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1.05 10:14
[유선통신망 투자 주춤… 가입자 60% 이상 구리선 사용]
KT 4년간 매년 1조원대 투자… 광케이블 비중 65%로 최다
SK·LGU+는 그 절반정도 투자… 광케이블 깔린 가구 20~30%
'속도'보다 '결합상품'에 주력…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 日에 밀려
최근 서울 잠실의 한 아파트로 이사를 간 이모(47)씨는 한 통신사에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신청했다가 낭패를 봤다. 집을 방문한 설치 기사가 "이 아파트는 광(光)케이블이 없어서 속도가 느린 구리 전화선을 이용하는 인터넷(VDSL)밖에 안 된다"며 그냥 돌아갔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주변의 20년 이상 된 아파트엔 모두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의 광케이블이 없었다. 이씨는 "그나마 몇 개월 전 아파트 단지에 광케이블을 설치한 KT의 초고속 인터넷에 가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통신업체의 유선(有線) 통신망 투자가 주춤하며 초고속인터넷의 진화 속도가 더뎌지고 있다. 2년 전부터 KT·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 등 통신사들은 일제히 광케이블을 이용한 첨단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현실에서는 통신망이 제대로 깔려 있지 않아서 '그림의 떡'인 지역이 상당수다. 일부 통신사들이 "유선(有線) 서비스는 돈이 안 된다"며 투자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유선 통신망에 투자 안 하는 업체들
초고속인터넷망은 구리선이나 광케이블로 연결된다. 현재 대부분의 가정에서 쓰는 초당 100메가비트의 속도를 내는 초고속인터넷은 구리선이나 광케이블 어느 쪽에서나 가능하다. 하지만 이보다 속도가 10배 이상 빠른 '기가 인터넷' 같은 첨단 서비스는 광케이블이 깔려 있는 집에서만 가입할 수 있다. 광케이블은 구리선보다 얇으면서도 통신 속도는 수십 배 더 빠르게 할 수 있다.
통신3사의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1678만명 가운데 광케이블을 이용하는 가입자는 649만명에 불과하다. 가입자 중 60% 이상이 여전히 구리선으로 인터넷을 사용한다.
광케이블은 10여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보급됐다. 하지만 여전히 전국에서 광케이블이 깔린 가구(커버리지)는 SK브로드밴드가 25~30%, LG유플러스가 20~30%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선 분야에 강한 KT가 65% 안팎으로 비교적 높은 편이다. 이 때문에 오래된 아파트나 빌라,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은 기가 인터넷 서비스를 아예 신청조차 못 하거나, KT 외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셈이다. 지난 4년간 KT가 매년 1조1000억~1조6000억원을 유선 통신망에 투자했다. 하지만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는 기존 망을 유지·보수하는 차원에서 KT의 절반 정도만 투자했다.
통신사들이 유선망 투자를 꺼리는 이유는 돈이 안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예컨대 KT의 초고속인터넷 가입자가 지난 1년간 18만명 느는 동안,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도 각각 20만명과 45만명이 증가했다. 투자를 많이 하는 것과 가입자 확보는 큰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최근 3~4년간 휴대전화와 초고속인터넷, 인터넷TV(IPTV) 등을 묶어서 싸게 파는 '결합상품'이 대세가 되면서 초고속인터넷에는 상대적으로 투자를 덜 하게 된 것이다. 통신업체 관계자는 "예전엔 속도를 보고 초고속인터넷을 고르던 소비자들이 지금은 '휴대전화하고 같이 가입할 테니 더 싸게 해달라'는 요구가 많다"고 말했다.
◇일본에 밀리는 초고속인터넷 인프라
이런 상황에서 미래창조과학부는 최근 국무총리실과 함께 "2017년에 최고 속도 10기가비트(Gb)의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상용화한다"는 네트워크 발전 전략을 발표했다.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전략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래부 관계자는 "투자는 시장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곧 일본이 초고속인터넷 인프라에서 한국을 넘어설 것이라고 우려한다. 실제로 '기가급 인터넷'은 이웃 나라인 일본이 먼저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2010년 '빛의 길'이라는 통신 전략을 표방하며, 광케이블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 일본 초고속인터넷 가입자의 73%가 광케이블 가입자다. 우리나라(38%)를 더블스코어로 뛰어넘는다. 이동통신도 휴대전화와 기지국 사이만 무선으로 연결하고 나머지 구간은 모두 유선망을 사용한다. 따라서 유선 통신망의 첨단화는 이동통신 서비스 발전에도 필수적이다.
정부는 KT가 유선통신 투자를 선도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KT는 4일 기가 인터넷 가입자가 100만명을 넘었다고 밝혔다. 경쟁사 2곳을 합친 40만명보다 2배 이상 많다. 기가 인터넷은 고화질 영화 한 편을 8초면 내려받을 정도로 속도가 빠르다.
황창규 KT 회장은 "100만 돌파는 시작에 불과하다"며 "앞으로 3년간 4조5000억원을 투자해 초고속인터넷 속도 경쟁을 주도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