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시환급제 있으나 마나... 관광객 "차라리 일본 갈 걸"

    입력 : 2016.02.17 09:39

    [외국인 관광객 발길 돌리게 하는 즉시환급제 3大 결함]


    ①시행 점포 수 태부족
    1만2000여개 사후면세점 중 78곳만 도입… 日은 3만개 육박


    ②너무 낮은 금액 한도
    건당 3만~20만원까지만 적용… 관광객들 "터무니없이 모자라"


    ③정부 준비 미흡
    결제 시스템도 없는 상황에서 "설연휴 전 시행하라" 밀어붙여


    이달 15일 낮 서울의 한 백화점에서 쇼핑하던 관광객 궈자(郭佳·24·중국 베이징)씨는 주머니에서 영수증 뭉치를 꺼내면서 "한국은 외국인에 대한 배려가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영수증들은 백화점에서 화장품·가방·의류 등 200여만원어치를 구입하면서 받은 것이다. 그는 "즉시환급제도를 하는 곳은 많지도 않고 한도도 적어 공항에 가서 환급받아야 한다"며 "일본에 가면 좋았을 걸 후회된다"고 말했다.


    외국인 관광객들의 쇼핑 편의를 위해 올해부터 사후(事後)면세점 즉시환급제도가 도입됐지만, "준비가 미흡하다"라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①시행 점포 수와 계산대가 적고 ②금액 한도도 낮은 데다가 ③시스템도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16일 서울 중구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한 외국인이 물건값을 계산하며 부가세를 환급받고 있다. 사후면세점의 즉시환급제도에 대한 준비가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롯데마트 서울역점은 계산대 24대 중 18대에서 즉시환급이 가능하도록 해 외국인 관광객 고객을 90% 늘리는 효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김연정 객원기자


    사후면세점 즉시환급제도는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건당 3만~20만원 물품에 대해 1인당 최대 100만원까지 부가가치세(10%)와 개별소비세(5~20%)를 뺀 면세 가격으로 물건을 사게 해주는 것이다. 사후면세점은 일반 상점이지만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부가세를 빼주는 상점이다. 외국인은 이 사후면세점에서 세금이 포함된 가격으로 물건을 산 뒤 출국할 때 공항 세금 환급 창구에서 세금을 돌려받다. 이 절차가 번거롭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관광업계의 의견을 정부가 수용해 물건 구입 시 부가세를 미리 빼주는 즉시환급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외국인 관광객 "일본 갈 걸 후회된다"


    첫 번째 문제는 즉시환급이 가능한 매장 수와 계산대가 턱없이 적다는 것이다. 현재 전국 1만2000여개의 사후면세점 중 78개(2월 11일 기준)만 즉시환급제도를 도입했다. 우리보다 먼저 즉시환급제도를 시작한 일본은 모든 사후면세점이 즉시환급제를 실시하고 있다. 일본의 사후면세점은 작년 10월 현재 2만9047개다.


    매장별 계산대도 적다. 백화점들은 층마다 1~2곳, 길거리의 일반 매장은 대부분 계산대 하나만 환급용으로 마련해놓아 관광객들이 길게 줄을 서야 한다. 중국 광둥에서 온 샤오이(18)씨는 "백화점에서 계산대에 찾아가 줄을 서서 계산하고 부가세를 환급받는 데 20분이 걸렸다"고 말했다.


    즉시환급 금액 한도가 너무 낮은 것도 문제점이다. 한 대형마트에서 만난 마누엘 가르시아(36·스페인)씨는 "아기 분유만 샀는데 20만원이 넘었다"며 "여행 기간이 한 달인데 1인당 100만원 한도는 터무니없이 모자라다"고 했다.



    홍콩에서 온 베로니카(45)씨는 대형마트에서 즉시 환급을 받기 위해 35만원어치의 물건을 두 번에 나눠 계산했다. 일본은 물품 한도가 5000엔(5만3000원) 이상, 1인 한도는 50만엔(530만원)으로 한도가 우리보다 크다. 임용목 한국관광공사 일본팀장은 "일본은 아예 상한선을 폐지하는 안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은 '시스템 미비'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정부가 작년 하반기 승인 시스템도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도 시행을 발표하더니 올 1월 말쯤 유통업체들을 모아놓고 '설 연휴 전에 즉시환급제도를 시행하라'고 해 급하게 계산대 등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편의점들도 지난 1월 즉시환급제도를 도입한다고 발표했지만 아직 제대로 시행을 못 하고 있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관세청 시스템에 편의점 시스템도 맞춰야 하는데 아직 프로그램 개발도 못 했다"고 했다.


    ◇"한도 파격적으로 늘려야"


    전문가들은 쇼핑 제도의 개선이 이른 시일에 이뤄지지 않으면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악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쇼핑 위주 관광을 즐기는 중국인 관광객은 한때 주로 한국에서 쇼핑 관광을 했으나 지난해부터 일본으로 대거 몰려가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방한(訪韓) 외국인 관광객은 1323만여명으로 전년 대비 97만명 줄었다. 외국인 관광객이 감소한 것은 2003년 이후 처음이다. 같은 기간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973만명으로 47% 정도 증가했다. 중국 설 연휴인 춘제 기간 중국인 관광객 유치에서도 일본에 밀렸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이훈 한양대 교수(관광학)는 "일본은 시내 대형면세점 위주로 진행하던 한국의 면세 시스템을 벤치마킹한 데 이어 즉시환급이라는 무기를 완전정착시켰다"며 "우리도 즉시환급 한도를 파격적으로 늘리고 점포 수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