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2.18 09:37
한국은행의 선택은
李총재 "美 금리 올렸지만 우리가 곧 올려야 하는 건 아냐"
전문가들 "미국의 방향 외면할 수는 없어 내년 인상시기 저울질할 것"
17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평소처럼 출근했다. 붉은색 계통의 넥타이를 맸고, "점잖아 보인다고 생각하는 넥타이"라고 했다. 이날 새벽 4시 미국의 제로 금리 시대가 7년 만에 막을 내렸지만, 조급해하거나 서두르지 않겠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최근 한국은행 간부들과 가진 티타임에서는 "영국 속담에 '긍정적으로 바라보지만 항상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다'는 말이 있다. 지금 상황에 맞는 것 같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날 오전 7시 장병화 부총재 주재로 열린 한은 통화금융대책반 회의도 같은 입장이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0~0.25%에서 0.25~0.5%로 인상한 것에 대해 "예상됐던 일이고, 시장의 반응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평가를 내렸다. 회의는 1시간도 채우지 않았다.
-
- ▲ 미국의 제로(0) 금리 시대가 막을 내린 17일, 서울 남대문로 한국은행 본관으로 출근하던 이주열 한은 총재가 기자들에게 둘러싸였다. 이 총재는"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은은 글로벌 금융 시장의 추이 등을 모니터링하면서 대응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미국 금리 인상의 '후폭풍'이 최대 변수
애당초 한은의 걱정거리가 미국의 금리 인상 자체는 아니었다. 올해 경상수지 흑자가 1000억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외환보유액도 3685억달러에 달해 외국인 자금 이탈을 막기 위해 금리를 높여야 하는 상황은 아니라고 봤다. 이주열 총재는 미국의 금리 인상 후폭풍에 휘말릴 신흥시장국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그는 최근 한 외부 강연에서 "미국의 금리 인상만 놓고 보면 큰 위기가 아니지만 각국 경제가 연결돼 있는 상황에서 어느 한쪽이 터지면 다른 쪽으로 전이된다"고 했다.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정, 자금 이탈 등으로 일부 신흥시장국들이 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그럴 경우 한국 경제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미국 금리 인상의 후폭풍으로, 넘쳐나던 달러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거나 원자재 가격이 추락하면서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동남아 일부 국가 등의 금융 시장과 실물 경제가 급격하게 악화돼 금융 위기로 불길이 커지는 상황을 우려하는 것이다.
◇한은 금리 동결 행진 길어질 수도
그래서 일단은 "예상대로"라며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다음 수순에 대한 한은의 고민은 커지고 있다. 지난 6개월간처럼 언제까지 금리를 동결(연 1.5%)할 수 있을 것인지, 움직인다면 어떤 방향인지를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경기 회복의 불씨를 꺼뜨리지 말아야 하고, (미국과의 금리 격차) 불균형이 감내하기 어려운 정도까지 확대되도록 둘 수도 없다.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경기 회복을 위해 금리를 계속 동결하거나 낮춘다면 1166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가 더 불어나는 것이 고민이고, 미국과 반대(인하)로 움직이는 것은 금리 격차를 키워 대규모 달러 자금 이탈을 자초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금리를 높인다면, 환율에 악영향을 미쳐 가뜩이나 부진한 수출이 주저앉을 것이 고민인 상황이다. 이 총재는 이 문제에 대해 "미국이 금리를 올려도 곧바로 따라 올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도 점진적이라 시간 여유가 좀 있다"고 했다. 최대한 동결을 이어가면서 국제 금융 시장, 국내 경기 등을 반영한 결정을 내리겠다는 것이다.
한은의 입장에 대해 한 관계자는 "기본적으로는 미국의 방향(금리 인상)을 외면할 수는 없는 만큼 내년에는 금리 인상을 계속 검토하면서, 한은도 인상 시기를 저울질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내년 경제 성장의 축을 수출에서 내수로 전환한 것도 한은의 금리 인상 부담을 다소 덜어준 것으로 보인다. 수출 부진을 만회하기 위한 금리 인하보다는 내수 부양에 무게가 실리고, 그에 따른 물가 상승을 용인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한은은 내년 물가성장률이 1.5% 안팎일 것으로 예상하지만, 내년부터 3년간 적용할 물가안정목표제의 목표는 연 2%로 설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