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1.21 10:51
글로벌 수요 둔화로 수출 부진… 제조업 재고율 지수 고공행진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재고율 120대 넘는 기간 더 길어
한국 경제의 위기 신호등인 '재고율 지수'에 빨간불이 켜졌다. 글로벌 수요 둔화에 따른 수출 부진으로 제조업의 재고율이 작년 하반기 이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수준까지 올라가 내내 고공 행진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재고율이란 월말 재고 지수를 월중 출하 지수로 나눠서 산출하는 지표다. 팔리지 않고 창고에 쌓여 있는 제품 비중을 나타낸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 재고율 지수는 2010년 이후 빠르게 증가해 지난해 8월 129.6을 찍었다. 세계 금융 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12월 129.9 이래 최고치다. 지난해 9~11월에도 120대 후반의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대신경제연구소는 "2015년 현재 재고와 출하의 불균형 정도는 1997년과 견줄 수 있을 정도"라며 "지난 5년 동안 내수 및 수출은 거의 늘어나지 않았지만, 기업들이 생산을 지속하면서 재고가 꾸준히 늘었다"고 분석했다.
재고가 늘어나면서 재고 투자의 성장 기여도도 크게 늘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4년 경제성장률 3.3% 중 재고의 성장 기여도는 0.55%포인트였다. 작년 경제성장률 예상치 2.6% 중 재고의 성장 기여도는 0.8~0.9%포인트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재고의 성장 기여도가 높다는 것은 생산-소비로 연결되는 경기 순환이 원활하지 않고, 경제가 그만큼 건강하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다.
재고율 상승이 꼭 나쁜 현상만은 아니다. 경기가 살아날 것에 대비해 제품을 쌓으면 '좋은 재고'로 여겨지지만, 수요 부진으로 제품이 쌓이면 '나쁜 재고'로 본다. 좋은 재고는 제조업 가동률이 높아지지만, 지난해 11월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전월보다 1.2%포인트 하락한 72.7%를 기록했다. 2009년 4월 72.4%를 기록한 이후 6년 7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국제 신용평가 기관인 무디스도 지난해 8월 "급격한 재고 조정이 있을 경우 한국의 성장률이 더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재고율 상승의 가장 큰 원인은 글로벌 수요 부진이다. 김창대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글로벌 경기 침체뿐 아니라, 2000년대 중반 이후 민간 소비 증가율이 둔화되는 등 소비 패턴이 구조적인 변화를 보인 것도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재고율 상승 현상은 앞서 우리 경제가 겪은 위기 때보다 오래가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2001년 IT 거품 붕괴, 2003년 신용카드 대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등 경기 침체기마다 재고와 출하가 불균형을 보였지만,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실제 지난 세계 금융 위기 여파로 재고율 지수가 120대를 기록한 건 2008년 11월부터 3개월뿐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4월 재고율 지수가 121을 기록한 이후 현재까지 석 달을 제외하고 계속 120 이상의 높은 수치를 보였다.
일각에서는 재고와 출하의 불균형이 오래 지속된 원인을 저(低)금리에서 찾는다. 자금을 싸게 빌릴 수 있게 되자 기업들이 생산에 필요한 비용만큼 수익이 나도 생산을 계속했고, 반면 판매는 이뤄지지 않아 재고가 쌓였다는 것이다. 이런 좀비 기업의 수명 연장은 우량 기업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신경제연구소 박형중 연구원은 "일부 한계 기업이 생존을 위해 제품 가격을 인하하고, 시장점유율을 확대하려고 하면서 우량 기업의 수익성까지 악화됐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