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2.29 09:57
[특정 저축은행과 계약 맺고 공공기관처럼 포장… 서민들 피해 잇따라]
"정부정책 지원 가능… 햇살론으로 바꿔주겠다"
페이스북에 광고 띄우고 대출 갈아타도록 유도
작년 피해 신고 10만여건… 개인 정보 서로 공유하기도
전문가들 "급전 필요하면 '한국이지론' 이용하도록"
'서민금융지원센터, 금융지원공사, 서민금융도우미, 서민지원나누미….'
페이스북을 하다 보면 이러한 문패를 내건 광고 페이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페이지에는 '저신용·저소득자를 위한 정부정책 서민 지원 대출' '급여가 적어도 대출이 있어도 정부정책 지원 가능' 등의 소개 글이 쓰여 있다. 이름만 보면 서민 금융 관련 공공 기관으로 보이지만 이들은 대부분 특정 저축은행과 계약을 맺은 대출 모집 법인들이다. 사설 대출 알선 업체가 '서민' 간판을 걸고 공공 기관 행세를 하며 이미지 세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출 모집을 비즈니스 모델로 삼고 있는 업체들은 저축은행에 대출을 알선하고, 대출금의 3.86% 정도(올해 상반기 기준)를 수수료 명목으로 받는다. 지점망이 취약한 저축은행들은 주로 TV 광고와 모집 법인을 통해 여신 영업을 하는데, 지난 9월 TV 광고에 대한 시간대 규제가 시행되면서 최근 모집 법인 의존도가 높아지는 추세다. 업계에 따르면 개인 신용 대출을 취급하는 저축은행의 경우 전체 대출의 50~60% 정도가 모집 법인을 통해 나간다.
◇'서민' 간판 내건 대출 모집 법인들의 거짓 영업
일부 모집 법인들은 예전부터 자신들의 정체를 숨긴 채 꼼수 영업을 해왔다. 대출 상품 광고를 신문 기사 형식으로 만들어 신뢰도를 높이는 수법을 쓰거나 햇살론·바꿔드림론 등 유명 서민 금융정책 상품을 앞세우는 식이다. 하지만 이러한 편법 영업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최근에는 아예 '서민 금융기관이니 안심하라'고 속이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모집 법인 중에는 회사 주소지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주택금융공사 등의 금융 공기업이 몰려 있는 '부산 문현금융로'를 적어 놓는 곳도 있다. 금융소비자연맹 강형구 국장은 "모집 법인들은 저축은행에서 저신용·저소득자 대상 정책 금융상품인 '햇살론'을 취급한다는 미명하에 '서민금융'이라는 가짜 이름을 내세우는 것"이라며 "사회적으로 모집 법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 보니 나타난 현상"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공공 기관으로 착각하고 모집 법인을 통해 대출을 받았다가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계속 늘고 있다는 것이다. 2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인터넷을 통한 대출 피해 신고 건수는 2012년 7만5263건에서 지난해 10만5577건으로 2년 사이 40%가량 늘었다. 모집 법인들은 보통 연 10% 안팎의 햇살론을 연결해줄 것처럼 광고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저축은행의 일반 신용 대출이 나가는 경우가 많다. 햇살론은 '3개월 이상 일하고 있는 일용직·파트타임 근로자' '무등록·무점포 자영업자' 등 대상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일부 모집 법인에서는 "고금리 신용 대출을 쓰고 있으면 나중에 햇살론으로 대환해주겠다"고 설득하고는 연락이 두절되는 경우도 많다. 모집 법인들이 대출 상담을 한 사람의 개인 정보를 동의 없이 서로 공유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국이지론이나 '서민금융 1332' 활용해야
금융 당국과 전문가들은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에게 대출 모집 법인보다는 대출 중개 사회적 기업인 '한국이지론'을 이용할 것을 권한다. 한국이지론은 지난 2005년 시중 은행과 저축은행, 캐피털사 등 19개 국내 금융회사가 공동 출자해 만든 사회적 기업이다. 한국이지론은 모집 법인이 특정 저축은행과 계약을 맺고 있는 것과 달리 1, 2금융권을 망라한 74개 금융 회사의 대출 상품을 연결해준다. 서민 금융상품과 중금리대 상품이 전체 대출 중개의 60%가량을 차지한다. 대출 알선 수수료도 모집 법인의 30~40% 수준으로 낮은 편이다. 금감원은 최근 "불법 대출 모집 법인을 통해 대출을 받으면 개인 정보 유출, 대출 사기 등의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한국이지론을 이용하라"고 공식 발표하기도 했다. 금감원 조성목 서민금융지원국장은 "한국이지론은 사회적 기업이기 때문에 '수수료 수익'에 목숨을 거는 모집 법인들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며 "한국이지론을 이용하면 소득과 신용에 맞는 여러 회사의 상품을 비교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고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지론에서 대출 상담을 받으려면 인터넷(www.koreaeasyloan.com)이나 콜센터(1644-1110)를 이용하면 된다. 서민 금융상품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듣거나 소개를 받고 싶은 사람은 금감원 콜센터 '서민금융 1332'(전화번호도 1332)를 이용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