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찾아간 보험금, 利子 못 줘"... 보험사의 변심

    입력 : 2015.12.17 09:14

    지금까지 이자 지급해오다 약관에 없는 소멸시효 주장


    몇달 차이로 수천만원 손해… 고객들 형평성 논란 자초
    금융당국 生保社 검사 나서


    전남 순천에 사는 직장인 김모(48)씨는 1995년 A생명보험사의 '21세기골드연금보험' 상품에 가입했다. 김씨는 매달 5만원씩 보험료를 납입해오다 2004년 교통사고로 장해 3급 판정을 받았다. 김씨는 장해 판정을 받으면 매년 장해연금을 800만원씩 55세까지 지급해준다는 계약에 따라 2005~2006년 보험금을 수령하다 2007년부터는 수령하지 않았다. 보험 규정에 '지급 방식을 변경한 미지급된 보험금에 대해 연 8.5%를 연 단위 복리로 계산한 금액을 더해준다'고 명시돼 있어 돈을 빼지 않고 놔두면 노후 자금으로 유용하게 쓸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실제 A보험사는 2007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연 8.5% 복리로 계산한 금액 8800만원을 쌓아줬다. 그러나 김씨가 3개월 뒤 다시 확인해보니 이자가 1500만원 삭감돼 7300만원으로 줄어 있었다. A보험사에 문의했더니 "저금리 시대를 맞아 이자를 똑같이 줄 수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법률상 보험금을 2년간 청구하지 않으면 소멸시효가 지나기 때문에 2년간만 이자를 가산해주고 나머지 기간에 대해선 줄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김씨는 "약관에는 보험금 소멸시효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는데, 소비자를 우롱하는 것 아니냐"고 울화통을 터트렸다.


    ◇보험사들, "안 찾아간 보험금에 이자 못 준다"


    보험계약자들이 찾아가지 않은 보험금에 대해 생보사들이 지난해까지는 약관대로 이자를 지급해오다, 최근 들어 갑작스럽게 보험금 소멸시효가 지난 이후 보험금에 대해서는 이자를 지급하지 않겠다고 통지해 계약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1990년대 보험사들은 각종 연금·교육·상해보험을 팔면서 기본 계약 또는 특약 형태로 여행자금·생존자금·장해연금·유족연금 등 사고를 당하거나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연 8~9% 이자를 적용한 보험금을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가령 연금보험의 경우 납입한 보험료로 55세부터 연금은 별도로 받지만, 장해 등급을 받는 사고를 당하면 별도의 연금을 매년 연 8~9%대 복리 금리로 받을 수 있었다. 이 같은 상품들은 인기가 많아 출시 10~11개월 만에 수입 보험료가 3000억원을 넘기도 했다. 한 전직 보험설계사는 "회사에서 설계사들에게 보험금을 찾아가지 않아도 10% 이자를 복리로 준다는 것을 강조하라는 영업 교육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당시엔 보험사 공시 이율이 10%를 웃돌았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대표는 "은행에서도 7~8%의 금리는 줬기 때문에 보험사들이 은행과 경쟁 구도에 지지 않기 위해 '보험판 적금'에 가입하라는 마케팅을 했다"고 설명했다.


    ◇보험약관에 없는 '보험금 청구권 소멸시효' 주장


    보험사들은 지난해 중반까지는 계약자들이 안 찾아가는 보험금에 대해 고금리 이자를 지급해왔다. 그러나 한국은행 기준 금리가 2%대에서 1.5%로 떨어지고, 보험사 공시 이율도 3%대 초·중반으로 곤두박질을 치면서 올 들어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올해부터는 1990년대 보험금을 찾아가지 않고 놔두는 소비자에게는 상법상 '보험 청구권 소멸시효'를 근거로 이자 지급을 중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은 1990년대 보험 가입자들의 보험약관에는 담겨 있지 않은 것이다. A보험사 관계자는 "보험사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그동안 주장하지 못했던 법적 권리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상적인 복리 금리로 보험금을 타간 고객과 불과 몇 개월 차이로 수천만원의 이자를 받지 못하는 고객이 나타나고 있어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한 로펌의 변호사는 "민법상 3년간의 보험금 소멸시효는 실제 소비자가 보험금을 청구한 이후부터 발생한다"며 "보험금을 매년 타다가도 지급 방법을 바꿔 소비자가 찾지 않기로 했으면 보험금 청구 소멸시효가 발생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약관에 나온 대로 이자를 지급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보험계약자들의 불만이 고조됨에 따라 금융 당국은 대량 민원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생명보험사들에 대해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