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3.11 09:26
[대기업 신규 사외이사 분석]
원활한 對官 업무 수행 위해 전직 관료 비중 44%에 육박, 방패막이·로비용 인선 지적도
한진해운·현대重선 자격 논란, LS·효성그룹은 학연 선호해… 美선 대부분 기업 임원 출신
올해 삼성그룹은 계열사 신규 사외이사 10명 가운데 6명을 전직 장·차관으로 채웠다. 현대차그룹은 신규 사외이사 4명 가운데 3명이 국세청·금융감독원·공정거래위원회 등 사정(司正)·감독기관 출신이다.
10일 본지와 대신경제연구소가 이달 4일까지 정기 주주총회 소집공고를 한 주요 대기업 310개 계열사 신규 사외이사 선임 안건을 분석한 결과, 기업마다 선호하는 직종이 달랐다. SK그룹은 신규 사외이사 3분의 2가 교수였고, 롯데그룹은 10명 중 3명이 전직 장·차관, 4명이 사정·감독기관 출신이었다.
이 조사를 보면 10대 그룹 신규 사외이사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직업은 교수(24%)였다. 하지만 전직 장·차관이나 사정·감독기관 출신인 전관(前官) 비중은 44%에 육박했다. 안상희 대신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대기업들이 대관(對官) 업무에 도움을 받기 위해 고위 관료나 감독기관 출신을 사외이사로 선호하는 경향이 올해에도 반복됐다"고 말했다.
◇"사외이사 10명 중 4명이 前官"
본지가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영학과)와 공동으로 최근 4년간 100대 기업 사외이사 직업을 분석한 결과, 전직 고위 관료와 감독·사정기관 출신 등 전관 비중은 2012년에는 38.5%였으나 2013년(40.9%)부터 2014년(41.3%)과 지난해(40.8%) 모두 40%대를 유지했다. 10명 중 4명은 전관으로 채우는 '황금비율'이 고착화된 것이다.
1998년 도입된 사외이사 제도의 취지는 "지배주주와 경영진에 대한 효과적인 감시와 견제를 통해 주주들 이익을 대변한다"였다. 하지만 이런 취지와 달리 사외이사를 대외용 방패막이나 로비용, 보험용으로 활용하는 병폐가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사외이사 선임 논란도
일부 기업에선 사외이사 선임을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한진해운이 신규 사외이사 후보로 전 KSF선박금융 감사를 추천한 데 대해, 경제개혁연대는 "거래 관계에 있던 회사의 사외이사를 맡는 것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현대중공업 사외이사로 추천됐던 민유성 전 산업은행장은 최근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게 빌미가 돼 사외이사 예정자에서 자진 사퇴했다.
이창민 교수는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상장기업 사외이사 가운데 해당 기업 경영진과 고교 동문이나 대학 동창 등 학연(學緣)에 따른 사외이사 비중이 최고 17%에 달했다"고 말했다. 아예 계열사 임원 출신을 사외이사로 영입하거나 거래처 관계자와 소송대리인이 이름을 올리는 사례도 있었다. 유독 '학연'에 따른 사외이사를 선호하는 대기업은 LS그룹과 효성그룹이었다.
이런 식으로 '내부자 사외이사'가 많아질수록 결국 '거수기 역할'에 그칠 공산이 더 커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에선 기업 임원 출신 사외이사 많아
경제개혁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소액주주의 추천 ▲자격 요건 강화 같은 제도 보완을 건의하고 있지만, 기업들은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제프리 네퍼 미 조지아대 교수 연구에 따르면 미국 기업 사외이사 10명 중 7명은 기업 전·현직 경영인이었고, 그다음은 금융인과 법조인 순서로 많았다. 전관의 비중은 1%를 밑돌았다. 월마트의 경우, 작년 사외이사 10명 중 경영자 출신이 7명, 금융인 1명, 교수 1명, 전직 관료 1명이었다.
최한수 조세재정연구원 박사는 "지배주주와 밀착되거나 독립성에 문제가 있는 사외이사 임명을 제한하고 단순한 고수익 과외활동으로 사외이사에 참여하려는 풍토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