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2.03 09:22
[금융권 '낙하산 人事' 새 풍속도 ]
대외적으로 노출 부담
금감원 부서장 인사하자 금융권 "또 자리 만들어야 하나"
손보협회 등 금융권 협회들 "우리가 낙하산 착륙장이냐"
김형돈(56) 전 국무총리실 조세심판원장은 행시 26회로, 1990년대 중반부터 공직 생활 내내 세제(稅制) 업무만 담당했다. 금융 정책 등 다른 업무는 맡아본 적이 없다. 지난달 11일 퇴직했는데, 엉뚱하게도 은행연합회 전무로 내정됐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관료 출신이긴 하지만 은행 업무를 전혀 담당한 적이 없으니 '낙하산' 등의 문제가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금융권에는 "금융위원회가 기획재정부 세제실 출신에게 자리를 하나 내주고, 다음번에 도움을 받으려고 하는 모양"이라는 말이 돈다. 은행연합회만이 아니라 보험, 증권 등 금융업권별 협회들도 '넘버2'인 전무 자리를 외부 인사에게 내주거나, 신설을 검토하고 있어 논란거리를 만들고 있다.
잠잠하던 금융감독원도 부원장보 이상 임원들이 금융 관련 단체나 기관 등에 하나 둘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주춤했던 금융권 '낙하산 인사'가 슬금슬금 부활하고 있다. 세월호 사태의 여파로 '관피아' 척결에 나선 정부가 작년 3월 관료들의 취업제한 기간을 3년으로 늘리는 등 공직자윤리법을 강화했지만, 눈길이 덜 가는 구석이나 구멍 난 곳을 비집고 들어가는 낙하산 인사들이 늘고 있다. 민간 금융회사로 가기 어려워지자, 협회나 단체, 금융공기업에 자리가 날 때마다 이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다시 펴진 금감원의 낙하산
지난달까지 금감원 금융투자감독국장을 맡았던 조국환씨는 1일 사표를 내고 IBK 신용정보회사 부사장실로 출근한다. 은행 쪽을 담당했던 또 다른 국장은 현재 신용협동조합중앙회 임원으로 가기 위해 취업 승인 신청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작년 초 이전에 물러나 퇴직 1년 정도 지난 금감원 간부들은 대부분 금융권에 새 직장을 구했다. 최종구 전 수석부원장은 지난달 SGI서울보증 사장에 취임했고, 이기연 전 부원장보는 여신금융협회 부회장, 정이영 전 조사연구실장은 저축은행중앙회 전무로 옷을 갈아입었다. 조영제 전 부원장은 금융연수원장, 박영준 전 부원장은 캠코 부사장, 권인원 전 부원장보는 주택금융공사 상임이사, 최진영 전 부원장보는 보험연수원장, 허창언 전 부원장보는 금융보안원장, 박임출 전 자본시장조사국장은 예탁결제원 상무 등 공기업과 관련 조직에도 대거 자리를 잡았다.
금감원이 2일 조직을 개편하면서 부서장 인사를 단행하자 금융권은 바짝 눈치를 보는 모습이다. 이번 인사로 1960, 1961년생 국장들이 모두 주요 보직에서 물러났다는 분석이 금감원 안팎에서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 인사 후폭풍이 걱정된다. 물러나는 국장급 이상들이 가만히 있겠느냐, 어디든 자리를 찾으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료들은 협회 '넘버 2' 자리 노려
민간 금융회사 진출이 막히면서, 금융권의 업권별 협회들이 낙하산에 시달리고 있다. 회장 자리는 대외적으로 노출되는 부담이 커서 주로 '넘버2'를 노린다. 금융투자협회는 청와대 선임행정관을 지냈던 한창수씨를 작년 3월 전무로 선임했다. 최근 만들어진 신용정보원은 전 금감원 제재심의국장인 김준현씨를 전무이사로 선임했다.
손해보험협회와 생명보험협회는 현 정부 들어 '부회장'직을 폐지했지만 최근 들어 전무 등의 직제 도입을 추진 중이라 "낙하산 착륙장을 만들려는 것이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생명보험협회는 최근 정관을 변경해 '수석 본부장'을 신설했고, 손보협회는 전무직 신설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들이 지분을 갖고 있는 부실자산처리회사인 유암코 임원 자리 등도 낙하산 부대가 겨냥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