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기업이 인수한 해외브랜드, 中高價가 효자

    입력 : 2016.03.10 09:34

    [인수 브랜드 실적 희비교차]


    케이스위스·타이틀리스트… 국내 기업이 인수한 후 실적 급등


    글로벌 소비 침체 직격탄
    아닉구딸·바바라·콜롬보… 高價 명품 브랜드는 고전


    이랜드는 2013년 해외 시장 공략을 위해 미국의 중고가 스포츠용품 브랜드 '케이스위스'를 인수했다. 유럽·중국에서도 유통망을 확장해 첫해 1640억원이던 이 브랜드의 매출은 지난해엔 두 배 가까운 3000억원이 됐다. 반면, 이랜드가 2008년 인수한 이탈리아 고가(高價) 가방 브랜드 만다리나덕의 매출은 2012년 410억원에서 지난해 340억원으로 뒷걸음질했다.


    한국 기업이 인수한 해외 브랜드의 실적이 엇갈리고 있다. 중고가 브랜드들은 선전한 반면, 가격이 비싼 브랜드들은 대체로 실적이 나쁜 것이다. 글로벌 경기(景氣) 침체로 실속 있는 상품이 소비자 선택을 더 많이 받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가성비 높은 중고가 브랜드'가 孝子


    패션그룹형지는 작년 3월 프랑스 골프웨어 '까스텔바쟉'의 아시아 판매권을 인수했다. 이 브랜드 매출은 지난해 300억원에서 올해 1000억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강종헌 패션그룹형지 팀장은 "프랑스 디자이너의 튀는 디자인에 우리나라 20~30대까지 적극 호응하고 있다"며 "올해는 중국에도 진출한다"고 말했다.


    중국 상하이에 있는 미국 스포츠용품 브랜드 '케이스위스' 매장이 고객들로 북적거리고 있다. 이 브랜드는 이랜드가 2013년 인수한 것으로 작년까지 매출이 두 배 가까이 성장했다(왼쪽 사진). 반면 2008년 인수한 이탈리아의 고가 가방 브랜드인 만다리나덕의 중국 상하이 매장은 한산한 모습이다. /이랜드 제공


    휠라코리아는 2011년 미래에셋과 함께 미국 골프용품 브랜드 타이틀리스트를 운영하는 아쿠쉬네트를 인수했다. 아쿠쉬네트는 영업이익이 2010년 805억원에서 2014년 1312억원으로 상승해 미국 상장(上場)을 앞두고 있다.


    2005년 성주그룹이 인수한 독일 가방 브랜드 MCM도 마찬가지다. 인수한 그해 600억원이던 매출은 10년 만인 2014년 5829억원으로 9배 넘게 커졌다. 중국·동남아·유럽 등 40여 개국에 진출해서 매출액의 절반을 해외에서 벌어들인다.


    반대로 한국 기업이 인수한 고가 명품 브랜드는 고전(苦戰)하는 경우가 많다.


    아모레퍼시픽이 2011년 인수한 프랑스 고급 향수 브랜드 아닉구딸이 대표적이다. 2012년 197억원이던 매출이 2014년 179억원으로 줄었고, 순손실은 같은 기간 7억원에서 31억원으로 늘었다.


    남영비비안이 2010년 인수한 프랑스 고가 속옷 브랜드 바바라도 매출이 감소했고 적자(赤字)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두 브랜드는 주력 시장인 유럽에서 불황에 따른 소비 감소 영향이 컸다는 지적이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옛 제일모직)이 2011년 인수한 이탈리아 명품 가방 브랜드 '콜롬보' 역시 2013년 이후 적자를 내고 있고 지난해는 매출도 줄었다. 악어 가죽으로 만드는 콜롬보 가방 가격은 보통 3000만원 안팎이다. 전해영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중상위 브랜드는 중산층 수요가 꾸준해 선전(善戰)한 반면, 명품 고가 브랜드들은 글로벌 소비 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결과"라고 말했다.


    ◇"피인수 기업 존중하고 화학적 결합 이뤄야"


    인수한 기업을 효과적으로 경영하느냐 여부도 실적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 변수이다. '케이스위스'를 인수한 이랜드는 스포츠 브랜드 업무 경험이 풍부한 미국 현지인을 발탁해 새 CEO로 임명했다. 중국 생산공장을 베트남·인도네시아 등으로 옮겨 원가(原價)를 절감하고 이랜드 유통망을 활용해 판매망을 넓히는 '지원자' 역할에 충실해 실적 호조를 낳았다.


    반대로 '만다리나덕'은 이탈리아에 파견된 한국인 법인장이 관리를 맡았고 유럽 근무 경험이 없는 간부들이 3년씩 순환 근무하고 있다. 이랜드 관계자는 "브랜드 재정비에 시간이 걸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 넥슨의 지주회사 NXC가 인수해 매년 5%씩 성장하며 지난해 2000억원의 매출을 올린 노르웨이 유모차·가구 회사 스토케는 시사점이 크다. NXC는 인수 후 이사진 대부분을 유임하고 기존 기업문화를 존중해 화학적 결합에 성공했다.


    김주영 서강대 교수(경영학)는 "문화가 다른 서구(西歐) 기업을 인수해 아시아 기업이 점령군처럼 경영에 개입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인수한 브랜드가 일부 실패하더라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장석인 산업연구원(KIET) 박사는 "한국 기업은 부가가치가 높은 브랜드라는 무형 자산을 관리하고 외국 기업을 인수·경영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며 "실패를 밑거름으로 삼아 더 큰 인수에 도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