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3.22 09:24
사업 재편 이어 인사·문화 혁신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처럼 결재 줄이고 변화에 빠르게 대응"
"오너·최고위층에 권한 몰린 삼성, 단기간에 바뀌는 건 힘들다" 지적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내부 DNA 개편에 나선다. 작년까지는 사업 매각·재편 등 사업 구조조정을 꾀했다면, 올해부터는 조직 내부의 인사와 문화 혁신을 추진하는 것이다. 현재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으로 이어지는 직제를 없애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기업 문화 혁신 방안도 곧 발표할 예정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의 변화를 '실용주의'로 봐주길 원한다. 그래서 작년 대한항공에 전용기 3대와 전용 헬기 6대를 모두 팔았고 본인이 출장을 다닐 때 가끔씩은 이코노미석을 이용하기도 했다. 일사불란한 삼성그룹 문화의 핵심 행사인 대졸 신입 사원 하계 수련 대회를 폐지하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삼성은 그동안 계열사 임직원 전부가 참여하는 하계 수련 대회를 통해 삼성 스타일을 각 계열사에 심어왔지만 지금은 일사불란함보다는 다양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을 미국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처럼 빠른 의사 결정과 변화 대응력을 가진 회사로 변모시키려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 "지금 체제로는 살아남기 어렵다" 위기감 팽배
이재용 부회장발(發) 조직 개편은 "삼성이 지금의 재벌 체제로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위기감에서 촉발됐다. 삼성그룹을 전자와 금융·바이오 등 확실한 1등 업종과 성장 가능성이 있는 사업군 중심으로 개편하고, 여기에 일하는 방식도 완전히 뜯어고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 부회장은 '관리의 삼성'을 상징하는 재무와 인사 등 삼성 경영 지원본부를 연구개발(R&D)·생산 본부가 있는 수원 본사로 옮기게 했다. 개발·생산 현장의 목소리를 경영에 실시간으로 반영하라는 주문이다. 야근이나 휴일 근무 줄이기, 과도한 의전 철폐, 자유로운 휴가·연차를 권장하는 것도 과거식 삼성과 단절을 선언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 인사팀은 내부적으로 직제 개편 등 삼성의 근무 문화를 획기적으로 개편할 태스크포스(TF)를 운영 중이다. TF에서는 현행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의 다섯 직급 체제를 줄이는 것뿐만 아니라 셀(cell·세포) 단위 조직을 도입하는 방향도 검토 중이다. 셀 단위 조직은 미국의 페이스북이나 한국 네이버 등에서 운영하는 조직으로, 개발자·기획자·디자이너 등이 한 팀이 돼 자신들의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주요 결정도 셀 내에서 처리한다. 의사 결정 단계를 줄여 시장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겠다는 뜻이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지금처럼 비대한 삼성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며 "관료주의를 없애고, 결재 단계도 줄여 스타트업처럼 빠르게 대응하자는 취지에서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식 문화, 단기간 주입은 힘들어
삼성 일각에서는 구글, 페이스북, GE 등 미국식 조직 문화가 오너 경영과 직원들의 충성심을 미덕으로 삼았던 삼성에 제대로 정착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일부 임직원은 이재용 부회장의 과감한 사업 정리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2014년부터 작년까지 방위산업·화학 관련 계열사를 줄줄이 매각했고, 올해도 프랑스 광고 업체인 퍼블리시스와 제일기획 매각을 논의 중이다. 그 외에도 에스원 등의 매각설(說)도 계속된다. 이에 일부 임직원은 "조직·문화를 개편하는 것과는 별개로 직원들이 회사가 언제 팔릴지 모른다는 불안함이 있다"고 말한다.
연세대 오홍석 교수(경영학)는 "삼성이 재벌 체제를 포기하고 업종별 전문 기업 체제로 전환하는 방향은 맞다"면서 "그러나 오너와 최고위층에게 권한이 집중된 삼성 같은 조직에서 단기간에 제도 개편, 문화 혁신 등으로 변화시키긴 어렵기 때문에 오랫동안 방향성을 유지하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