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올리고, 中 내리고, 韓 묶고... 중앙은행 金利정책 제 갈길로

    입력 : 2015.12.11 10:10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엔 '돈 풀기' 공동보조였는데…]


    미국이 금리 올릴 경우 신흥국서 돈 빠져나갈 우려
    브라질 등 선제적 금리인상, 유럽·中은 경기위해 금리낮춰
    "한국, 외환 보유액 충분… 당장 금리 올릴 상황은 아냐"


    다음 주에 미국이 기준금리를 2006년 이후 거의 10년 만에 처음으로 올릴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10일 한국은행은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이달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미국 금리 인상으로 어떤 영향이 생길지 더 지켜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이날 뉴질랜드는 기준금리를 연 2.5%로 0.25%포인트 내렸다. 경기 침체에 대응하는 게 더 시급하다는 것이다. 뉴질랜드의 올해 2분기(4~6월) 성장률은 0.4%로 작년 같은 기간(0.8%)의 반 토막에 불과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양적 완화 정책으로 4조달러를 푼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를 선두로 각국 중앙은행들이 동시에 '무제한 돈 풀기'에 나섰다. 하지만 이제는 각국 중앙은행들이 각자도생(各自圖生)하는 '그레이트 다이버전스(great divergence·大分岐·대분기)'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를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면, 고금리를 쫓아 글로벌 자금이 움직이면서 금융시장과 외환시장이 요동칠 가능성이 커졌다.


    ◇세계 중앙은행의 세 갈래 길


    미국은 오는 16일(현지 시각) 금리 인상 여부를 결정한다. 금융 위기 이후 10%까지 치솟았던 미국의 실업률은 지난 10월 5%까지 떨어졌고, 성장률은 2013년 이후 3년 연속 상승세를 그리면서 올해 2.6%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경제에 거품이 끼지 않게 하기 위해 이달에 기준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신흥국에서 돈이 빠져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자금 유출 우려가 큰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신흥국들은 올 들어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리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0일 서울 중구 한은 본점에서 열린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6개월째 연 1.5%로 동결했다. 이 총재는 "미국 기준금리 인상으로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것에 대비해 시중 유동성을 여유롭게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뉴시스


    반면 유럽·중국·뉴질랜드 등은 경기 회복의 온기를 살리기 위해 여전히 금리를 낮추는 정책을 펴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이달 초 예금 금리를 0.1%포인트 내렸고, 매달 600억유로씩 채권을 사들이는 양적 완화 기간도 6개월 연장하기로 하는 추가 부양책을 내놨다. 중국은 작년 11월 이후 기준금리를 다섯 차례 내리면서 올해 '7% 성장률'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일단 '지켜보자'는 중앙은행들도 많다. 미국 금리 인상의 파장을 가늠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의 경우 올 상반기에는 두 차례 금리를 내렸지만, 하반기 들어서는 '관망 모드'에 들어가 6개월째 금리를 동결했다. 일본은 작년 10월 이후 양적 완화 규모를 변동없이 유지하고 있다.


    ◇과거 미국·유럽 '따로 행보' 때 큰 혼란


    세계 중앙은행들이 각자 자기 길을 가겠다고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일단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강(强)달러 현상이 나타나고, 원자재 가격은 떨어지면서 신흥국 시장에서 달러 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크다. 미국 재무부의 대외증권투자 자금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한 작년 7월부터 올 9월까지 미국으로 유입된 자금은 2300억달러에 달한다. 2009년부터 5년 6개월 동안 7500억달러가 해외로 퍼져 나간 것을 감안하면 전 세계에 풀려나간 달러의 3분의 1이 미국으로 되돌아온 셈이다. 앞으로 실제로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이 추세가 강해질 가능성이 크다.



    달러 자금이 빠져나간 자리를 유로·엔 등이 메워준다면 별일이 없겠으나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 1994년 미 연준이 물가 안정을 위해 금리를 연 3.75%에서 연 4.25%로 올리고, 독일 분데스방크는 통일 이후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를 연 5.0%에서 연 4.5%로 내리는 '다이버전스'가 생긴 적이 있었다. 당시 미국 채권 가격이 폭락(금리 상승)하고 멕시코가 외환 위기를 맞는 등 세계 금융시장에 큰 충격이 왔다.


    ◇한국은행의 선택은?


    우리나라의 경우 올해 경상수지 흑자가 1000억달러가 넘고 외환보유액도 3685억달러에 달해 외국인 자금 이탈을 막기 위해 브라질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처럼 금리를 당장 올려야 할 상황은 아니다는게 통화정책 당국의 입장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10일 "미국의 금리 인상이 곧바로 한국의 금리 인상으로 이어지진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앞으로 한은의 통화정책 운용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경기 하강을 막기 위해선 금리 인하가 필요하지만, 금리를 내리면 이미 11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가 급증하는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에 전문가들의 전망도 엇갈린다. 서향미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한은이 당분간 금리로 경기를 부양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적어도 앞으로 12개월은 기준금리 동결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권영선 노무라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성장률이 2% 초반으로 곤두박질치는 것을 막기 위해 한은이 내년에 두 차례 정도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