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3.11 09:45
[Cover Story] 글로벌 경제 마지막 보루… 美 경제 향방 따른 투자 전략 가이드
"1년 안에 미국이 불황에 빠질 확률이 100%다."(짐 로저스)
"미국 경제는 이미 휘청거리고 있다. 투자자들은 정부가 발표하는 통계 말고 급여세 같은 '진짜 통계'에 주목해야 한다."(조지 소로스)
유명 투자자인 짐 로저스와 조지 소로스가 최근 잇따라 미국 경제를 어둡게 진단해 세계 투자자들이 혼란에 빠졌다. 미국은 작년 말 7년여 만에 제로 금리 시대를 끝내고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금리 인상은 2008년 금융 위기로 크게 상처 입었던 경제가 정상 궤도에 올라섰다는 일종의 공식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불과 3개월 만에 다시 침체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모든 수를 다 쓰고 마지막으로 마이너스 금리라는 극약 처방을 도입한 유럽과 일본, 25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의 경제성장률을 받아 든 중국 등 주요국이 세계 최대 소비국인 미국의 경제 회복을 '마지막 보루'로 삼고 있다. 미국 경제 향방에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국내 투자자들 역시 미국 경제의 앞날에 따라 투자 전략을 가다듬어야 할 전망이다.
큰손들의 잇따른 미국 경제 걱정
실업률이 5%로 금융 위기 이전 수준까지 낮아진 것은 미국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는 뚜렷한 증거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역시 금리를 올리면서 고용시장 안정을 중요 근거로 들었다. 하지만 일자리가 늘어나는 데 비해 임금 상승률은 이를 따라가지 못한 채 최근 둔화하고 있다. 높은 임금을 받는 양질의 일자리보다는 일용직 숫자가 늘어나 고용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소비자들의 향후 경기 전망을 반영하는 소비자심리지수 역시 계속 하락하는 중이다.
미국 기업들의 이익 성장률이 둔화하는 것도 걱정거리다. 중국 등 미국 바깥 경기가 나빠 수출 사정이 좋지 못하기 때문이다. 블룸버그가 다우지수를 구성하는 30개 기업의 올 1분기 순이익 추정치 변동 상황을 따져보니, 연초 추정했던 것보다 순이익이 더 늘어날 걸로 예상되는 기업은 5곳(머크·캐터필러·존슨앤드존슨·맥도널드·월트디즈니)뿐이고, 나머지 25곳의 이익 추정치는 악화됐다. 하향 조정폭이 평균 -7.4%로 우리나라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의 조정 폭(-4.4%)보다 크다. 이재만 하나금융투자 투자전략팀장은 "기업 이익 성장이 둔화되면 투자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투자가 감소하면 고용 불안으로 이어진다"며 "전미공급관리자협회(ISM) 제조업 고용지수가 석 달 연속 기준선인 50을 밑돌고 있고, 2월 비(非)제조업 고용지수도 2014년 2월 이후 처음으로 50 밑으로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래도 믿을 건 미국뿐?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경제가 휘청거리고, 일부 경제 데이터가 올 들어 예상을 밑돈다고 해서 미국이 경기 침체로 접어들었다고 볼 근거는 없다고 말하는 전문가도 많다. JP모건자산운용의 데이비드 캘리 글로벌 수석 시장전략가는 본지 인터뷰에서 "중국 경착륙에 대한 우려, 불확실한 유가, 변동성이 큰 금융시장 등이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이런 우려가 과도한 수준이라 생각한다"며 "미국의 주택 판매와 내구재(TV, 가구 등 오래 쓰는 물품) 주문 같은 데이터가 양호하고, 핵심물가지표를 볼 때 미국 경제의 물가 상승 압력도 높아지고 있다"며 미국 경제가 확장 국면을 유지할 것이라는 기존 전망을 유지한다고 말했다. 가치 투자의 대가인 워런 버핏은 최근 CNBC 인터뷰에서 "4~5개월 전보다는 다소 상황이 약화한 것 같다"면서도 "미국 경제는 계속 성장하면서 가치가 올라갈 것이다. 나는 거의 늘 주식을 매수해왔다. 주식을 순매수하지 않았던 달이 거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초 국제 유가가 배럴당 30달러마저 위태로워 모두 에너지 기업 주식을 투매할 때도 미국 에너지 업체 주식을 대량 매수한 그다.
윤창용 신한금융투자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수출이 부진하다고는 하나 미국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10% 남짓으로 낮고, 소비와 주택시장 등 내수는 양호하기 때문에 전년과 비슷한 성장은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달러화 가치의 향방
그렇다면 미국 달러 가치는 계속 오를까. 지난해 미국 금리 인상을 앞두고 국내에서도 달러나 달러 표시 자산을 사두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작년 10월 달러당 1120원대였던 환율이 지난달 말 1238원까지 급격히 올라(달러화 가치 상승·원화가치 하락) 달러화를 사둔 투자자들은 크게 기뻐했고, 미처 이 대열에 동참하지 못한 사람들은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환율이 다시 1200원 초반대로 뚝 떨어졌다. 유럽중앙은행(ECB), 일본은행(BOJ) 등 주요국 경기부양 정책에 대한 기대로 주식 같은 위험 자산에 대한 투자 심리가 살아나 대표적인 안전 자산인 달러의 인기가 다소 떨어졌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이렇듯 달러 강세의 압력이 완화되는 움직임이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윤창용 이코노미스트는 "국제 원자재 가격이 반등하면서 그간 약세 폭이 가팔랐던 신흥국 통화 가치가 회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장기적 관점에선 시각이 엇갈리긴 하지만, 국내에선 달러 강세를 점치는 의견이 다소 우세하다. 그간 달러화 가치가 지나치게 오른 데다 이런 추세가 더 지속되면 미국 수출과 기업 이익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도 달러화 강세가 주춤할 것이라고 보는 의견이 있는 반면, 미국 경기 회복으로 금리 인상이 더 진행되면 필연적으로 달러화 가치는 더 오를 것이라고 보는 의견도 있다. 허진욱 삼성증권 거시경제팀장은 "미국이 이미 완전고용 수준에 도달한 상황에서 에너지와 식품 같은 변동성이 큰 핵심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상승률이 연준 목표치인 2%에 근접한 1.7%까지 올랐기 때문에 금리 인상 속도가 예상보다 빠를 수 있다"면서 "이렇게 되면 달러화 강세가 앞으로 1~2년간 더 지속될 것"이라고 봤다. 그는 "올해 말 원화 환율 수준을 1270원, 내년 말엔 1300원까지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박형중 대신증권 자산배분실 팀장은 "올해 중에 환율이 1300원을 넘어설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박 팀장은 "단기 투자가 아닌 3년 이상 장기 투자할 생각으로 달러 펀드, 미국 주식이나 ETF(상장지수펀드), 달러 RP(환매조건부채권) 등에 투자하길 권한다. 달러는 위기가 올 때마다 강세를 보이는 일종의 보험"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