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3.22 09:32
[통신업계 갈등 확전 양상]
- KT·LG "독과점 심화"
"자회사 SK브로드밴드와 합치면 통신·유료방송 시장 장악"
- SKT "경쟁사 발목 잡기"
"글로벌 무한 경쟁 시대에 훼방만 놓으면 골든 타임 놓쳐"
- 보도 채널 보유 논란 번져
전국 3분의 1 권역에 보도 채널… 지역선거 등 영향 미칠 우려에
SKT "해설·논평 법으로 금지"
LG유플러스의 권영수 부회장은 이달 초 미래창조과학부 당국자를 만나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를 막아달라"고 읍소했다. 통신업체 임원들이 주무 부처 공무원들에게 자사의 입장을 전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나서는 건 이례적이었다. 황창규 KT 회장은 지난 몇 달 동안 공·사석에서 "정부가 지금 잘못 판단하면 대한민국 통신산업의 미래가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KT와 LG유플러스는 현재 최고경영자가 최전선을 뛸 정도로 초비상 상황이다. 경쟁사인 SK텔레콤이 국내 최대 케이블TV업체인 CJ헬로비전을 인수하지 못하게 막기 위해서다. SK텔레콤은 작년 10월 CJ헬로비전을 1조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하고, 현재 공정거래위원회·미래부 등에 인수·합병 승인을 요청해놓은 상태다. SK텔레콤 장동현 사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통신·방송도 글로벌 무한 경쟁 시대"라면서 "이렇게 훼방만 놓으면 우리 산업이 커나갈 골든 타임을 놓친다"고 말했다.
◇"SK텔레콤의 독과점 시대 온다" vs. "경쟁사 뒷다리 잡기"
SK텔레콤이 CJ헬로비전 인수에 나서는 것은 유료 방송 시장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이동통신 가입자 2800명이 넘는 SK텔레콤이지만, 유료(有料) 방송 시장에선 시장점유율이 10% 안팎에 그친다. 하지만 SK텔레콤이 케이블TV 가입자 416만명을 가진 CJ헬로비전을 인수해 유선방송 자회사 SK브로드밴드와 합치면 단숨에 746만 가구의 가입자를 확보한다.
그러자 KT와 LG유플러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KT는 인터넷TV(IPTV)와 위성방송인 KT스카이라이프를 합쳐 가입자 843만 가구(29.3%)를 보유하고 있지만 SK텔레콤의 추격권에 접어든다. 유선 점유율이 8%에 그치는 LG유플러스는 "생존을 걱정해야 할 지경"이라고 우는 소리를 하고 있다. 게다가 SK텔레콤이 강력한 무기인 휴대전화 서비스를 바탕으로 유료방송·초고속인터넷·집전화 등을 하나로 묶어 싸게 파는 '결합상품'을 내놓으면, 이를 막아내기 어렵다는 게 KT와 LG유플러스의 주장이다.
SK텔레콤은 이에 대해 "근거 없는 비방"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합병해도 유료방송 시장에서 점유율은 여전히 KT가 1등인데, 과도하게 발목을 잡는다는 것이다. SK텔레콤 이상헌 상무는 "KT·LG유플러스가 각자 자사의 경쟁력 확보 방안을 고민하지 않고, 정부에 기대어 타사의 전략을 막는데만 전념한다"고 말했다.
◇SK의 보도 채널 보유 논란으로 번져
논쟁은 최근엔 '지역 보도 채널 논란'으로 번졌다. 지역MBC와 지역민방 등 26개 지역방송사가 지난 15일 공동으로 '인수 반대 성명서'를 낼 정도다. 이들은 "인수가 성사되면 재계순위 3위 재벌이 지역 언론을 보유해 지역 선거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에 따르면 CJ헬로비전이 전국 3분의 1의 권역에 케이블채널을 갖고 있으며, 이 케이블채널에서는 지역 정보를 제작·편성하는 지역 보도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예컨대 CJ는 부산지역 보도본부를 두고 부산 뉴스를 만들어 해당 지역의 케이블 가입자에게 제공한다. 선거철에는 주요 후보의 유세 영상과 공약을 전달한다. CJ의 케이블TV 사업 지역에서 뽑히는 국회의원만 76명에 달한다.
실제로 지역 보도채널이 가장 잘 갖춰진 제주케이블TV는 제주MBC보다 보도 인력이 많다. 제주도에서 출마한 더민주당 강창일 국회의원도 "유세 현장 곳곳을 누비는 지역 케이블TV 보도채널을 항상 의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SK텔레콤의 하성호 전무는 "방송법에 따라 지역 소식만 전할 뿐이며 법으로 금지된 해설과 논평은 하지 않는다"며 "언론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할 생각이 전혀 없는데 일어나지도 않은 상황을 억지로 끼워 맞춘 뒤 큰일 난다는 식으로 비판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