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자금, 선진국으로 이동 시작됐다

    입력 : 2015.12.22 09:12

    [美 금리인상 여파… 한국 증시서 5조3000억 빠져나가고, 中 외환보유액 급감]


    내년 美·EU 경제 성장률2010년이후 첫 2%대 넘을듯브라질·남아공은 마이너스유엔 "성장축 선진국 복귀"


    세계경제의 주도권이 신흥국에서 선진국으로 넘어가고 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성장 엔진 역할을 했던 신흥시장의 동력이 주춤하는 사이, 체력을 보강한 선진국은 평균 2%대 성장률을 기록하며 다시 비상(飛上)할 채비를 마쳤다.


    특히 이런 변곡점에 쐐기를 박은 것은 경제성장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9년 6개월 만에 단행된 미국의 금리 인상이다. 돈을 불려줄 곳을 찾아 움직이는 글로벌 투자 자금이 신흥국에서 미국 등 선진국으로 회귀를 시작했다.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기준 신흥국으로 분류되는 우리나라 증시에서도 최근 두 달간 5조3000억원이 넘는 외국인 자금 유출을 겪는 등 한국도 대규모 자금 이동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글로벌 경제파워, 신흥국서 선진국으로"


    유엔(UN)은 최근 '2016 세계경제 상황·전망 보고서(WESP)'에서 내년 세계경제 성장에 대한 선진국의 기여도가 신흥국을 추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내년 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9%로 상반기보다 0.2%포인트 하향 조정하면서, 선진국 경제성장률은 2.2%로 그대로 둔 반면, 신흥국은 4.3%로 0.5%포인트 내렸다.



    내년 미국 경제성장률은 2.6%, 유럽연합(EU)은 2.0%로 2010년 이후 처음으로 2%대를 넘어설 것으로 유엔은 전망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내년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6.4%로 둔화되고, 거대 신흥국인 브라질 경제는 -0.8%, 러시아는 0%, 남아프리카공화국은 -0.8% 성장해 경기침체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2000년대 이후 신흥국으로 넘어갔던 세계경제 성장의 중심축이 다시 선진국으로 복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유엔은 내다봤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도 내년 선진국의 세계 실질GDP 성장 기여도가 43%까지 상승하는 반면, 신흥시장 비중은 34%에 그쳐 선진국이 주도하는 모양새가 될 걸로 내다봤다. 금융 위기 이후 2013년까지만 해도 신흥시장의 세계 실질 GDP 성장 기여도가 47%에 달했고 선진국은 30%를 겨우 넘겼지만,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이렇듯 신흥국이 성장 동력을 잃은 이유로 중국의 성장 둔화, 이에 따른 원자재 가격 급락, 대대적인 자본유출,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등이 꼽히고 있다. 세계은행(WB)은 "2010년 이후 신흥국의 성장 둔화는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지만, 저성장 시대의 개막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美 금리 인상으로 '머니 무브' 본격화


    돈은 성장 전망이 밝은 곳으로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금융 위기 이후 고(高)금리를 좇아 신흥국으로 흘러들어간 투자금은 약 3조5000억달러(4120조원). 이 중 올 들어 이달 16일까지 신흥국 주식형펀드와 채권형펀드 등에 투자된 돈 중 약 1000억달러(118조원)가 빠져나갔다. 시장조사업체 이머징포트폴리오펀드리서치(EPFR)의 집계를 보면 이달 들어 인출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


    신흥국에서 빠져나간 돈은 선진국으로 향하는 중이다. 같은 기간 북미와 서유럽 등 선진국으로는 약 2000억달러(236조원)가 흡수됐다.


    경제 체격은 선진국에 가깝지만, 금융시장은 아직 신흥국으로 분류되는 우리나라에선 외국인 투자자들이 돈을 빼가고 있다. 최근 14거래일 연속 외국인의 순매도세가 이어져, 3조2000억원이 빠져나갔다. 두 달 사이에 외국 투자자가 국내 주식을 산 규모보다 판 규모가 5조3000억원 더 많았다. 특히 유가 하락으로 자금 사정이 나빠진 오일머니의 자금 회수가 두드러진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올 7월부터 우리나라에서 3조원 넘는 투자금을 찾아갔다.


    하지만 우리보다 머니무브 현상이 두드러지는 곳은 중국이다. 증시가 폭락한 올 8월에만 2000억달러가 넘는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간 것으로 나타났고, 중국의 11월 외환보유액은 3조4380억달러로 2013년 2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자본시장연구원 이승호 국제금융실장은 "미국 금리 인상으로 달러화 강세 현상이 나타나면서 신흥국에서 자본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면서 "원자재 시장 침체도 동시에 나타나고 있는 만큼, 한동안 이 같은 자금 이동 현상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