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2.01 10:08
[H지수 7800선까지 하락… ELS 상품들 대거 원금 손실 구간]
- ELS 74%가 원금 非보장형
주식이나 선물·옵션 비중 높아… 만기 때 원금손실 구간 밑이면 기초자산 떨어진 만큼 손실
- 변동성 큰 H지수에 ELS 쏠림
위험 높지만 기대수익률 올라가… 작년부터 ELS 70%가 H지수 中증시 폭락하자 후폭풍 맞아
올 1월 금융투자 시장의 가장 뜨거운 이슈는 'H지수 ELS'였다. 연초 중국 증시 쇼크로 H지수(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SCEI)가 급락한 탓이다. 지난 21일에는 H지수가 7800선까지 떨어지면서 작년 최고점(5월)에 비해 반 토막이 났다. 이 때문에 H지수를 기초 자산으로 삼은 증권사들의 ELS(주가연계증권) 상품들이 대거 원금 손실 구간에 빠졌다.
현재 발행 잔액이 68조원 수준인 ELS 시장에서 H지수 ELS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55%(약 37조원)에 달한다. 유안타증권 분석에 따르면 H지수가 7500~8000선으로 내려가면 2조3600억원, 7000~7500선에서 4조6400억원, 6500~7000까지 내려갈 경우 8조2700억원이 원금 손실 구간에 빠진다. H지수 ELS 투자자들이 공포에 떨 수밖에 없는 이유다. H지수 ELS는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증권사에는 확실한 '수익 원천', 투자자에게는 저금리 시대를 이겨내는 '중수익 상품'으로 각광받았다. 그런데 어쩌다 국내 금융시장을 혼돈에 빠트린 '국민 불안 상품'이 됐을까.
◇변동성 높을 땐 '중위험·중수익' 아닌 '고위험·고수익'
ELS는 기초 자산 가격이 일정 범위 내에서 움직이면 예금 이자보다 높은 수익(연 4∼8%)을 얻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중위험·중수익' 파생상품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기초 자산 가격이 안정적일 때 얘기다. 변동성이 큰 증시에서 ELS는 주식처럼 고위험·고수익 상품으로 둔갑한다. 안전한 상품으로 믿고 가입했다가 손해를 본 투자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먼저 ELS의 구조를 이해해야 하는데, ELS는 크게 원금 보장형과 원금 비보장형으로 나눌 수 있다. 증권사들은 형태에 따라 ELS 판매 대금을 달리 운용한다. 원금 보장형 ELS의 경우, 판매 대금 대부분으로 위험도가 낮은 채권을 사들이고 일부만 선물·옵션 등에 투자한다. 채권 이자 수익으로 고객들의 원금을 보존하고, 선물·옵션 수익으로 고객에게 미리 약속한 수익률을 상환하는 식이다.
반면 전체의 74%(약 50조원)를 차지하는 원금 비보장형 ELS에서는 상대적으로 채권 비중이 낮고 주식이나 선물·옵션 비중이 높다. 다행히 증권사의 운용 성과가 좋으면 투자자와 증권사 모두 수익을 얻지만, 운용 성과가 나쁠 때는 두 가지 경우가 생긴다. 우선 만기 시점에 고객이 가입한 ELS가 원금 손실(녹인·Knock-In) 구간 위에 있을 경우, 증권사가 손실을 보고 고객에게는 원금과 약정 수익을 준다. 반대로 원금 손실 구간 아래에 있을 경우, 고객은 수익은커녕 기초 자산이 떨어진 만큼 손실을 본다. 증권사도 ELS 손실 위험을 분산(헤지)하기 위한 선물·옵션 거래에서 이미 손실을 본 뒤다. 고객에게도, 증권사에도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증권사들은 최근 선물·옵션 수익률이 여의치 않자 채권 수익률이라도 올리기 위해 신용등급이 낮은 채권에까지 투자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요즘 같은 장세에서 ELS는 중위험·중수익보다 고위험·고수익 상품에 가깝다"고 말한다.
◇왜 하필 홍콩 H지수였나
증권사들에 ELS는 중요한 수익 원천이었다. 높은 판매 수수료에다 운용 수익도 꾸준했던 편이라 고객에게 약정 수익을 지급하고도 많은 이익을 남겼다. 그런데 저금리 기조가 이어져 채권 금리가 떨어지고, ELS의 주요 기초 자산이 되는 각국 주가지수 성장세도 둔화됐다. 그러면서 변동성이 큰 홍콩 H지수가 각광받기 시작했다.
선물·옵션으로 구성한 파생상품은 변동성이 커야 수익이 커진다. H지수처럼 변동성이 큰 지수가 ELS 상품에 편입될수록 손실 위험은 높아지지만, 증권사들이 고객에게 보장할 수 있는 ELS의 기대 수익률은 높아진다. 증권사들은 ELS 상품 하나를 여러 개 기초 자산으로 구성하면서도 H지수 편입 비중을 늘렸다. 이때 여러 기초 자산 중 하나만 원금 손실 구간에 빠져도 투자자가 손실을 보는 구조라, 투자 위험도가 높아지는 대신 제시 수익률은 올라간다. 증권사들은 판매율을 높이기 위해 작년 초부터 ELS 상품의 70∼80%를 H지수 ELS로 발행했다. H지수를 기초로 구조만 조금씩 바꿔 매주 수십종을 찍어냈다. 이것이 결국 중국 증시 폭락과 함께 증권사와 은행에 예상치 못한 화살로 되돌아왔다.
◇당장 손실 아니지만 "비정상 방치한 것이 문제"
H지수를 기초 자산으로 하는 ELS가 대거 원금 손실 구간에 진입했다고 해서 곧바로 손실이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보통 발행 후 3년째인 만기 시점에도 일정 수준 이상 회복하지 못할 때 지수 하락 폭만큼 원금 손실을 입는다. 작년 4∼6월 H지수가 1만3000∼1만4000선을 오갈 때 발행된 상품들이 만기인 2018년 4~6월에도 H지수가 8000선 이상으로 회복되지 않으면 원금 손실이 확정된다. 개인의 ELS 가입 시기와 가입 조건별로 손익분기점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금융 당국도 "현재 시장의 H지수 ELS 공포는 과하다"고 말한다. 증권사의 건전성에도 이상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H지수 ELS 쏠림 현상을 소극적으로 방치한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실제 금융 당국은 작년 하반기부터 부랴부랴 "H지수 ELS 발행을 줄이라"고 나섰다. 만약 중국 증시가 이대로 침체를 이어가면 증권사와 은행에서 H지수 ELS가 안전한 상품이라 듣고 투자했던 투자자들의 손실이 확정된다.
이중호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2년 전부터 지적돼 온 쏠림 현상을 지금껏 방치한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며 "길게 보면 H지수가 반등할 가능성이 높지만, 이번 사태로 저금리 시대에 좋은 투자 상품인 ELS의 신뢰도가 훼손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홍콩 H지수(Hang Seng China Enterprises Index·항셍중국기업지수)
홍콩 증시에 상장한 중국 기업 가운데 시가총액, 거래량 등의 기준에 따른 우량주 위주 40개 종목으로 구성된 지수다. 편입 종목은 중국공상은행(ICBC) 등 금융권이 70% 정도를 차지하고, 중국 본토와 홍콩 증시에 중복 상장돼 거래되는 종목도 있다. 2000년 1월 3일 지수 2000을 기준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