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도 2代가 맞들면 낫다

    입력 : 2016.03.21 10:17

    ["믿을 건 가족뿐"… 부모·자식 힘합쳐 사업전선 뛰어들어]
    청년 취업난·조기퇴직 겹쳐… 부모 노후자금 올인은 피해야


    대학에서 호텔외식학을 전공한 엄태율(25)씨는 지난해 8월 서울 상왕십리동에 어머니(51)와 함께 치킨집을 열었다. 엄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1년 동안 수십 차례 직장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취업에 실패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내가 돈을 댈 테니 함께 장사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창업을 제안했다. 엄씨 모자(母子)가 함께하는 치킨집에선 어머니가 주방일을 도맡고, 엄씨는 매장 관리와 배달을 담당한다.


    김모(26)씨는 아버지와 함께 창업의 길로 들어선 케이스다. 지난해 2월 대학 체육교육과를 나온 김씨는 경기도 수원에 프랜차이즈 빙수 전문점을 열었다. 교사 임용고시 준비를 할까도 생각했지만, 스크린 골프장을 운영하던 아버지(60)가 사업을 해보자고 아들 손을 잡아끌었다. 김씨는 "창업 선배인 아버지의 노하우를 많이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13일 서울 상왕십리동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엄태율(왼쪽)씨와 어머니 이순영씨가 웃고 있다. 이 모자(母子)는 함께 창업한 데 이어 동업도 하고 있다. /고운호 객원기자


    부모와 자녀가 힘을 합쳐 자영업에 도전하는 '2대(代) 공동 창업'이 요즘 업계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인 제너시스 BBQ가 2013년부터 2015년까지 3년 동안 새로 문을 연 매장 171곳을 살펴본 결과, 부모·자식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점포가 37곳, 21.6%에 달했다. 2010~2012년 개업한 130곳 가운데 부모·자식 공동대표인 곳이 11군데(8.5%)였던 것에 비하면 '2대 창업' 비율이 2.5배로 늘어난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청년 취업난이 갈수록 심화하고, 50대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 연령에 도달하면서 빚어지는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목돈을 가지고 은퇴한 부모 세대가 초기 창업 자금을 대고,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자식 세대가 노동력을 제공하는 식으로 동업(同業)에 나서는 것이다. 프랜차이즈 요식업체 관계자는 "2대 창업은 가게 운영 경비를 줄일 수 있을뿐더러 창업 실패 위험도 낮출 수 있다"면서 "과거 자영업을 주도했던 '부부 창업'이 지난 3년 새 5%쯤 줄어든 반면 2대 창업은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라고 했다.


    젊은 자녀가 기업에 취직하지 않고 바로 자영업에 뛰어드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부모 세대의 인식 변화도 '2대 창업' 증가에 영향을 준 요인(要因)으로 꼽힌다. 경기도 부천에 사는 안모(여·27)씨는 최근 명예퇴직한 아버지(54)와 함께 조그만 음식점을 열었다. 안씨는 "부모님은 당초 내가 장사하는 걸 반대하셨지만 대학 졸업 후 취업이 안 되고, 아버지도 직장을 떠나게 되면서 '가족의 힘을 믿고 한번 해보자'는 쪽으로 생각을 돌렸다"고 했다.


    부모와 자식이 공동 창업을 하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역할 분담을 한 사례도 있다. 지난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이모(여·30)씨는 어머니(57)와 자본금을 반씩 분담해 의류 판매업체를 차렸다. 이씨는 인터넷 쇼핑몰을 맡고, 의류매장을 찾는 고객들에게는 어머니가 옷을 판다. 이씨는 "어머니와 역할을 나눠 서로 다른 고객층을 공략하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대학과 프랜차이즈 업체는 2대 창업을 겨냥한 프로그램을 속속 내놓고 있다. 경기대는 2014년부터 '가족과 함께하는 창업 캠프'를 열고 있다. 경기대 창업지원단 전신아 매니저는 "자식이 기업에 비정규직으로 취직하느니 창업하는 게 낫다는 부모가 적지 않아 캠프를 열게 됐다"고 했다. 외식업체 관계자도 "요즘은 가족 창업에 대한 문의가 많고 창업설명회 때 관심도 뜨겁다"고 말했다.


    하지만 2대 창업 역시 실패할 경우에 대비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창업 자금이 대부분 부모의 노후 대비 자금 등에서 나오는 만큼 처음부터 자본을 과도하게 투자해 올인(다걸기)하는 방식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영업자 10명 중 7명이 5년 안에 문을 닫는 게 현실"이라며 "2대 창업이 자칫 가계를 빚더미와 빈곤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