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1.26 11:36
[경제 상황 보여주는 '경기동행지수' 이례적인 장기 횡보]
한국 경제, 평균 49개월마다 확장·수축 반복하는 사이클
2011년 8월 고점 찍은 후 저점이 관측되지 않는 상황… 언제 경기 회복될지 예측 불가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재정·통화정책에만 매달린 주요 국가들도 비슷한 고민
우리 경제가 상승하고 있는지 하강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인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이하 경기동행지수)가 45개월 연속 기준치인 100선 안팎에서 횡보하고 있다. 현재 경기 상황 판단에 이용되는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매월 취업자 수와 광공업 생산지수, 소매 판매액지수 등 경기와 밀접한 7개 지표를 가공해 만들어진다. 이 지수가 100을 넘으면 경기가 좋아지고 있다는 뜻이고, 반대로 100 아래이면 경기가 둔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1970년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후 경기동행지수는 49개월을 주기로 상승→정점(頂點)→하강→저점(低點)으로 이어지는 경기 사이클을 반복해왔다. 평균 4년에 한 번씩 정점과 저점이 모두 나타날 정도로 경제에 역동성이 있었던 것이다. 과거 경기동행지수는 경기가 좋은 정점일 때는 103~105선을 오갔고, 경기 저점일 땐 95~97선에서 움직였다. 하지만 경기동행지수는 2012년 3월 101을 기록한 이후 작년 11월까지 45개월 연속 99~101의 좁은 박스권에 갇혀 있다.〈그래픽 참조〉 마치 다리미로 주름을 편 것처럼, 상승도 하강도 아닌 어정쩡한 국면이 4년 가깝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엿가락처럼 늘어진 경기 사이클
경기동행지수가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전문가들 사이에선 "경기가 과연 바닥을 치고 회복되고 있는지 의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통계청에 따르면 경기동행지수가 마지막으로 102를 찍었던 2011년 8월이 정점이었지만, 거의 5년이 지난 지금도 언제가 저점이었는지 불확실한 상태다. 통계청 관계자는 "2012년 말~2013년 초가 경기 저점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난해 6월 경기동행지수가 더 낮아지면서 저점을 찍기가 어렵게 됐다"며 "현재로서는 한국 경기의 사이클이 길어졌는지, 짧아졌는지, 저점을 지났는지, 아닌지조차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만일 지금 같은 횡보 상태가 지속될 경우, 우리 경제는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장기적인 경기 수축기(정점에서 저점까지 걸린 기간)를 겪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과거 우리 경제에서 경기 수축기가 가장 길었던 때는 외환 위기 전후인 1996년 4월~1998년 8월까지 29개월이었고, 카드 대란이 있었던 2003년 1월에서 2005년 4월까지 28개월이 두 번째였다.
'경기 사이클 실종'은 한국 경제 안팎으로 위기가 겹친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전 세계적으로 금융 위기가 터진 2008년 이후 침체됐던 경기가 회복세를 타는 듯하다가 2012년부터 유로존 재정 위기 등을 거치면서 다시 가라앉기 시작했다"며 "국내 경기도 세계 경제 침체의 여파로 2012년부터 다시 안 좋아진 데다, 세월호 참사, 재정 절벽, 메르스 등의 악재(惡材)를 겪었다"고 했다.
또 '미지근한' 위험이 구조적으로 굳어진 현재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한국 경제 내부적으로 인구 고령화에 따른 생산성 하락, 좀비 기업 장기화 등 고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도, 그렇다고 한꺼번에 곪아터지지도 않는 상황이 지속되는 데다, 세계경제도 완만한 침체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로 각국이 비슷한 고민
경기 사이클 실종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겪는 '뉴노멀'(새로운 표준)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세계 각국이 동원한 재정·통화정책의 한계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재정·통화정책으로 경기가 급격하게 떨어지지 않도록 막는 데는 성공했지만, 구조 조정 등 개혁 조치를 미루면서 추후 경제가 성장할 동력 또한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김창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재정 위기를 겪은 남유럽 국가 등은 국내 반발과 정치권 갈등으로 구조 개혁 등을 추진하지 못해 GDP 대비 부채비율이 여전히 높은 상황"이라며 "한국의 경우에도 저(低)금리 정책과 재정 투입으로 경기가 꺼지지도, 나아지지도 않는 상태를 지속해왔다"고 지적했다.
경기 흐름에 불확실성이 커지면 기업이나 가계 같은 경제주체들의 심리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정부 정책이나 기업의 경영 전략을 세우는 데 지표가 되는 경기 사이클이 희미해지면서, 경제주체들이 소비나 투자를 늘리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 경제가 경기 반등의 힘을 잃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개구리가 뛰어오르기 전에 몸을 움츠리는 것처럼, 경기 저점을 지나며 구조 조정을 확실히 하지 않으면 나중에 경기가 좋아질 때 반등하는 힘도 그만큼 약해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