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3.21 09:54
KB·한국금융 등 6곳 각축… 매각 가격, 6000억~6500억원 전망
현대그룹이 '상선' 살리려면 '증권' 매각해 유동성 확보해야
현대증권 인수전(戰)이 뜨겁다. 오는 25일 본입찰 마감을 앞두고 입찰 참가자들의 요구로 예비실사 기간이 연장되는 등 전례 없이 치열하다. 당초 예비실사는 이달 11일까지였는데, 인수 후보자들이 "실사 기간이 충분치 않다"고 해 18일로 연기됐다.
현대증권 매각은 누가 증권업계 2위가 될지를 판가름하는 대형 입찰인 데다,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현대그룹 회생 방안의 하나라는 점에서 해운업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KB금융·한국금융 2파전… 1위 미래에셋도 컨소시엄 참여 저울질
현재 현대증권 인수전에는 KB금융지주와 한국금융지주 등 2곳의 금융그룹과 파인스트리트, LK투자파트너스, 글로벌원자산운용, 홍콩계 액티스 등 4곳의 사모펀드를 합쳐 총 6곳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작년 말 불발에 그쳤던 현대증권 인수전에 다시 불이 붙은 이유는, 3개월 전 대우증권 매각에서 미래에셋증권에 고배를 마셨던 KB 금융지주와 한국금융지주가 동시에 현대증권 인수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KB는 KB투자증권을, 한국금융지주는 한국투자증권을 갖고 있다. 자기자본 3조2789억원의 현대증권을 인수하면 두 증권사의 자기자본은 각각 3조9016억원과 6조5838억원으로 순식간에 몸집이 불어난다. 특히 한국투자증권은 통합 미래에셋대우증권에 버금가는 초대형 증권사가 될 수 있다.
가격도 매력적이다. 일단 2조3000억원대였던 대우증권보다 싸다. 이번에 매각하는 현대증권 지분은 현대상선이 보유한 22.43%와 기타 주주들이 가진 0.13%를 포함해 총 22.56%다. 이 지분의 시장 가치는 약 3400억원(18일 종가 6076원 기준)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경영권 프리미엄 등을 더하면 6000억~6500억원이 될 것으로 금융권은 예상한다. 가격 경쟁이 일어나면 다소 높아질 수는 있지만, 2조원도 넘는 초대형 매물 대우증권보다는 훨씬 낮은 금액이다.
다크호스는 LK투자파트너스와 파인스트리트다. LK투자파트너스는 앞서 대우증권을 품에 넣은 미래에셋증권과 손잡고 이번 인수전에 뛰어든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급부상 중이다. 미래에셋증권 관계자는 "LK투자파트너스로부터 '전략적 투자자'로서 현대증권 입찰 컨소시엄에 함께 참여하는 것은 어떠냐는 제안을 받은 상태"라며 "현재 투자 검토 중이고, 곧 컨소시엄 참여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비록 전략적 투자자라고 해도 미래에셋이 사모펀드와 함께 인수전에 나서는데 대해서는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파인스트리트는 작년 말 현대증권 인수전에서 인수 대상 후보 1위였던 일본계 오릭스에 이어 2위였다. 당시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관계자는 "오릭스가 제시한 인수 가격 등은 파인스트리트에 비해 크게 나을 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현대증권 팔아야 현대상선 침몰 막는다
현대그룹 입장에서도 이번에는 현대증권 매각에 좀 더 속력을 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을 살리려면 현대증권을 매각해서 유동성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현대증권 매각이 현대상선 유동성 위기 극복에 절실하다고 본다. 산업은행이 현대상선에 갖고 있는 채권 금액은 1조2000억원으로, 누구보다 현대증권 매각을 바라는 입장이다. 현대증권 매각에 산업은행이 직접 관여하지는 않지만 "신속하게 일정을 진행해 6월 말까지 매각을 완료할 계획"이라며 압박하고 있다.
해운업계에 대한 정부 지원을 받으려면 현대상선은 부채비율을 400% 밑으로 낮춰야 한다. 작년 12월 현재 현대상선의 부채비율은 1700%에 육박한다. 부채비율을 낮추려면 자본금을 늘려야만 한다. 필요한 돈은 9000억원 정도다. 현대증권을 매각해 최소 6000억원 정도를 받으면 이 돈 가운데 현대상선이 현대증권 지분을 담보로 빌린 돈 3600억원을 제하고, 남는 2400억원 정도를 쓸 수 있다. 현대상선은 이만큼이라도 유동성을 확보한 뒤 용선료 협상과 채권단의 출자 전환을 끌어내 부채비율을 낮추겠다는 계산이다. 현대상선 채권단 관계자는 "현대그룹이 현대증권을 매각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현대상선 정상화에 대한 의지가 있는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