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M&A' 日 371조, 中 345조... 韓은 48조원

    입력 : 2016.02.19 09:59

    ['M&A 三國志' 밀리는 한국]


    한국 기업들 해외 M&A 소극적… 오너 3~4세의 위험 회피 성향… 해외개발 실패한 경험 등 작용
    中, 선진 기술 확보 위해… 日은 저성장 돌파 위해 해외로… 한국은 M&A 전략·목표 미흡


    중국 항공·운송 대기업인 HNA그룹은 18일(현지 시각) 미국 최대 IT 기기 유통업체 가운데 하나인 인그램(Ingram) 마이크로를 총 60억달러(약 7조30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HNA은 하이난항공 등을 자회사로 두고 있으며, 임직원 수가 18만명이 넘는다. 미국 내 물류 사업을 강화하고 성장세가 큰 신흥국 물류 시장 공략을 위해 인그램을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최대 맥주 회사인 아사히는 지난주 유럽 주요 맥주 브랜드인 페로니(이탈리아)와 그롤시(네덜란드)를 3300억엔(약 3조5000억원)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자국 내에서 확실한 1위인 아사히는 글로벌 시장에서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중국과 일본이 새해 들어서 무서운 기세로 해외 기업을 사들이고 있다. 특히 중국의 해외 인수·합병(M&A) 규모는 올해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한국 기업은 해외 M&A에 소극적이다. 산업 구조가 엇비슷해 한국·중국·일본 3국이 세계시장에서 치열한 경합을 벌이는 것을 감안하면, M&A 경쟁에서 뒤처진 한국이 앞으로 중국·일본에 더 크게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중 해외 M&A 규모, 한국의 7~8배 수준


    본지가 미국 경제전문 매체 '블룸버그' 자료를 집계한 결과, 2011~2015년 5년 동안 한국의 해외 기업 M&A 규모는 389억달러(약 48조원)이었고, 같은 기간 일본과 중국은 각각 3020억달러(약 371조원)와 2808억달러(약 345조원)로 분석됐다. 두 나라의 해외 M&A 규모가 한국보다 각각 7.8배, 7.2배 정도 많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 은 "한국과 일본의 GDP(2015년 IMF기준) 격차가 3배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일본은 공격적 야성이 넘치는 반면 한국은 국내에만 머무르는 '순한 양(羊)'인 셈"이라고 말했다.


    특히 중국은 올해 초부터 이달 17일까지 건수로는 56건, 금액으로는 700억달러가 넘는 해외 M&A를 성사시켰다. 인수 대금 10억달러가 넘는 M&A만 10건에 육박한다.


    ◇"M&A 전략 없고 오너들 '소극 경영'"


    한국 기업이 해외 M&A 경쟁에서 유독 약한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기업 오너 3~4세의 '위험 회피(risk averse)' 성향을 꼽는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사회 전반에 팽배한 경제민주화 및 반(反)기업 정서와 이명박 정권 때 해외 자원 개발 상처가 큰 데다 재계 3~4세들의 위험 회피 성향 등이 해외 기업 인수를 두렵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해외 투자는 국내 투자보다 훨씬 리스크가 높은데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배임(背任)으로 걸리는데 누가 위험 감수를 하며 도전을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일부에선 중국·일본과 달리 M&A 전략과 목표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은 한국·일본 추격을 위한 선진 기술 확보라는 명확한 목표를 갖고 M&A에 나서고 있다. 일본은 장기 저성장과 인구 감소에 따른 시장 축소를 극복하고 지속 성장을 위해 해외 기업 사냥을 가속화하고 있다.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는 "일본과 중국 사이에 끼어 있는 한국 기업의 오너와 CEO들이 해외 M&A 관련 전략이나 비전, 철학이 없다 보니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차원의 M&A 지원 필요"


    전문가들은 주력 업종이 동시다발적으로 침체에 빠진 우리 경제가 활력을 되찾으려면 지금이라도 해외 M&A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 우량한 해외 기업이 헐값에 많이 나왔는데, 그때 우리가 해외 M&A에 적극 나섰다면 지금처럼 성장 동력 부재(不在)로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일본이나 중국처럼 정부가 앞장서서 해외 M&A 활성화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정부와 민간 은행이 공동출자한 일본국제협력은행(JBIC) 주도로 해외 M&A 자금과 정보 제공을 지원하는 일본과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 구현을 위해 정부와 중국개발은행(CDB) 등이 '실크로드 펀드' 등을 조성해 해외 기업 인수를 돕는 중국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 사모(私募)펀드인 '퍼미라'의 이수용 한국 대표는 "동북아 3국 경제 전쟁에서 한국이 살아남으려면 한국 정부가 지금부터라도 해외 M&A를 적극 권장하고, 기업은 M&A 정보가 풍부한 해외 사모펀드와 협업 관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