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3.25 09:43
'대기업 규제법' 34개 적용 받게돼 "경영활동 제약 커질까 우려"
전경련 "자산 기준 10조로 올려야"
매년 4월 1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자산 규모 5조원 이상 기업을 '대기업집단(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으로 지정한다. 올해는 대기업이라고 하기에는 비교적 역사가 짧은 기업 3곳이 한꺼번에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될 것이 확실시되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인터넷기업 카카오, 닭고기 가공업체 하림, 바이오 의약품업체 셀트리온이 대기업 반열에 올라서게 된다. 이 3개사는 모두 모(母)기업이 중소·벤처기업 중심인 코스닥에 상장된 곳이다.
이에 따라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김홍국 하림 회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하루아침에 '대기업 총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산 5조원을 갓 넘는 신생 대기업이 삼성·현대차·SK·LG 등과 같은 수준으로 각종 규제를 받게 되는 것이 합당하느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공정위는 2008년 자산 2조원 이상이었던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을 5조원 이상으로 올린 이후 8년째 같은 기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 사이 대기업집단은 2008년 41곳에서 작년 61곳으로 늘었다. 그에 따라 경영 활동상 제약도 점점 커지고 있다고 재계는 호소한다. 대기업집단에 지정된 기업을 대상으로 갖가지 금지 조항을 만들어 놓은 법률이 무려 34개에 달한다. 이를테면 정부가 지원하는 지능형 로봇 전문기업으로 지정될 수 없고, 소프트웨어산업에 참여하는 게 사실상 봉쇄돼 있다. 유통업을 하면 영업시간이 제한되고, 농림수산식품업에 새로 진출하는 것이 제한된다. 김홍국 하림 회장은 최근 강연에서 "기업 규모에 따라 차별적 규제를 하는 상황에서는 기업가 정신이 발휘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자산 규모 10조원 이상으로 기준을 상향 조정해줄 것을 정부에 건의했다. 2008년 이후 경제 규모가 40% 이상 커진 만큼 그에 상응해 기준을 올려야 한다는 논리다. 송원근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규모가 커지는 신생기업들이 대기업집단에 지정되는 것에 부담을 느껴 성장 의지가 꺾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작년 61곳인 대기업집단을 자산 10조원 이상으로 범위를 줄이면 37곳으로 축소된다.
결정권을 쥐고 있는 공정위는 "신중하게 검토 중"이라는 반응이다. 내부적으로는 기준을 올려야 한다는 공감대는 만들어져 있지만 공식 입장을 밝히기를 꺼린다. 공정위 관계자는 "61개 대기업집단의 1700개 안팎 계열사를 감시하기에는 벅차기 때문에 범위 축소가 필요하다"면서도 "(기준을 올리면) 경제민주화에 역행해 대기업들을 봐준다는 비판도 있을 것으로 보여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기준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영삼·김대중 정부 시절 30대 그룹을 지정한 것처럼 일정 순위 이상의 기업만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기업집단끼리 덩치 차이가 천차만별이므로 일률적 기준으로 규제를 가하는 건 불합리하다는 차원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지난해의 경우 1위 삼성과 61위 한솔의 자산 차이는 66배에 달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지금 규제 수위는 삼성 같은 최상위 기업에는 느슨하고 50~60위권 대기업에는 가혹하다는 문제가 있다"며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해서라면 상위 20개 그룹사만 지정해도 정책 목표가 달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