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포가 활짝 피었습니다

    입력 : 2015.11.26 10:14

    압구정·대치동 제치고 최고 富村 등극


    서울의 '부촌(富村) 지도'가 바뀌고 있다. 과거엔 명문 학군이 집중된 강남구 압구정·대치·도곡동이 전통 부촌을 상징하며 집값이 비쌌다. 하지만 최근 들어 서초구 반포동이 신흥 부촌으로 떠오르고 있다. 올해 서초구 반포동에 재건축 아파트가 잇따라 들어서고 분양가가 3.3㎡당 4000만원을 넘어서면서 명실상부한 최고가(最高價) 주거지로 자리를 굳혀가는 모앙새다.



    ◇'강남 맹주' 반포로 이동


    과거 서울 강남의 대표적인 부촌은 압구정동이었다. 정부의 '강남 개발'과 함께 조성된 압구정동은 1975년 현대·한양 등 1만355가구의 아파트가 순차적으로 들어서면서 '강남 1번지'로 불렸다. 압구정에는 수입차를 몰고 "야, 타!"라고 말하면서 여성을 유혹하는 남성이 많다고 해 '압구정 오렌지족'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당시 한강변에 인접한 반포동도 부촌 반열에 오르기는 했지만 압구정을 제치지는 못했다.


    20년 가까이 강남 부촌을 상징하던 압구정은 1990년대 후반이 되면서 명문 학군과 학원가가 조성된 대치·개포동에 '강남 맹주(盟主)' 자리를 넘겨줬다. 2002년엔 강남구 도곡동에 최고급 주상복합단지인 타워팰리스가 입주하면서 도곡·대치동이 서울에서 가장 비싼 지역으로 꼽혔다.


    하지만 2008년과 2009년 '반포 자이'와 '반포 래미안퍼스티지'가 들어서면서 반포동의 반격이 시작됐다. 최근에는 반포의 오래된 아파트들이 잇따라 재건축하며 시세가 급상승해 강남 최고 부촌에 등극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압구정에서 서초동 삼풍아파트, 대치동 청실아파트, 도곡동 타워팰리스로 옮겨가던 최고 부촌 지형도가 최근 반포동으로 이동했다"며 "고속터미널과 인접해 편리한 교통, 신흥 명문 학군 등이 있어 반포동의 인기가 높다"고 했다.



    ◇반포동 분양가 치솟아


    반포동의 최고 부촌 등극은 아파트 매매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부동산114는 "11월 현재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아파트 3.3㎡당 평균 매매가는 3928만원으로 압구정동과 대치동, 도곡동보다 높다"고 밝혔다. 반포동 아파트값은 2012년까지 압구정동에 비해 3.3㎡당 100만~300만원 정도 저렴했다. 하지만 2013년부터 엇비슷하게 시세를 형성하더니 올해는 압구정(3867만원)보다 60만원 정도 비싸게 거래된다. 강남구 대치동(3385만원)이나 도곡동(2880만원)과 비교하면 500만~1000만원 정도 차이난다. 올해 7월까지 서울에서 거래된 20억원 이상 아파트 중 가장 거래가 많았던 곳도 반포동이다. 부동산 리서치 업체인 '리얼투데이'가 국토교통부의 아파트 실거래가 총액을 분석한 결과,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서 거래된 20억원 이상 아파트는 총 92건으로 집계됐다. 압구정동은 47건, 도곡동은 28건, 대치동은 9건 거래하는 데 그쳤다.


    신규 아파트 분양가도 반포동이 최고(最高)다. 이달 반포동에서 분양 중인 '반포래미안아이파크'는 3.3㎡당 평균 분양가가 4240만원으로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신반포로 불리는 잠원동을 포함한 반포 일대엔 앞으로 3.3㎡당 평균 분양가가 4000만원이 넘는 단지가 우후죽순 등장할 것"이라며 "이는 서울 다른 강남 지역에서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강변에 새 아파트 수요 많아"


    반포동이 최고 부촌이 된 이유는 '한강변 재건축 새 아파트'라는 장점 때문이다. 압구정 아파트들도 한강변이지만 재건축 추진이 지지부진하다. 권일 부동산인포 팀장은 "반포는 서울에 지정된 13개 고밀도 재건축지구 중 사업 추진이 가장 빠른 곳"이라며 "한강이 보이는 새 아파트에 대한 수요층이 탄탄해 가격 상승세가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2008년과 2009년 분양한 '반포 자이'와 '반포 래미안퍼스티지'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반포동 전체의 시세를 견인한 측면도 있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자이와 래미안퍼스티지, 2013년 분양한 아크로리버파크 등이 높은 경쟁률을 보이며 흥행하고 시세도 상승하면서 주변 집값도 동반 상승했다"며 "흥행한 랜드마크를 중심으로 추가 수요가 몰리면서 가격 상승이라는 순환 구조를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강남 테헤란로와 가깝다는 입지도 중요하다. 반포동엔 주로 젊은 기업 임원이나 IT(정보기술) 업체 대표 등 신흥 부자들이 많이 산다. 압구정동과 개포동에는 전통적인 자수성가형 자산가들이 많이 살고, 대치동엔 자녀 교육 목적으로 사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반포동은 강남 테헤란로·용산과 가깝고 교통도 편리해 한창 일할 나이의 신흥 부자들이 몰린다는 것이다. 함영진 센터장은 "반포는 뉴욕의 맨해튼이나 도쿄의 롯폰기힐스같이 도심을 재정비해 주거 환경이 쾌적하고 강남 테헤란로나 여의도 등 핵심 업무단지와도 가깝다는 이점이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당분간 반포동의 독주(獨走)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양지영 리얼투데이 리서치실장은 "올해와 내년에도 반포동에 지속적으로 재건축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반포동이 확고한 '부촌 1위'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며 "대치동에 비해 학군도 떨어지지 않아 인기는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남수 신한금융투자 부동산팀장은 "압구정동이나 청담동, 대치동 등 오래된 아파트가 재건축을 본격화하면 부촌 지도가 다시 바뀔 가능성이 있다"며 "가장 잠재력이 높은 곳은 압구정이지만 재건축이 쉽지 않아 당분간 반포의 독주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