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1.30 09:50
금융위원회는 지난 29일 국내 첫 인터넷전문은행 사업자로 카카오와 한국투자금융지주가 이끄는 카카오뱅크와 KT와 우리은행이 주도하는 K뱅크를 선정했다. 인터파크가 이끄는 I-뱅크는 홀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당초 금융권에서는 컨소시엄 2곳에 허가를 내주면 1곳의 체면만 구길 수 있다는 점을 들어 금융당국이 최종적으로 1곳에만 인가를 내 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하지만 금융개혁의 아이콘 처럼 여겨지는 인터넷 전문은행의 진출 문턱을 높이면 혁신적인 서비스가 나오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결국 두 곳에 허가를 내주는 방향으로 결론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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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뱅크컨소시엄은 25일 서울 명동 전국은행연합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인터넷전문은행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했다. 왼쪽부터 정성진 IBK기업은행 미래기획실장, 신승현 옐로금융그룹 부사장, 이상규 I-뱅크 컨소시엄 추진단장(아이마켓코리아 사장), 이용환 SK텔레콤 재무관리실장, 민승배 BGF리테일 사업지원실장, 정병석 NH투자증권 신사업부장./류현정 기자
인터파크는 금융위원회의 심사 결과 발표 이후 짤막한 보도자료를 내고 인터넷전문은행에 재도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도규상 금융위 금융서비스국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2차 접수 때는 인터파크 컨소시엄이 어느 컨소시엄보다 유리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세 컨소시엄 모두 중금리 대출을 골자로 하는 사업계획서를 제출해 핵심 전략이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I-뱅크가 홀로 탈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금융권은 그 이유를 크게 세가지로 보고 있다.
① 인터파크가 노린 자영업자 대출시장, 정부가 10월부터 속도 조절中
I-뱅크가 내세운 주요 사업모델 중 하나는 중소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틈새 대출시장'을 공략한다는 것이었다. 인터파크가 보유한 B2B쇼핑몰 '아이마켓 코리아'는 I-뱅크 컨소시엄의 주요 강점 중 하나로 꼽혀왔다. I-뱅크는 이 네트워크와 기업은행의 기업금융 노하우를 접목해 소상공인 및 중소기업 대출 시장에 특화된 수익 모델을 창출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경기침체 장기화로 자영업자 대출이 빠르게 부실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금융위도 29일 브리핑에서 I-뱅크가 탈락한 이유로 "자영업자에 집중하는 대출방식의 영업 위험이 크다"는 점을 꼽았다.
금융당국은 이미 지난 10월부터 개인사업자 대출의 집행상황과 여신심사 실태에 대해 한국은행과 공동검사를 벌이는 등 개인사업자 대출에 제동을 걸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들어 9월까지 개인사업자 대출은 23조3000억원 증가했다. 이는 2013년(17년1000억원)과 지난해(18조8000억원)의 연간 증가폭을 이미 뛰어넘은 규모다. 올해 9월 말 기준 개인사업자 대출 잔액은 총 232조6000억원으로 전체 중소기업 대출 잔액(554조6000억원)의 42%에 이른다. 개인사업자 대출은 정부통계에서 명목상으로는 기업대출로 분류되지만, 영세사업자들이 부담하는 빚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숨은 가계부채'로 여겨진다.
② 금융위기 때 방패막이 역할을 해줄 錢主가 없다
금융당국은 서류 심사 마지막 단계에서 인터넷전문은행 후보들의 금융위기 대응 능력을 집중적으로 점검했다. I-뱅크는 이 부문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카카오뱅크는 국민은행, K뱅크는 우리은행 등 시중은행이 금융위기 발생 시 방패막이 역할을 해주겠다고 나섰지만, I-뱅크는 기업은행이 아닌 대부업체 계열의 웰컴저축은행이 최대 주주 역할을 맡겠다고 나선 것으로 알려지며 논란을 빚었다.
평가 항목 중 사업모델의 혁신성이 1000점 만점 중 250점을 차지해 배점이 가장 높았다. 하지만 세 컨소시엄 모두 중금리 대출을 골자로 하는 사업계획서를 제출해 핵심 전략이 크게 다르지 않아 금융권에서는 대주주의 타당성이 예비인가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③ '플랫폼 파워' 키맨의 부재
소비자와의 접점이 넓은 IT업체가 컨소시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지 못했다는 점도 또 다른 탈락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 8월 인터파크가 인터넷전문은행 출사표를 던졌을 당시 대다수 시중은행은 인터파크 컨소시엄에 참여하기를 주저했다. 인터파크의 플랫폼이나 브랜드 파워가 카카오나 KT보다 뒤처진다고 봤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I-뱅크 컨소시엄 참여를 검토하기도 했으나 인터파크 플랫폼의 B2C(소비자 거래) 규모가 10%에 불과해 컨소시엄에 참여해도 큰 의미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지난 9월 SK텔레콤이 I뱅크 컨소시엄에 막판 합류했으나 금융권에서는 "최태원 회장의 출소를 위해 정부 정책에 호응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그 역할은 미미한 편이었다. 옐로금융그룹, NHN엔터테인먼트, 지엔텔 등 다른 IT업체도 '키맨' 역할을 맡기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