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급성장... '영업용 화물차 허가제' 갈등 커진다

    입력 : 2016.02.29 09:42

    - 화물차 수급 논란
    과잉 공급으로 허가제 된 뒤 정부, 車主 고려해 허가량 조절
    택배업계 "차량 부족 심각"


    - 쿠팡 자체 배송에 소송戰
    '하얀 번호판' 자가용으로 운송
    쿠팡 "무료 배달은 택배 아니다", 물류협회 "물건값에 배송료 포함"


    국내 운송업계에 '노란 번호판' 전쟁이 불붙고 있다. 노란 번호판은 국토교통부가 영업용 화물 차량에 허가제로 발급하는 번호판이다.


    택배업체들은 지금 당장 1만3000대가 부족하다는 입장이고, 국토부는 올해 3390대 증차만 허용했다. 택배업체들은 모바일 쇼핑몰 1위인 쿠팡이 노란 번호판이 아닌 자체 차량으로 배송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소송을 걸었고, 쿠팡은 "무료 배송은 사은품 같은 것으로 우리가 택배업을 하는 것은 아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업체·정부 간, 업체 간 줄다리기가 결국은 온라인 쇼핑몰의 수요 폭발에 대해 대처하는 해법의 차이에서 온다고 보고 있다.


    ◇급증하는 택배 물량, 더딘 택배차 증차


    국토교통부는 최근 "올해 4월까지 3390여대의 택배 차량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택배업체에 540여개, 택배업체와 계약을 맺은 개인에게 2850여개의 '영업용 번호판'을 배정할 예정이다.


    하지만 CJ대한통운·한진택배 등 국내 택배업체들의 단체인 한국통합물류협회 측은 그보다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배경순 물류협회 사무국장은 "현 시점에서만 택배차 1만3000여대가 더 필요한 상황"이라며 "향후 물동량 증가에 따라 이 수치는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화물 차량은 정부 허가제다. 화물연대 파업을 계기로 2004년 '영업용 번호판 발급 기준'이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변경됐다. 당시까지만 해도 화물차 과잉 공급이 문제로 지적됐기 때문이다.


    쿠팡의 '로켓배송' 트럭(왼쪽)과 CJ대한통운 트럭. 쿠팡은 자가용 차량에 발급되는 '하얀색 번호판'을 단 자체 트럭을 통해 배송을 실시하고 있는 반면, CJ대한통운은 정부의 허가를 받은 영업용 '노란색 번호판'을 단 차량을 쓰고 있다. /쿠팡·CJ대한통운 제공


    그러나 이후 PC쇼핑몰·모바일쇼핑몰의 온라인 쇼핑몰이 성장하면서 사정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택배용 화물차 부족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물류협회에 따르면, 2006년 연간 6억건 규모이던 택배 물동량은 작년 18억건으로 3배 커졌다. 올해는 20억건이 예상된다.


    현재 택배업계에서는 약 4만대의 화물차(1.5톤 이하 트럭)가 운용되고 있다. 정부는 2004년 허가제 도입 이후 10년 가까이 택배용 화물차 숫자를 늘리지 않다가, 2013년에 1만여대, 2014년에 9000여대를 늘렸다.


    이주열 국토교통부 물류산업과 과장은 "화물차 공급은 화물차주들의 생계와 직결되는 문제"라며 "철저한 수급 분석을 통해 부족하다는 판단이 설 때에만 하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반면 물류협회 관계자는 "신규 허가가 없었던 기간을 감안해야 한다"며 "수요에 비해 부족 현상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이러는 사이 시장에서는 노란 번호판의 몸값이 급등했다. 정부는 2013년부터 택배용 화물차에만 새롭게 발급하는 번호판에 '배'자(字)를 넣어 별도로 관리하면서 양도를 금지했지만, 기존 영업용 차량 번호판은 개인 간 매매가 가능하다. 한 화물차주는 "영업용 화물차 번호판이 최근 시장에서 20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며 "중고 트럭을 사서 택배용으로 개조하는 데 드는 비용이 2000만원 이내인 점을 감안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라고 말했다.


    ◇노란 번호판 vs 하얀 번호판


    쿠팡과 택배업체 간 소송도 이러한 논란의 연장선상에 있다. 쿠팡은 2014년 3월부터 소비자가 주문한 9900원 이상 상품을 무료로 배송해 주는 서비스를 도입했다. 이를 위해 자체 트럭 1100여대와 배달 직원 3000여명을 갖췄는데, 이 트럭에는 모두 자가용 차량에 발급되는 '하얀 번호판'이 붙어 있다.


    물류협회는 이에 대해 작년 10월 "쿠팡의 배달 서비스를 중단시켜 달라"는 내용의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다. 운수사업법상 '사업자가 제3자의 요구에 의해 돈을 받고 운송해 줄 경우'에 영업용 차량을 쓰도록 하고 있는 조항을 어겼다는 것이다.


    쿠팡은 이에 대해 "택배는 제3자의 물건을 배송해주고 돈을 받는 서비스인데, 우리가 사들인 물건을 우리가 무료로 배달하는 건 택배가 아니다"고 말했다.


    반면 택배업계는 물건값에 사실상 배송료가 포함됐기 때문에 무료 배달은 눈속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달 1일 택배업체의 가처분 신청은 기각됐다. 단, 이때 재판부는 "쿠팡의 배송이 타인의 요구에 응한 유상 운송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본안 소송 등에서 충실한 증거 조사와 심리를 거쳐 판단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며 여지를 남겨 본소송에서는 어떤 결과나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물류협회의 소송 제기 등이 정부를 향한 '보여주기'라는 시각도 있다. A택배사 관계자는 "사실상 경쟁사인 쿠팡은 훨훨 나는데, 우리만 낡은 규제법에 묶여 있다"며 "새로운 택배법을 도입해 기존 운수사업법을 대체하고, 택배 산업을 고부가가치 물류 사업으로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쿠팡의 배송이 전체 택배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는 점은 쿠팡이나 택배업체나 잘 알고 있다. 다만 택배업계는 제2, 제3의 쿠팡이 나타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택배 차량 허가제를 유지할 것인지, 또는 얼마나 바꿀 것이냐는 데 모이고 있다. 최시형 아주대 물류대학원 교수는 "현재 운수사업법 대신 우편법의 적용을 받는 우체국 택배차나, 항공법을 적용받는 DHL 같은 국가 간 물류사업자의 배송 차량은 자유롭게 증차가 가능하다"며 "산업·국가 간 장벽이 허물어지는 융합시대에 맞춰 이런 허가제를 완전히 없애는 방향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현종 국토교통부 물류정책관은 "정부가 작년부터 업계·학계·관계가 모두 참여하는 포럼을 만들어 해법을 찾기 위한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