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오른쪽에서 두 번째) 일본 총리가 2019년 7월 4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각료회의 중 발언하고 있다. /조선DB
일본이 지난 4일 불화폴리이미드, 레지스트, 불화수소 등 3개 품목에 한해 수출 규제 조치를 취한 것에 이어, 한국을 일본 정부가 안보상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화이트국가'에서 이르면 8월 중 제외하는 법안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비(非)화이트국으로 분류되면 수출심사 대상 품목이 늘어나 일본산 부품을 사용하는 한국 기업들이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8일 산업통상자원부 및 업계에 따르면 일본은 군사전용으로 사용되는 '전략물자'에 대한 수출을 중요도에 따라 '리스트규제', '캐치올규제'로 구분해 관리한다. 리스트규제의 경우 수출 무력관리령에 지정된 군사 전용 가능성이 높은 화물로, 무기, 원자력, 화학무기, 미사일, 첨단소재, 재료가공, 전자, 전자계산기, 통신, 센서, 항법장치, 해양관련, 추진장치 등 15개 조항에 해당하는 품목을 규제한다. 리스트규제의 경우 모든 국가에서 일본 경제산업성의 허가를 받아야한다.
반면 캐치올규제는 리스트규제의 15개 조항을 제외한 대량살상무기(WMD)나 통상 무기에 이용될 우려가 있는 물품에 대해 규제를 적용한다. 캐치올규제 대상인 감시품목목록(Watch List)에는 탄소·유리·아라미드 섬유 및 티타늄합금, 대형발전기, 주파수변환기, 대형트럭, 크레인, 원심분리기, 동결건조기 등 40종에 달한다. 캐치올규제는 화이트국가에게는 허가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한국이 화이트국가에서 제외될 경우 일본 경제산업성에 허가를 받아야 수출이 가능해진다. 다만 이 경우 요건에 따라 수출자가 사전에 용도를 확인해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경우와 경제산업성으로부터 통지를 받아 허가를 신청하는 경우로 나뉜다.
일본 캐치올규제 대상인 감시품목목록(Watch List)./일본경제산업성제공
화이트국은 일본 정부가 안보상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국가로 현재 한국을 비롯해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총 27개 국가가 해당된다. 동아시아국가 중에서는 한국이 유일하다. 화이트국은 4대 국제 수출 통제 체제 가입국 및 3대 국제 조약에 가입한 서방 동맹권 국가간에 수출 허가를 간단화하는 정책이다. 한국도 일본을 포함한 27개국에 전략물자수출시 규제 등 제한조치에서 제외시킨다.
한국에 대한 화이트국 제외 조치는 이르면 8월에 적용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오는 24일까지 일본 전자정부종합창구를 통해 시민 의견을 수렴하고, 공청회 등을 거쳐 8월 중 정령(政令)을 개정해 한국을 화이트국에서 제외할지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강민정 코트라 도쿄무역관 팀장은 "다만 수렴 의견 등에 따라 시행까지 기간이 더 늘어나거나 바뀔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전자정부통합창구에 올라온 '규제평가서'에는 한국을 화이트국가에서 제외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한국의 캐치올규제가 불충분하고, 나라간의 신뢰 관계가 심각하게 손상됐으며, 한국의 무역 관리 제도의 적절한 운용의 확인이 곤란하게 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일본은 이번 조치로 자신들이 입을 수 있는 피해는 '한정적'이라고 내다봤다. 평가서에는 "(이번 규제로) 사업자의 수출 관리에 일정한 부담이 될 수 있지만, 특정 사업자에 대해서만 부담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기에, 경쟁 상황에 부정적인 영향이 생기는 건 아니다"라고 적혀있다.
일본 전자정부통합창구에 올라온 화이트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수출 무역 관리령의 일부를 개정하는 정령 안' 규제평가서./일본경제산업성 갈무리.
일부 전문가들은 일본의 화이트국에서 국을 제외하면 국제사회에서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고 관측했다. 또한 이러한 조치는 아베 신조 총리가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인 판단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대영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은 "일본이 무기 개발로 논란을 일으킨 북한, 시리아, 리비아 등에 쓰이던 규제를 한국에 적용한다면 국제사회에서 상당한 논란을 야기할 것"이라며 "이를 알고도 캐치올 규제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은 21일 참의원 선거 등을 앞두고 정치적 효과를 노린 '엄포성 행동'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실제 아베 신조 총리는 참의원 선거 개시날에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를 시행했으며 이러한 '한국 때리기'로 보수층의 선거 표를 모으기 위한 정치적 판단 때문인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 총리를 비롯한 개헌 세력들은 개헌 발의선인 3분의 2 이상 의석을 확보해 일본을 '전쟁 가능한 국가'로 변신시키기 위한 개헌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한 이번 선거의 핵심 이슈는 공적연금의 보장성과 소비세 인상 문제가 꼽히는데, 모두 야권에 유리한 이슈다. 여당 자민당은 개헌을 이슈화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지만, 국민들의 관심이 크지 않고 같은 여권 내에서도 공명당은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사설을 통해 "아베 정권이 한국에 강경 자세로 임해 보수층에 호소하려는 노림수를 갖고 있는 것 아니냐"며 "눈앞의 인기를 얻고 장기적인 국익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