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1.27 09:36
10만원대 가상현실기기… 삼성전자 '기어VR' 내놔
구글은 카드보드 설계도 공개… 1만원 이하에 구매 가능
가상현실(VR)이 빠르게 우리 생활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가상현실을 즐길 수 있는 기기는 마니아들의 장난감처럼 여겨졌다. 가격이 비싸고, 막상 기기를 사도 볼 만한 콘텐츠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가상현실 대중화 시대 열린다
최근 들어 상황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10만원대 가상현실 기기 '기어VR'을 내놨다. 스마트폰을 결합하고 머리에 덮어쓰는 형태의 이 기기는 이전 모델보다 성능은 높이고, 가격은 절반 수준으로 확 낮췄다. 기존 제품은 24만9000원으로 선뜻 지갑을 열기 어려웠다. 신제품은 12만9800원에 내놓았다. 일반인도 '한 번 사볼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가격이다. 삼성전자는 "높은 범용성과 합리적인 가격을 갖춘 기어VR이 가상현실 기기의 대중화를 선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상현실을 보여주는 콘텐츠도 대폭 확충했다. 삼성은 기어VR 신제품을 내놓으면서 놀이공원 에버랜드에 있는 놀이기구를 실제로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영상을 대거 공개했다. 콘텐츠 부족에 목말라하는 사용자들을 위한 것이다. 거실에 앉아서도 시속 104㎞로 달리는 롤러코스터 'T익스프레스'를 타고, 바로 옆에서 사자나 호랑이 같은 맹수(猛獸)가 달려드는 '사파리 투어'를 즐기는 식이다. CJ E&M과 손잡고 가요 프로그램을 360도 영상으로 제작해 마치 공연장 한복판에 와 있는 듯한 체험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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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 9월 일본 지바(千葉)에서 열린 도쿄게임쇼에서 참가자들이 삼성전자의 '기어VR'로 가상현실 게임을 즐기고 있다(왼쪽). 올 5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구글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한 참가자가 골판지로 만든 구글의 가상현실 기기 '카드보드'를 들여다보고 있다. / 블룸버그
◇거실에서 놀이공원·공연장 체험
실제로 기어VR을 머리에 쓰고 가상현실 콘텐츠를 실행해봤다. 에버랜드의 롤러코스터 'T익스프레스'를 선택하자, 어느새 가장 무섭다는 열차 제일 앞자리에 내가 앉아 있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옆자리는 비었고, 뒤를 돌아보니 겁에 질린 여성이 '꺄악꺄악' 소리를 지르고 있다. 롤러코스터는 덜컹덜컹 소리를 내면서 레일을 타고 위로 올라갔고 그때마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도 실제처럼 들렸다. 정점에 도달한 뒤 빠르게 솟구쳐 내려갈 때는 가상(假想)이지만 잠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 좌우로 격렬하게 흔들리는 진동이 없다보니 실감(實感)은 덜했다. 어찌 됐든 굳이 경기도 용인까지 가지 않고도 내 집 소파 위에서 놀이공원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은 강점이다.
CJ E&M의 공연 영상은 여러 번 봐도 질리지 않을 만큼 생생했다. 눈앞에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에 걸그룹이 나와서 공연을 펼친다. 공연 현장에 가는 것보다 더 현장 같은 생생함이 있다.
가상현실 콘텐츠는 현재 게임 산업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또 우주탐험·뉴욕여행 등 여행 콘텐츠를 비롯해 쇼핑·광고·의료 분야에서도 이 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성인용 산업도 음지(陰地)에서 가상현실을 새로운 기회로 삼고 있다.
◇단돈 1만원으로도 가상현실 즐긴다
콘텐츠가 늘면 기기에 대한 수요도 자연히 늘어난다. 문제는 누가 이 시장을 빨리 선점(先占)하느냐다. 세계 최대 인터넷기업 구글은 골판지로 만든 저가형 VR기기 '카드보드(Cardboard)'로 일단 시장 장악에 나선 상태다. 구글은 설계도를 무료로 개방해, 전 세계 각종 기업들이 카드보드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1만원 이하의 가격에 온라인 쇼핑몰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카드보드는 넓적한 골판지와 렌즈 두 개로 구성돼 있다. 설계도대로 접기만 하면 보급형 가상현실 기기가 만들어진다. 저렴하게 가상현실을 맛볼 수 있어 제대로 된 기기를 구입하기 전에 맛보기용으로 적당한 수준이다.
구글은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을 사고파는 '플레이스토어'라는 앱 장터를 갖고 있다. 기기를 가진 사람이 많을수록 가상현실 앱을 구매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개발자들은 그 수익으로 다시 새로운 앱을 만드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구글은 앱 판매대금의 30%를 수수료로 받아서 돈을 번다. 아마존이 전자책(e북) 단말기 '킨들'을 싸게 판매하고 전자책 콘텐츠 판매로 돈을 버는 것과 마찬가지다. 구글은 올 3월부터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특정 장소의 360도 회전 동영상을 제공하며 VR생태계 구축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중국은 저가 공세
최근 부산에서 열린 게임전시회 '지스타 2015'는 마치 가상현실 전시회를 방불케 할 만큼 글로벌 기업들이 일제히 신제품을 선보였다. 소니엔터테인먼트는 머리에 쓰는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HMD)' 장비와 함께 5종의 가상현실 게임을 제공했다. 공포 게임을 선택하면 이용자는 두 손이 묶인 채 의자에 앉아 있고, 눈앞에서 범죄가 벌어지는 식이다. 소니는 가상현실 전용 게임기와 게임을 내년에 본격적으로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세계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페이스북 역시 2조원을 넘게 주고 인수한 가상현실 기기업체 '오큘러스'로 패권 장악을 꾀하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는 "가상현실이 페이스북의 미래"라고까지 얘기했다. 삼성의 기어VR 역시 오큘러스와 합작한 제품이다.
페이스북은 올 9월 '스타워즈' 예고편 동영상을 올리며 360도 기능을 처음 선보였다. 최근엔 저커버그 CEO가 평양 시내를 360도로 촬영한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가상현실 기기에 적합한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선보이는 것이다. 페이스북은 지인과 콘텐츠, 감정, 경험을 주고받는 공간이다. 저커버그는 "앞으로 (VR용) 안경을 끼고 다니면서 지인들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도 빼놓을 수 없다. 중국 업체들은 1만원대의 저렴한 VR기기를 선보이고 있다. 외관이 기어VR과 유사한 '폭풍마경(暴風魔鏡)'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최신 제품인 '폭풍마경3'의 가격은 99위안(약 1만8000원)에 불과하다. 인지도가 높은 중국의 샤오미 같은 기업이 진출하면 시장은 더 빠르게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 선점의 관건은 가격, 콘텐츠와 더불어 얼마나 이용자가 빠져들 수 있는 제품을 내놓느냐다. 가끔 소파에서 한두 번 시험 삼아 만지는 수준이라면 성공할 수가 없다. 삼성전자 고위 임원은 "사람들이 VR기기에서 충분히 몰입감을 느낄 수 있어야 습관처럼 쓰게 되고 사용시간도 길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ㅡ> 가상현실(virtual reality)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컴퓨터 기술로 사용자의 시각이나 청각·촉각 등을 자극해 마치 실제로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