금리 인상이 몰고올 글로벌 금융 시장의 소용돌이를 헤쳐나가야 한다.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저금리의 한국에서 달러가 빠져나갈 위험에 대비하려면 더 이상의 금리 인하는 어렵다는 것이 이 총재 생각이다. 이 총재는 "미국의 금리 인상 그 자체로는 우리 경제에 큰 영향이 없지만, 중국 경제 둔화나 신흥국의 금융 위기 등이 중첩되면 어떤 상황이 닥칠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의 금리 인상에 대응해) 한국은 2017년 중순까지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경제 체질 개선을 타깃으로 삼는다
이 총재는 가계부채에 대해 "당장 위험한 정도는 아니지만,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정부가 좀 더 관리를 강화해야 하고, 한은도 역할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관점에서 추가적인 금리 인하 가능성은 낮아질 수 밖에 없다. 저금리가 '좀비기업'을 연명시켜 기업 구조조정을 더디게 만든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날 명확하게 "그런 점이 있다"고 못 박았다. 그는 "한계기업이 늘어나는 것은 기본적으로 업황, 경기 부진에 따른 것인데 저금리 기조의 장기화도 일정 부분 작용한 것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금리 (인하)정책은 부정적 효과도 있을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이 총재는 경제 체질 개선이 지연되면서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는 데 대한 우려도 내비쳤다. 그는 "글로벌 외환위기 직후 3% 중반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낮아졌다. 2%대로 추락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투자 감소 등의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잠재성장률은 말 그대로 성장의 잠재력을 말한다. 수출 감소와 같은 일시적 요인보다 구조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