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3.15 09:36
국민·하나銀·현대증권 서비스… 우리·신한銀 등 상품 출시 준비
아직 창구서만 이용 가능하지만 수수료 내려가면 급성장 예상
英 RBS 직원 550명 줄이기로… 고용 불안 초래할 가능성도
인공지능(AI) 컴퓨터 '알파고'와 바둑 기사 이세돌 9단의 대국이 세계의 관심을 끄는 가운데 금융권에도 인공지능 바람이 점차 거세지고 있다.
로봇이 펀드매니저·자산관리사(PB) 역할을 대신하는 로보어드바이저를 투자 상품에 도입하는 금융사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KEB하나은행과 현대증권이 이미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시작했고, 우리은행·신한은행·대우증권·한국투자증권 등 10여개 금융사가 관련 상품 출시를 준비 중이다. 대부분이 독립 로보어드바이저사들과 협력을 맺어 투자자문 및 일임투자를 하는 식이다. 작년 7월 '에임(AIM)'이 최초로 국내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에 선을 보인 뒤 5개 독립 로보어드바이저사가 활동 중이다.
로보어드바이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존 금융사들의 대안으로 부각됐다. 최저 0.15%의 수수료와 24시간 시스템화된 운용 방식이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특히 미국에선 벤처기업들이 시장을 주도하면서 웰스프런트(Wealthfront)·베터먼트(Betterment)가 각각 20억달러(2조4000억원)·14억달러(1조7000억원)를 운용 중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아직 독립 로보어드바이저사들에 개별 고객들과 온라인으로 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은행이나 증권사가 중간에 끼어서 상품을 고객들에게 판매하는 과도기적 형식을 띠고 있다.
◇은행권, 로보어드바이저 잇단 출시
작년 하반기 증권사들이 독립 로보어드바이저사들과 협업 계약을 맺고 이 시장에 진출을 선언한 이후 은행들도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 도입을 속속 추진 중이다. 창구를 방문한 고객들에게 투자 목적·기간·목표수익률 등을 물어 투자 성향을 분석한 뒤 이에 맞는 최적의 상품 배분 및 추천 상품, 예상 수익률 등을 제시해주는 식이다.
지난 1월 KB국민은행은 은행권 처음으로 로보어드바이저 상품인 '쿼터백 R-1'을 내놨다. 독립 로보어드바이저사인 쿼터백투자자문의 ETF(상장지수펀드) 투자 상품을 신탁 형태로 판매 중이다. 현재 운용 규모가 20억원 정도다. KEB하나은행은 지난 3일 자체 개발한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 'Cyber PB'를 출시했다. 우리·신한은행도 로보어드바이저사 파운트·DNA와 각각 손을 잡고 올해 안에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내놓는다는 목표다.
증권사들의 경우 작년 10월 대우증권이 로보어드바이저사와 첫 업무협약을 맺은 이후 이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대신자산운용은 조직 내에 별도의 로보어드바이저 부문을 신설하기도 했다. 길재욱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목표수익률 3~4%에 수수료 1%포인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며 "5~10년 투자하는 퇴직연금 등이 발달하면서 낮은 수수료를 무기로 들고 나온 로보어드바이저가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은행원 고용 불안 촉발할 수도
하지만 문제점도 다수 있다. 현재 국내에서 시행 중인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는 미국 등에서 시행되는 방식과 다르다. 현행법상 창구에서 얼굴을 마주한 채 투자 계약을 체결케 돼 있어 고객이 온전한 온라인 투자를 할 수 없다. 은행·증권사 모두 창구에 가야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상품 판매 유통 중간 과정에 은행·증권사들이 끼면서 수수료는 여전히 높다. KB국민은행이 판매 중인 로보어드바이저 상품은 선·후취 수수료 2%를 매년 내야 한다. 현재 판매 중인 주식펀드 수수료(1.25%)보다 높다. 미국에선 수수료가 싼 ETF 위주로 추천부터 투자까지 이뤄지는데 한국에선 기존 PB서비스에서 해온 주식·펀드 등 투자 상품 소개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약점이다. 안창국 금융위원회 자산운용과장은 "아직 로봇이 알아서 투자까지 해주는 단계까진 가지 못했다"며 "향후 관련 규제 등을 완화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가 확산되면 금융업종 종사자들의 고용이 불안해질 수 있다. 이런 우려는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최근 영국 은행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는 로보어드바이저를 도입하는 대신 투자자문 부문에서 550명의 인력을 줄이기로 했다. 임형석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단순하고 기계적인 업무를 하는 직원들을 좀 더 창의적인 부문으로 재배치하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
로봇을 의미하는 '로보(robo)'와 자문 전문가를 의미하는 '어드바이저(advisor)'의 합성어. 컴퓨터 알고리즘(연산 방식)을 활용해 개인의 자산 운용을 자문하고 관리해주는 서비스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