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 1인당 구매액 첫 감소... 규제가 만든 '덫'

    입력 : 2016.02.29 09:29

    日·中은 규제 푸는데, 우리는… - 사업권 기간 줄이고, 수수료 올려
    성장 둔화되는데 사업권 남발… 국내 면세업 경쟁력 떨어뜨려


    "명품은 유럽 면세점이 더 싸" - 중국인 씀씀이 예전같지 않아
    시계·패션 매장보다 화장품 붐벼… 中國內 면세점 가파르게 성장


    이달 25일 낮 서울 용산구에 있는 신라아이파크 면세점 전용 주차장. 버스 57대를 세울 수 있는 공간에 관광버스 3대만 서 있었다. 지난해 관세청으로부터 면세 사업권을 받아 두 달 전 문을 연 이 면세점은 3층에 화장품을 사려는 쇼핑객이 드문드문 있을 뿐, 명품 시계·패션 매장이 있는 4층 등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비슷한 시기에 문을 연 서울 여의도 한화갤러리아 면세점도 비슷했다. 면세점 쇼핑을 마치고 버스에 탄 중국인 25명 가운데 쇼핑백을 들고 탄 사람은 6~7명에 불과했다.


    지난 26일 낮 서울 용산 신라아이파크 면세점(위)과 여의도 한화 갤러리아 면세점의 한산한 모습. 문을 연 지 2개월이 지났지만, 관광객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2009년 이후 외국인 관광객 급증에 힘입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겨졌던 면세점 업계에 비상(非常)이 걸렸다. 규제에만 집착하는 정부 정책과 중국·일본 등의 대형 면세점 육성 같은 해외 악재까지 겹치면서 면세점이 자칫 '썩은 동아줄'이 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지난해 외국인 1인당 면세점 구매금액 사상 첫 감소


    본지가 28일 한국면세점협회와 업계 자료를 분석한 결과, 국내 면세점 매출의 약 70%를 차지하는 면세점에서 외국인 1인당 평균 구매액은 지난해 200달러로 전년(230달러)보다 15% 정도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우리나라 관광 면세점 업계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면세점 업계에서 지난해 외국인 총 매출액(5억4170만달러)도 0.6% 마이너스 성장해 사상 최초로 뒷걸음질 쳤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정부의 부정부패 척결 정책과 경기(景氣) 침체가 맞물려 중국인 방문객들의 씀씀이가 예전 같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본지가 서울 시내 면세점에서 만난 중국인들은 값비싼 명품보다 한국 화장품을 주로 구매했다. 서울 장충동 신라면세점에서 만난 왕슈리(22)씨는 "명품은 유럽 면세점이 더 싸다"며 "한국에서는 주로 화장품과 식품만 산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정부의 규제 일변도 정책이 위기를 더 부채질하고 있다. 면세점 특허 수수료 대폭 인상은 물론 사업권 기간을 10년에서 5년으로 줄이고 사업권을 원점(原點)에서부터 재심사하는 '5년 한시법'은 기업들의 장기 투자를 가로막고 면세업 업계 전반의 경쟁력 약화를 초래하고 있다.


    최낙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고객 모집·브랜드 유치 등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신규 사업자가 기존 사업자가 내던 수준의 실적을 곧바로 내기는 쉽지 않다"며 "6개월에서 1년 정도 정착 기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사업권을 잃은 SK워커힐 면세점은 연 3000억원, 롯데 월드타워점은 연 5000억원 매출을 올리던 곳이다. 반면 신규 사업자인 한화갤러리아와 HDC신라 면세점의 지난 두 달간 매출은 각 300억원대로 올해 2000억원 달성 여부가 불투명하다.


    ◇日·中은 정부 주도로 면세점 육성 강화


    한국 면세점 업계 추월을 겨냥해 주변국이 대대적으로 면세점 확장 경쟁에 나서는 것도 큰 부담이다.


    주로 개별 상점에서 즉시 세금을 환급받는 사후(事後)면세점만 운영해오던 일본은 면세점 규제를 대폭 완화해 올해부터는 한국형(型) 시내 면세점을 모방한 대형 면세점을 도쿄 긴자(銀座) 등에 선보인다. 이미 지난해 일본을 찾은 중국인은 전년의 약 2배인 499만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반면,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598만명으로 전년 대비 2.3% 줄었다.


    중국은 더 무섭다. 중국 정부는 이달 23일 베이징과 상하이에만 있던 입국장 면세점을 자국내 13개 국제공항과 6곳 항구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가죽구두·스킨케어 제품에, 올 들어서는 여행가방·의류 같은 수입품에 부과하는 수입 관세 인하를 결정했다. 중국인들이 자국에서 수입품을 사도록 유도하는 조치다.


    정재완 한남대 교수는 "정부와 업계가 합심해 대안을 마련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면, 한국·중국·일본 3개국의 면세점 삼국지(三國志) 구도에서 한국이 탈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