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 삼성ENG 구할 3000억원의 불편한 진실

    입력 : 2015.12.09 09:44

    3자 배정 아닌 일반 공모 한계
    실 투자 3000억원 못 미칠듯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7일 3000억원의 사재를 털어 삼성엔지니어링 유상증자에 나서기로 했다고 밝히자, 8일 삼성엔지니어링 주가가 오르는 등 시장은 이 부회장의 결정에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하지만 시장 일부에선 이 부회장의 3000억원 증자 참여 방식을 분석한 뒤, "미청약분에 대한 일반 공모방식에 참여하는 것은 '꼼수'가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 오너로서 책임경영을 확실하게 하려면 3000억원에 대해 3자 배정 유상증자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3자 배정 유상증자는 기존 주주가 아닌 특정 3자를 신주 인수자로 정해 놓고 증자하는 방식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조선일보 DB


    ◆ 이 부회장, 실제 투자는 3000억원 못 미칠 것


    삼성엔지니어링은 7일 자본 잠식 해소와 상장 폐지 방지를 위해 2016년 2월까지 보통주 1억5600만주를 주당 7700원씩 발행해 총 1조2012억원을 조달하겠다고 공시했다. 이와 관련해 삼성그룹은 이 부회장이 유상증자를 통해 기존 주주들이 청약하지 않아 생기는 미청약분에 일반 공모 형식으로 최대 3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의 삼성엔지니어링 투자 방식은 기존 주주들이 먼저 유상증자에 참여한뒤 실권주가 발생하면 최대 3000억원까지 유상증자에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증권업계는 실제 이 부회장이 유상증자에 투자할 금액이 3000억원에 못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먼저 이 부회장의 유상증자 참여 소식에 지난 8일 삼성엔지니어링의 주가는 전날보다 13.98%나 오르면서 유상증자에서 실권주가 발생할 가능성이 확 낮아졌다. 삼성엔지니어링 유상증자에 대한 투자 관심이 커질수록 역설적으로 이 부회장이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부담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유상증자를 통해 1억5600만주를 새로 발행하기로 했는데, 이 중 20%인 3120만주는 우리사주조합에 우선 배정된다. 이후 남은 1억2480만주를 기존 주주들이 나눠 가진다.


    현재 삼성엔지니어링의 최대 주주는 삼성SDI 등 계열사와 특수관계인으로, 전체 주식의 22.03%를 갖고 있다. 자사주 7.56%를 제외하면 계열사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은 23.83%로 올라간다. 기존 주주는 배정분의 20%까지 초과 청약을 할 수 있어, 계열사들은 최대 3600만주까지 유상증자를 통해 지분을 가져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기관 투자자와 외국인 투자자, 일반 개인 투자자에게 돌아가는 유상증자 규모는 약 9000만주가 된다. 만약 삼성 계열사를 제외한 기존 주주들이 모두 유상증자를 포기하면 일반 공모로 풀리는 주식이 9000만주인 셈이다. 주당 7700원으로 환산하면 약 7000억원이다.


    이 부회장이 유상증자를 통해 3000억원을 투자하는 경우는 기존 주주의 유상증자액과 실권주에 대한 일반 공모액을 합치고도 3000억원이 모자라는 때다.


    ◆ 책임지려면 3자 배정 유상증자해야


    이 부회장이 3자 배정을 통해 선제적으로 유상증자에 나서지 않고 일반 공모 형식으로 최대 3000억원까지 투자하기로 한 것은 삼성가(家) 오너로서 책임을 다한 것이 아니라 상장 폐지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면피성 투자로 비칠 가능성이 높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책임 경영이란 말이 어울리려면 이 부회장이 처음부터 3자 배정 방식으로 유상증자에 참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만약 이 부회장이 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3000억원을 투자하고 나머지 9000억원에 대해서만 주주배정 방식으로 유상증자한다면, 이 부회장은 삼성엔지니어링의 지분을 약 19% 갖는 최대 주주로 올라서게 된다.


    이 부회장이 삼성엔지니어링의 1대 주주로 올라서면 삼성그룹 내에서 삼성엔지니어링이 차지하는 위상이 그만큼 올라가고, 투자자들도 이 부회장을 믿고 삼성엔지니어링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커지게 된다. 그러나 삼성엔지니어링 주주들이 유상증자 물량을 모두 소화할 땐 이 부회장으로서는 돈 한 푼 안 들이고 생색만 내는 상황이 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정말 똑똑한 주주들이면 유상증자를 포기해 실권주를 만들어 이 부회장이 유상증자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실제로 3000억원을 유상증자에 투자할 경우, 이 돈을 어디에서 마련할지도 관심이다. 이 부회장의 재산은 대부분 삼성물산(16.5%)이나 삼성SDS(11%) 등 삼성계열사 지분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증권업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삼성SDS 지분을 일부 팔거나 주식담보 대출을 통해 투자금을 마련할 것으로 보고 있다.


    ◆ 구조조정 앞두고 우리사주 발행…이재용 참여에 기대감도


    삼성엔지니어링 유상증자에 가장 부담을 갖는 사람은 이 부회장보다 삼성엔지니어링 직원들이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유상증자의 20%(2402억원)를 우리사주조합으로 배정했다. 삼성엔지니어링 직원 수를 고려하면 1인당 약 5000만원을 책임져야 한다.


    우리사주 투자는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다. 그러나 삼성엔지니어링이 조만간 구조조정에 들어갈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어, 직원들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우리사주에 투자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벌써 사내에서는 사원급은 2000만원 이상, 대리급은 4000만원 이상, 책임급 이상은 6000만원 이상 유상증자에 동참해야 한다는 소문이 나오고 있다.


    삼성엔지니어링의 이모 대리는 "회사가 인원을 줄이는 상황에서 자사주를 사야 하니, 잘리기 싫으면 자사주를 사야 하는 것 아니겠냐"고 푸념했다.


    일부 직원들은 이재용 부회장이 유상증자에 참여한다는 소식을 반기고 있다.


    정모 부장은 "그룹의 오너가 지분을 사겠다는 것은 회사를 살리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이라며 "1년 전만 해도 주가가 4만원을 웃돌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 주가가 싸다고 생각해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직원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