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1.13 09:43
[제1금융권 체면 버리고 P2P업체와 제휴… 중금리 대출 뛰어들어]
P2P업체가 유치한 자금 은행에 맡기고 대출수수료 나눠… 전북銀 이어 국민·농협도 추진
高금리 대출 이미지 강한 저축은행들과도 업무 제휴… 수수료 인상 카드도 만지작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수익성이 뚝뚝 떨어지자, 콧대 높던 은행들이 제1금융권으로서의 체면도 버리고 신생 P2P(개인 대 개인) 업체와 손잡거나, 저축은행과 협력을 모색하는 등 치열한 생존 경쟁에 뛰어들었다. 지난 2014년 기준으로 은행의 수익성 지표인 총자산순이익률(ROA)과 순이자마진(NIM)은 2011년 대비 각각 53%, 22% 떨어졌다.
①전북은행, 신생 P2P업체와 제휴
12일 전북은행은 P2P업체 피플펀드와 조만간 공동 대출상품을 출시해 중금리 시장을 공략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P2P는 온라인을 통해 투자자와 대출자를 모집해 연결해주는 핀테크(금융+IT) 분야다. 그동안 중금리 시장은 주로 저축은행과 캐피털사, P2P업체 등 2금융권과 신생 업체들이 주도하는 무대였는데 '고(高)신용자'만을 상대하던 은행이 이제는 중금리 대출 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은행이 위비뱅크(우리은행), 써니뱅크(신한은행) 등 모바일용 자체 대출 플랫폼을 내놓은 적은 있지만, P2P업체 등 타 업권과 공동으로 대출상품을 내놓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전북은행은 피플펀드가 온라인상에서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유치한 자금을 은행에 예금으로 맡기면 이 예금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식의 협력 모델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은 지난달 28일 금융위원회로부터 은행의 '부수업무'에 해당한다는 판정을 받았으며, 전북은행은 현재 상품(가칭 '피플펀드론') 출시를 위해 약관을 손보고 있다. 이르면 내달 초 출시된다. 피플펀드론은 예금이 담보로 잡혀 있기 때문에 은행은 이자를 거의 받지 않으며, 대출자는 신용도에 따라서 담보 이용료 성격의 이자(평균 연 7~9%)를 낸다. 전북은행은 투자자에게 수익금을 정산해주고 대출금액의 0.6% 정도인 수수료를 받는다. 중도상환수수료가 없으며, 대출 한도는 3000만원이다. 시중은행과 달리 신용등급 5~7등급에 해당하는 중·저신용자들도 심사를 거쳐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과 NH농협은행 등 다른 시중은행들도 P2P업체와 공동 모델을 논의 중이거나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카드론 대환대출 P2P업체인 써티컷의 경우, 현재 전북은행을 비롯한 몇몇 시중은행과 협력을 논의 중이다. 금융연구원 서병호 연구위원은 "은행과 P2P업체가 중금리 대출상품을 만드는데 협력할 경우, 서로에게 부족한 혁신성과 안정성을 보완해 줄 수 있기 때문에 기존의 시장 구도를 뒤흔들 시너지가 발휘될 것"이라고 말했다.
②'고금리' 이미지 저축은행과도 손잡아
은행들은 그동안 고금리 대출을 한다는 이미지가 강한 저축은행들과도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대구은행은 지난해 9월 저축은행 업계 2위인 HK저축은행과 전략적 업무제휴(MOU)를 맺었다. 서로의 금융상품을 교차 판매하기 위해서다. 대구은행은 조만간 HK저축은행의 서울 내 지점들을 통해 신용카드 발급과 DGB생명 방카슈랑스 등의 판매를 대행하고, HK저축은행에 대출을 연결해주고 수수료를 받을 계획이다.
대구은행 외에도 신한·국민·하나 등 금융그룹 안에 저축은행을 보유한 은행들도 적극적으로 저축은행 연계 영업을 펼치고 있다. 금융지주 계열 저축은행 관계자는 "은행 지점에서 대출이 거절된 사람을 인근의 계열 저축은행으로 보내서 자연스럽게 대출이 연결되게 하는 구조"라며 "지주 전체의 수익성 개선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과거 은행들이 고신용자, 우량 기업만을 대상으로 고고한 영업을 해왔지만 경제 침체가 장기화되고, 금융환경이 급변하면서 기존 방식으로 영업했다가는 도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앞으로 은행은 단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생존 영업'을 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③수수료 인상도 만지작
은행들이 최근 소비자 저항이 큰 '수수료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도 수익성 악화에 대한 은행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신한은행은 내달 1일부터 10만원 초과 100만원 이하의 돈을 다른 은행에 송금할 때 받는 수수료를 1000원에서 2000원으로 올릴 예정이다. 씨티은행은 은행 창구에서 10만원 이하의 돈을 타행에 보낼 때 면제해주던 수수료를 최근 부활시켰다. KEB하나은행과 국민은행도 송금 등의 수수료를 인상하는 시기를 고민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은행들의 공격적인 영업은 저금리 시대에 은행들의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하고 보수적인 은행산업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한 보호장치가 제대로 구축돼야 한다고 말한다. 세종대 김대종 교수는 "P2P업체와 공동으로 만든 금융상품의 경우 기존 은행 상품보다 투자자 보호 강도가 낮을 가능성이 높다"며 "투자자 보호 관련 약관을 자세하게 쓰고, 저축은행 대출 상품을 소개해주면서 나타날 수 있는 고금리 피해도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