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1.15 10:53
전세계 투자자들, 위험 자산에서 돈 빼 國債 등으로 갈아타
"신흥국 앓아 누울 때 금리 올린 美 책임… 결국 美에 부메랑"
새해 벽두부터 금융시장에서 피어오른 공포의 불씨가 전 세계로 옮아붙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불길이 잡히기는커녕 번지는 양상이다. 미국 경제에 대한 불확실한 전망이 퍼지면서 13일(현지 시각) 뉴욕 3대 지수가 2~3% 급락한 데 이어, 14일에는 일본 닛케이지수가 장중 한때 4.3%까지 급락해 지난해 9월 이후 처음으로 지수 1만7000선이 무너졌다.
진원지인 중국 상하이 종합지수는 이날 개장 초반 3% 가까이 하락했다가 2%가량 상승 마감하는 널뛰기 장세를 보이며 투자자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한국 증시는 0.85% 하락하는 데 그쳤지만,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이 전날보다 9.4원 올라 5년 6개월 만에 최고치인 달러당 1213.4원으로 마감하는 등 올 들어 외환시장이 널뛰고 있다.
◇위험 자산에서 안전 자산으로 도망쳐
작년 말 미국 금리 인상 이후 원유가격 급락, 중국 위안화 가치 급락, 중동 정정 불안 등 금융시장의 악재(惡材)들이 복합적으로 터지면서 세계 투자자들이 주식 등 위험 자산에서 돈을 빼 국채 같은 안전 자산으로 대피하고 있다.
-
- ▲ 올 초 중국 증시 폭락으로 시작된 글로벌 시장의 공포가 일본과 미국 등 선진국으로 확산되며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14일 중국 베이징의 한 투자자가 이날 한때 3% 가까이 급락했던 상하이종합지수 전광판을 지켜보고 있다(위 사진). 이날 2.7% 하락 마감한 일본 닛케이지수 전광판 앞을 걷는 일본 도쿄 시민의 모습(아래 사진). /AP·AFP 연합뉴스
14일 일본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역대 최저치를 경신했다. 국채 값이 그만큼 올랐다는 의미다. 14일 오후 한때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전일 대비 0.015%포인트 떨어진 0.190%까지 하락했다. 작년 1월 20일 기록했던 사상 최저치(0.195%)보다도 낮은 것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국 장기 금리가 하락한 데다 닛케이 지수가 급락해 위험을 피하고 싶은 투자자들이 안전 자산인 국채를 사들였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도 이날 2.7%까지 하락해 2007년 9월 관련 자료가 집계된 이래 최저치를 나타냈다. 증시가 연일 폭락하면서 국채 매수세가 몰린 결과다. KB투자증권 문정희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 장기 국채 금리만 하락한 게 아니라 브라질·남아공 같은 고(高)위험국 장기물 금리도 일제히 하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흥국 주식으로 분류되는 우리나라 증시에서도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가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작년 한 해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3조5000억원가량 순매도(매도액이 매수액보다 많은 것)해 연간 기준으로 4년 만에 순매도세를 기록했고, 올 들어서도 1조4000억원가량의 순매도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 주가가 이 정도로 떨어질 일은 아니다"라며 개인투자자가 주식 저가 매수에 나서고 있지만, 외국인의 매도 행렬에 주가지수는 1900선까지 주저앉았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우리나라 주식을 팔고 나간 투자자 중엔 사우디아라비아 등 국제유가 하락으로 재정에 타격을 받은 중동계 자금이 상당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게 다 옐런 탓?'…커지는 비난 목소리
중국을 비롯해 브라질, 러시아, 남아공 등 주요 신흥국에서 벌어지는 경제 불안이 기본적으로 자국 내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기는 하지만, 최근 상황이 악화된 건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때문이라는 비난의 목소리도 나온다. 세계 경제의 절반을 담당하는 신흥국이 앓아누울 찰나에, 작년 말 미국 연준이 금리를 인상함으로써 이들 국가에서 자본이 빠져나가고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의 마틴 울프 칼럼니스트는 최근 칼럼에서 "작년 3분기 신흥시장에서 빠져나간 돈이 분기별 역대 최대치인 520억달러에 달한다"며 "신흥국이 자금 유출을 겪고 신용 거품이 꺼져가는 와중에 미국이 통화정책을 조인 것(금리를 인상한 것)은 중대한 실수(important blunder)"라고 지적했다.
미국 금리 인상이 신흥국 경제를 악화시키고, 이 부메랑이 다시 미국에 타격을 입힐지도 관심이다. 미국 연준은 13일(현지 시각) 발표한 경기동향 보고서 '베이지북'을 통해 12개 중 9개 연방은행 관할 지역에서 경제 활동이 확대됐으며 연말연시 쇼핑철을 맞아 대부분 지역에서 소비 활동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폭은 '미미하거나 점진적'인 데 그쳤고, 이전보다 소비 활동의 수준이 낮아지기 시작한 곳도 나타났다. 보고서는 "전반적으로 자동차와 항공 부문을 제외한 제조업의 경기는 약해졌고, 낮은 국제유가로 인한 영향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혼재됐다"고 썼다. 증시 투자자들이 '제조업 경기가 약화되고 있다'는 분석에 특히 우려하면서 주식을 팔아치워, 이날 뉴욕 S&P500 지수가 2.5%, 나스닥 지수는 3.41% 급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