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2.02 09:53
[글로벌 해운업계 최악의 해 예고 속 "정부가 나서야" 지적]
정부 "확실한 자구 노력 보여야"… 업계 "정부, 구조조정만 요구"
현대상선 자구안 제출했지만 유동성 위기 불끄기 장담 못해
외국 업체들 생존 위한 합종연횡, 각국 정부도 긴급 자금 수혈
현대상선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사재(私財) 출연을 포함한 자구안을 채권단에 제출했다고 지난 31일 밝혔다. 이에 따라 1일 주식 시장에서 이 회사 주가는 12.11% 급등했다. 채권단이 경영난을 겪고 있는 현대상선을 지원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퍼진 것이다. 그러나 국내 해운업체들의 앞날은 어둡다. 세계적인 경기 악화로 글로벌 해운업계가 올해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내와 세계 해운업계는 처한 현실만 같을 뿐 대처하는 해법(解法)에서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점이다. 해외에서는 각국 정부가 큰 규모의 지원을 이미 실시했고, 선사들도 인수·합병(M&A)을 통해 덩치를 키워 생존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지원을 요구하는 업계와 구조 조정을 요구하는 정부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선사 자구안, 관건은 용선료 재협상
현대상선의 자구안에는 ▲현정은 회장의 사재 출연 ▲현대증권 매각 재추진 ▲벌크 전용선 사업부 매각 등이 포함됐다. 이와 함께 현대상선은 용선료(선박 대여료) 인하도 시작하고 있다. 현대상선 등 국내 선사들은 해운업 호황기에 맺은 고가(高價) 용선료 계약으로 현재 연간 수조원대의 용선료를 지출하고 있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한때 하루 5만달러이던 컨테이너선 용선료가 8000달러까지 내린 만큼, 용선료를 내려 같이 살자고 설득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계약 변경이 쉽지는 않다는 전망이 많은 상황이다. 채권단 관계자는 "자산 매각 등 일회성 조치보다는 용선료 인하를 통한 수익성 개선이 채권단 설득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고점 대비 40분의 1로 쪼그라든 글로벌 시황
문제는 전 세계 해운 업황이 올해 최악일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해운업계 대표적인 경기 선행 지표인 발틱운임지수(BDI)는 지난달 29일 기준 317을 기록하며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 최고점이었던 2008년 5월(1만1793)과 비교하면 40분의 1 수준이다. 컨테이너 운임을 나타내는 상하이발(發) 컨테이너 운임지수(SCFI)도 591로 작년 같은 기간의 절반도 안된다.
폐선(廢船)도 잇따르고 있다. 차라리 고철로 팔겠다는 것이다. 도이체방크는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 벌크선 폐선 물량이 역대 최대규모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업계 생존 위한 몸부림
이런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해 글로벌 선사들은 선제적인 합종연횡에 나서고 있다. 세계 3위 해운선사인 프랑스의 CMA-CGM은 13위인 싱가포르 APL을 인수했고, 중국원양운수(COSCO)는 중국 차이나쉬핑(CSCL)의 컨테이너 부문을 사들이기로 했다. 이 같은 인수·합병(M&A) 효과는 국내 업계에도 영향을 준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은 더 커진 해외 업체들에 밀려 타격을 받게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각국 정부도 자국 해운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중국은행을 통해 COSCO에 108억달러(13조원)의 신용을 지원한 데 이어 2014년 8월에는 중국초상은행이 대출 49억달러를 추가 제공했다. 세계 1위 해운업체 머스크를 가진 덴마크는 이 회사에 수출신용기금이 5억2000만달러, 정책금융기관이 62억달러를 대출했다. 독일 함부르크시(市) 정부는 2012년 2월 세계 3위의 선사인 자국 하팍-로이드사(社)의 지분 20.2%를 7억5000만유로(약 1조원)에 사들였다. 독일 중앙 정부는 이와 별도로 이 회사 채무 18억달러에 대한 지급 보증도 섰다.
그러나 정부와 업계는 첨예하게 부딪치는 상황만 지속하고 있다.
한국선주협회 조봉기 상무는 "해운업은 국가 기간산업이자, 안보산업"이라며 "정부가 구조조정만 지나치게 앞세울 경우, 기업의 경쟁력이 축소·상실돼 회복이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정부는 "부채 비율 400% 이하 등 기준을 맞추는 자구 노력을 하는 곳만 지원 대상"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투자은행업계에서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회사 매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현재 우리 해운업계가 처한 가장 큰 문제점은 대응이 늦었다는 점"이라며 "정부와 채권단, 업계 모두 어떻게든 결론을 빨리 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