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애플은 지금 드라마 촬영 중

    입력 : 2016.03.14 09:43

    [美 공룡 IT기업들, 직접 동영상 제작·방영… 오리지널 콘텐츠 공세]


    - 지상파·케이블 주도권 흔들
    최대 유료 동영상 업체 넷플릭스, 미드 '하우스 오브 카드4' 공개
    아마존·페이스북도 뛰어들어 자사 서비스 통해 볼 수 있게


    - 국내서도 움직임
    SK브로드밴드 TV드라마 제작, KT·LG유플러스도 검토 중
    "시장 작아 성공 미지수" 지적도


    세계 최대 유료(有料) 동영상 업체인 미국 넷플릭스(Netflix)는 지난 4일 정치권의 암투를 그린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 4'를 공개했다. 3년 전 첫선을 보여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끈 드라마의 최신작이다. 한국 시청자들도 시즌 4는 물론이고, 전작(前作)인 시즌 1~3까지 모두 스마트폰·TV·PC 등 인터넷이 연결된 기기에서 볼 수 있다.


    이 시리즈는 처음 기획 단계부터 제작, 방영까지 모두 넷플릭스가 직접 담당한 것이 특징이다. 영화사나 방송국에서 영화·드라마·예능 프로그램을 사온 것이 아니라 동영상 업체가 자체 제작했다는 뜻에서 이 드라마는 '오리지널 콘텐츠(Original Contents)'라고 불린다.


    넷플릭스 외에도 동영상 서비스를 하는 구글·애플·아마존 같은 IT(정보기술) 기업도 연이어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뛰어들고 있다. TV드라마·예능·영화 같은 인기 콘텐츠를 방송사나 영화사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확보해 제작·유통 분야의 영향력을 키워가는 것이다.


    ◇넷플릭스·유튜브·아마존, 오리지널 콘텐츠 늘린다


    구글은 지난달 '제시카 존스 또는 깨지지 않는 키미 슈미트'라는 드라마를 자체 제작해 선보였다. 공짜 서비스인 '유튜브'가 아니라 월 9.99달러(약 1만1900원)를 받는 신규 서비스 '유튜브 레드'를 통해서다. 구글은 7500만명에 달하는 유료 회원을 확보한 넷플릭스와 경쟁하기 위해 오직 '유튜브 레드'에서만 볼 수 있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최대한 많이 확보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아마존은 3년 전 '아마존 스튜디오'란 콘텐츠 제작사를 설립해 매년 10여편의 드라마와 영화를 만들고 있다. 이 작품들은 아마존이 운영하는 동영상 서비스 '아마존 프라임'에서 독점 제공한다. 애플도 '바이털 사인스'라는 드라마를 제작해 조만간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페이스북이 드라마 제작을 준비 중이란 소문도 무성하다.


    국내에선 초고속인터넷과 IPTV(인터넷TV) 사업을 하는 SK브로드밴드가 3200억원 규모의 '콘텐츠 펀드'를 만들어 연내에 드라마 기획·제작에 나서기로 했다. 연간 40~50개의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금액이다. 이 회사의 이인찬 사장은 "한국판 '하우스 오브 카드'와 같은 성공 스토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 작품들은 SK브로드밴드가 운영하는 IPTV에서 독점 방영하거나 지상파·케이블과 제휴해 동시에 제공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쟁사인 KT와 LG유플러스도 TV 드라마 자체 제작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협소한 국내 시장 규모는 한계


    오리지널 콘텐츠 경쟁에 뛰어들려면 대규모 제작 비용이 필요하다. 넷플릭스는 신작 드라마 '마르코폴로'에 9000만달러(약 1070억원)를 투자하는 등 올해 50억달러(약 5조9700억원)를 콘텐츠 제작과 확보에 쓰겠다고 밝혔다. 수백조원에 달하는 현금을 보유한 구글과 애플도 동영상 서비스를 키우기 위해 콘텐츠 제작 예산을 늘리고 있다.


    IT 기업들의 도전에 직면한 전통적인 지상파·케이블 방송사들은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미국에선 오리지널 콘텐츠에 재미를 느낀 시청자들이 매월 5만원가량의 시청료를 내야 하는 케이블TV 계약을 해지하고, 월 1만~1만5000원 정도인 넷플릭스 같은 동영상 서비스로 옮아가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케이블 서비스를 끊는다는 의미의 '코드 커팅(cord cutting)'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블룸버그는 "비아콤 등 케이블방송사들이 올해 콘텐츠 제작 비용을 더 많이 쓸 계획"이라며 "새롭게 등장한 경쟁자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국에선 협소한 시장 규모 탓에 오리지널 콘텐츠가 성공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넷플릭스는 3000만명 이상의 유료 가입자를 확보하고 나서야 자체 제작에 나섰다. 하지만 국내 유료방송 가입자는 모두 합쳐봐야 2000만~2500만 명 정도다. 국내 시장을 다 차지해도,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SK브로드밴드의 윤석암 미디어부문장(전무)은 "쉽지 않은 도전이란 걸 알지만, 고품질 드라마를 만들면 국내뿐 아니라 해외 시장을 개척할 가능성도 커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