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1.15 09:46
[반도체 업계 위축에도 공격적 투자로 3년 연속 사상최대 실적]
해외 경쟁업체들 투자 미룰 때 미래 대비한 투자로 반전 드라마
10나노미터대 D램 기술에 집중, 3D 낸드플래시 대량생산 추진
"中의 추격 등 경쟁 치열할수록 기술 격차 벌리는 수밖에 없어"
SK하이닉스가 올해 6조원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14일 밝혔다. 창사 이래 가장 많은 금액을 투자했던 지난해와 비슷한 규모다. 수년간 이어진 세계 반도체 시장의 성장세가 꺾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투자를 줄이고 몸을 사리는 대신 오히려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SK하이닉스는 "대규모 투자를 통해 기술을 개발하고, 생산 공간·기반 시설 등 미래 성장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2년 연속 6조원대 투자
SK하이닉스는 SK그룹에 편입된 직후인 지난 2012년 최태원 회장의 지휘하에 시설 투자를 전년 대비 10% 이상 늘린 바 있다. 당시 불황으로 세계 반도체 업계 전체의 투자가 줄어드는데도 오히려 생산 능력을 대폭 확대해 미래를 대비한 것이다. 그 결과 2013~2015년 반도체 경기가 호전됐을 때 SK하이닉스는 3년 연속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릴 수 있었다. 투자를 미뤘던 해외 경쟁 업체들은 땅을 치고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올해 SK하이닉스는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D램 기술에 투자를 집중할 계획이다. 10나노미터(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대 공정의 D램을 만드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D램에 들어가는 전자회로의 선폭(線幅)을 20나노미터 미만으로 줄이는 것을 의미한다. 회로의 선폭이 좁아지면 같은 면적 안에 더 많은 반도체를 넣을 수 있어 생산 효율이 높아진다.
올해는 10나노대 공정의 D램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올해 3분기부터 삼성전자가 18나노미터 D램을 양산하기 시작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 D램 3위 업체인 미국 마이크론도 지난해 "16나노미터 D램 개발에 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매출의 4분의 3 정도가 D램에서 나오는 SK하이닉스도 이 경쟁을 리드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는 것이다.
회로를 평면에 촘촘히 배열하는 대신 수직으로 쌓아 올려 메모리 반도체의 저장 용량을 높이는 '3D(입체) 낸드플래시'의 대량 생산에도 적극 투자한다. 3D 낸드플래시는 평평한 공터를 그냥 주차장으로 쓰는 대신 그 자리에 주차 빌딩을 지어 더 많은 자동차를 세울 수 있도록 하는 것과 비슷한 기술이다.
올해 투자액 중 1조원 이상은 지난해 경기 이천 공장 내에 완공한 'M14' 생산 라인의 2단계 공사에 들어간다. 클린룸(청정 시설)과 전력 설비 등을 추가로 설치하는 공사다. 2단계 공사가 진행되는 'M14' 라인의 2층은 앞으로 3D 낸드를 생산할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이 회사의 김준호 경영지원부문 사장은 "3D 낸드플래시 생산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면 M14의 2층을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대규모 투자로 위기 돌파
올해 반도체 시장 상황이 녹록하지는 않다. 시장조사 기관 IHS는 올해 세계 D램 시장은 지난해보다 9.3%, 낸드플래시 시장은 1.6% 줄어들 것으로 집계했다. 또 평균 판매 가격(ASP)은 D램이 작년보다 29%, 낸드플래시는 29.9% 내려갈 것으로 분석했다. D램은 스마트폰이나 PC에서 데이터를 빨리 썼다 지웠다 할 수 있는 임시 기억 장치이고, 낸드플래시는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그대로 저장돼 있는 제품이다. 대표적인 메모리 반도체들의 수익성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이는 메모리 반도체가 들어가는 주요 제품인 스마트폰, PC 등의 수요가 부진한 데 따른 것이다. 시장조사 기관 가트너는 올해 전 세계 PC 출하량이 지난해와 같은 2억9100만대에 그칠 것으로 봤다.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세도 약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회사 실적을 떠받쳐온 반도체 사업이 주춤하면서 작년 4분기 영업이익이 3분기보다 1조원 이상 감소했다. 미국 마이크론 역시 지난해 4분기 매출이 33억5000만달러(약 4조618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27% 하락했다.
SK하이닉스 최고경영자(CEO)인 박성욱 사장은 "중국도 반도체 산업 육성을 국가적 과제로 내세우는 등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며 "이럴 때일수록 적극적인 투자로 기술 격차를 벌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