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1.19 10:01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외손자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47·사진)이 거침없는 경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하반기 들어 T커머스 업체인 드림커머스를 인수하고, 유통업계 최초의 간편결제 서비스인 ‘SSG페이’를 출시한 데 이어 11월 14일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는 서울 시내면세점 특허권까지 획득했다.
최근 정 부회장이 가장 집중하고 있는 분야는 브랜드 유치와 PL(자체 상표) 제품 개발이다. 드림커머스 인수, 시내 면세점 오픈 등으로 그룹 내 유통 채널 인프라가 계속 확장되고 있어서다. 재계 관계자들은 "2016년은 정용진이 이끄는 신세계가 한 단계 도약하는 해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 면세사업자 선정 직후 미국행… 오리건에서 시카고까지 '종횡무진'
14일 오후 치열한 경쟁 끝에 신세계가 서울 시내면세점 사업자로 선정됐다. 그러나 ‘20년 숙원’이 성사된 기쁨을 누리는 것은 잠시뿐. 정 부회장은 결과가 발표된 지 5시간여 만에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머물며 유명 카페, 디저트 가게 등을 탐방하기 위해서다. 며칠 뒤엔 일리노이주 시카고로 건너가 자체상표 박람회(Private Label Trade Show)에도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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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자체상표 박람회 행사장 전경. / 정용진 부회장 SNS 캡처
정 부회장의 동선을 보면 그가 어떤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정 부회장은 18일 자신의 SNS를 통해 시카고에서 열리는 자체상표 박람회 현장을 공개했다. 세계PL제조사협회(PLMA)가 개최하는 '2015 Private Label Trade Show "Store Brands and Beyond."'에 참석한 것이다.
"2만보 걸음. 눈에 불을 켬.", "협상 중. 많이 살 테니 반값에 주라, 곤란한데 ㅠㅠ." 등 익살스러운 사진 설명도 붙였다. 시카고에서 열린 이 행사는 매년 5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11월 미국 시카고, 12월에 중국 상해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PL전시회다.
시카고에 도착하기 전엔 미국 반대편에 있는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머물며 유명 카페, 디저트 가게 등을 탐방했다. 정 부회장은 한국엔 없는 피자맛 음료수를 맛보고 평을 전하는 등 SNS로 대중과 소통하며 최신 트렌드를 체크했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정 부회장이) 개인 일정을 잡아 토요일에 미국으로 출국했다"며 "PL박람회 행사 등에 참여해 새로운 트렌드 등을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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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용진 신세계 그룹 부회장이 18일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자체상표 박람회에 참석해 현지 관계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정용진 부회장 SNS 캡처
해외 출장을 통해 견문을 넓히고 새로운 브랜드를 국내에 들여오는 것은 정 부회장의 특기다. 미국 유학 시절 즐기던 스타벅스를 들여와 2000년 스타벅스코리아를 설립한 것이 대표 사례다. 외국의 다양한 쇼핑공간을 직접 경험한 후 신세계 프리미엄 아울렛, 이마트타운 등에 적용하기도 했다. 최근엔 그 발걸음이 더 빨라지는 추세다. 정 부회장은 이미 올해 10월까지 3차례 해외 출장길에 올라 미국, 유럽 등을 돌아봤다.
◆ PL상품 호평… 경영 일선서 진두지휘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정 부회장의 적극적인 경영 행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3세 경영인'이란 꼬리표를 떼고 본인이 관심을 가진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정 부회장은 2014년 12월 신세계푸드와 신세계SVN을 합병해 베이커리 사업부를 추가하는 등 그룹 내 '식음료' 사업재편을 진두지휘했다. 신세계푸드는 이마트 PL 브랜드인 '피코크(Peacock)'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데, 최근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적도 크게 개선됐다. 신세계푸드의 올 상반기 매출은 4315억원, 영업이익은 98억원으로 작년 대비 36.6%, 229.5% 증가했다.
정 부회장은 소비자들의 취향을 분석하기 위한 싱크탱크 설립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마트는 8월부터 서울 성수동 이마트 본사에 '비밀 연구소'란 이름의 싱크탱크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면세점 사업자 결과 발표 하루 전날인 11월 13일 비밀 연구소를 직접 방문해 신품종 배추를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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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촌진흥청에서 개발하고 이마트 계약농가에서 시험생산한 신품종 배추. / 정용진 부회장 SNS 캡처
서울 시내면세점 특허 취득 과정도 마찬가지다. 정 부회장은 직접 사업계획서의 인사말을 작성하며 강한 면세 사업권 획득 의지를 드러냈다. 11월 5일엔 대졸 신입사원의 연수캠프에 참석해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비슷한 면세점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오직 신세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놀랄만한 콘텐츠로 가득 찬, 지금까지 세상에 없던 면세점을 선보여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올해 7월 T커머스(TV 데이터방송 홈쇼핑) 업체인 드림커머스를 인수하고, 유통업계 최초의 간편결제 서비스인 'SSG페이'를 론칭한 것도 정 부회장의 작품이다. 신세계그룹은 11월 13일 T커머스 채널의 브랜드명을 기존 '드림앤쇼핑'에서 '신세계쇼핑'으로 바꾸고 본격적으로 T커머스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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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커머스 업체 신세계쇼핑. / 신세계쇼핑 홈페이지 캡처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정 부회장이 PL사업·면세사업 등을 통해 경영 능력을 입증하고 있다"며 "쌍둥이 아버지가 된 것을 비롯해 최근 좋은 일이 잇따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 부회장은 1968년 정재은 신세계 명예회장과 이명희 신세계 회장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경복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를 1년 다니다 미국으로 건너가 브라운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1994년 귀국 후 한국후지쯔 유통사업부에서 1년간 근무했다. 1995년 신세계 전략기획실 전략팀 대우이사로 입사해 2010년 3월 5일 주주총회를 통해 대표이사로 선임, 15년 만에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