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커져버린 P&G... '규모의 함정'에 빠지다

    입력 : 2015.12.09 09:33

    세계 최대 소비재 기업… 변화에 빠르게 대응 못해 최근 3년간 실적 하향 곡선
    뷰티 브랜드 43개 대거 매각… 투자자 66% "기업 분할해야"


    P&G(프록터앤드갬블) 일본 법인이 생산하는 SKII는 2000년 국내 출시 후 손꼽히는 명품 화장품이다. 하지만 2009년 5.9%이던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4.6%로 하락했다.


    SKII, 질레트(면도기), 다우니(섬유유연제)…. 이름만 들어도 익숙한 각종 생활용품을 파는 글로벌 기업 P&G의 최근 실적 부진이 깊어지고 있다. 180여년간 성장하던 세계 최대 소비재 기업이라는 명성이 무색하게, 최근 3년 실적이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2012년 836억달러(약 96조원)이던 매출액은 올해 762억달러(약 88조원)로 쪼그라들 전망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수준이다.



    ◇소비자 요구 맞춘 변신 실패


    P&G의 위기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부터 시작됐다. 미국 소비자는 불경기에 가격이 저렴한 제품을 찾기 시작했지만, P&G는 중고가(中高價) 제품 정책을 고수했다. 그러자 경쟁사인 콜게이트-팔몰리브나 유니레버가 비슷한 제품을 싼값에 내놓으며 시장을 파고들었다. 생활용품은 여러 기업이 비슷한 제품을 쏟아내면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는 속성을 갖고 있다. P&G가 경쟁사보다 평균 30% 비싼 가격을 고집하자 결국 소비자들이 등을 돌렸다. 총매출의 40%를 차지하는 미국 시장에서 P&G의 '미용·개인 관리' 제품 점유율이 추락했다. 면도기 시장의 왕자(王者)였던 질레트는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미국 시장점유율이 4.2%포인트 곤두박질쳤다.


    ◇중국 시장에선 誤判


    중국에선 반대로 '초고급' 제품에 대한 '수퍼 리치(초호화 부자)'들의 수요에 대응하지 못했다. P&G는 중국에선 중산층을 겨냥한 중고가(中高價) 기저귀 제품 중심으로 상품을 내놓았다. 하지만 최상급 유아용품을 고집하는 젊은 중국 부자들은 더 고급 제품을 원했다.


    자체 판단을 바꾸지 못한 P&G의 중국 내 유기농 제품 매출은 올 3분기에 1년 전과 비교해 8% 정도 감소했다.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대표는 "P&G는 소비자들이 근본적으로 변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브랜드 대거 매각…기업 분할할까


    2013년 P&G의 '구원투수'로 발탁된 앨런 래플리 CEO는 작년 8월 매출 비중이 10%에 불과한 100여개 브랜드를 정리하고 65개 주력 브랜드에만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올 7월 웰라 샴푸·휴고보스 향수 등 뷰티 브랜드 43개를 향수업체인 코티에 130억달러에 매각하는 등 정리 작업을 벌여 현재 65개 브랜드로 줄였다. 하지만 실적 개선이 미미하자 작년 하반기 반짝 상승했던 주가(株價)는 올해 다시 추락했다.


    이 때문에 최근엔 '기업 분할' 같은 과감한 수술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글로벌 투자분석회사 번스타인이 62개 기관투자자를 상대로 설문 조사를 벌인 결과, 66%가 "P&G를 쪼개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P&G의 의사결정 권한은 미국 신시내티 본사에 집중돼 있고 너무 많은 사람이 관여해 현장 의견의 즉각 반영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P&G는 "분할하면 '규모의 경제' 효과가 사라져 경영이 더 나빠질 것"이라고 밝혔다.


    신동엽 연세대 교수(경영학)는 "조직이 너무 비대해지면 관료화되면서 '규모의 함정'(trap of scale)에 빠질 수 있다"며 "대형화된 국내 대기업들도 동일한 위험을 갖고 있는 만큼, P&G 사례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