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8.30 09:28
[장벽 허물자 가입자 급증… "자기 방식만 고집하면 성장 못해"]
SKT 'T맵' 이용자 제자리걸음… 무료 개방 한달새 100만명 늘어
네이버·카카오도 타업체와 제휴, 채용·숙박 정보 등 콘텐츠 확장
폐쇄적 경영 유명한 애플마저 안드로이드 버전 음악 서비스 제공
광고 매출 등 성장동력 확보위해 서비스 제휴·외부 개방 불가피
국내 IT(정보기술) 업계에 서비스 개방 물결이 일고 있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통신업체는 예전에 자사 가입자에게만 폐쇄적으로 제공해왔던 서비스를 다른 통신업체 가입자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다. 네이버·카카오 등 인터넷 기업도 자사의 포털이나 모바일메신저를 여러 스타트업(창업 초기 기업)들이 개발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KT의 김학준 상무는 "과거와 같이 서비스 이용 범위를 제한하거나 협업을 꺼리는 건 스스로 발목을 잡는 꼴"이라며 "서비스 간 장벽, 업체 간 장벽을 무너뜨리는 일이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폐쇄적인 서비스 장벽 잇따라 철폐
통신업체들은 서비스 개방 후 가입자 증가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SK텔레콤이 10여년 전부터 자사의 대표 서비스로 키워온 내비게이션 'T맵'은 작년부터 정체의 늪에 빠졌다. 월 이용자 800만명을 돌파한 이후 더 이상 이용자가 늘지 않았던 것. SK텔레콤은 이런 한계를 넘기 위해 지난 7월 경쟁사의 이용자들에게도 무료로 개방해 한 달 만에 10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했다.
KT는 지난 3월 모바일 쇼핑앱 '쇼닥'을 내놓으면서 처음부터 타사 가입자들도 사용할 수 있도록 문을 열었다. 이 앱은 출시 70일 만에 누적 다운로드 100만건을 돌파하며 순항하고 있다. LG유플러스가 지난해 7월 출시한 오픈 모바일 동영상 서비스 'LTE비디오포털'도 8개월 만에 가입자 1000만명을 돌파했다. 이 회사는 홈IoT(사물인터넷) 서비스도 작년 7월 처음 출시할 때부터 타사 이용자에 개방해, 현재 38만 가입 가구를 확보하며 국내 1위 IoT 서비스 기업으로 성장했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숙박·기업 정보·자동차 공유 등 각 분야의 스타트업에 자사의 포털과 모바일메신저를 개방하고 있다. 네이버는 국내 1·2위 숙박 공유 서비스 업체인 여기어때·야놀자와 손잡고 네이버 지도·검색에서 두 회사의 숙박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예컨대 네이버의 지도 위에 숙박 벤처들이 수집한 모텔 정보를 노출시키는 것이다. 카카오는 기업 정보 서비스 업체인 잡플래닛과 손잡고 카카오 검색 서비스에 잡플래닛이 보유한 기업 채용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포털들이 그동안 모든 서비스를 폐쇄적으로 제공해 골목 상권 침해 논란을 빚기도 했지만 최근엔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개방'이 성장 한계 돌파구
IT 기업들이 잇따라 자사의 독자 서비스를 다른 업체에 개방하는 이유는 기존의 폐쇄형 방식으로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SK텔레콤은 5년 전 자사 가입자만을 대상으로 제공한 'T클라우드'(가상 데이터 저장) 서비스를 내놨다가 소비자 호응을 끌어내지 못하고 사업을 접었다. 카카오에서는 최근 실적이 부진한 이유 중 하나가 '개방'이 아닌 '폐쇄'로 흐르기 때문이란 내부 반성이 있었다. 카카오 관계자는 "하반기에는 더 많은 스타트업과 제휴를 통해 외부의 아이디어를 접목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개방의 흐름은 해외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대표적인 사례가 창업자 스티브잡스의 폐쇄적인 생태계 전략을 고집해온 애플의 변화다. 애플은 최근 자사의 음악 서비스인 '애플 뮤직'을 경쟁사인 구글의 안드로이드에서도 쓸 수 있도록 '안드로이드 버전'을 개발해 내놨다.
전문가들은 "폐쇄적 성향이 강한 한국 IT 대기업의 변화는 산업 생태계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상린 한양대 교수(경영학과)는 "80년대 VTR 기술에 집착하다 규격 전쟁에서 패한 소니, PHS라는 독자 이동통신 기술에 매달리다가 무너진 일본 휴대폰 업체들, 2000년대 독자 운영체제 심비안만을 자랑하다가 몰락한 노키아까지 '폐쇄' 전략의 한계는 명확하다"며 "자사 내부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경쟁력을 외부에서 수혈하면서 계속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