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혁의 글로벌인사이트] 비야디가 주도하는 中 전기차 출혈 경쟁

정상혁 기자 ㅣ digihyuk@chosun.com
등록 2025.06.11 10:29 / 수정 2025.06.12 17:41

중국 항저우 지역의 들판에 방치돼 있는 전기차 재고들(유튜브 채널 'serpentza' 영상 갈무리)

지난달 중국 전기차 제조사들은 100개 이상 모델의 가격을 전격 인하했다. 비야디(이하 BYD)는 20개 모델에 최대 34%까지 가격을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뒤를 이어 리오토, 지리자동차, 체리자동차 등도 8~47% 수준의 가격 인하에 나섰다. BYD ‘하이오우(海鷗)’ 모델의 경우 6만9800위안(한화 약 1300만원)에서 5만5800위안(한화 약 1050만원)으로 가격이 낮아져 900만 원대 전기차를 예고했다.

전기차 메이커들의 줄이은 가격 인하 발표에 시장은 싸늘하게 반응했다. 리오토 주식은 8.63% 떨어졌고, BYD와 지리 자동는 모두 7.5% 이상 하락했다. 가격 인하는 업계 이익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중국 자동차 제조업 수익률은 2017년 7.8%에서 지난해 4.4%로 하락한 상태다.

업체 간 경쟁이 극에 달하자 경영진들의 입도 거칠어지고 있다. 지리 자동차 리슈푸(李書福) 회장은 올해 양회(兩會)에서 BYD 왕촨푸(王傳福) 회장을 ‘제 살 깍아 먹기 제왕’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왕 회장의 단순하고 난폭한 가격 인하 정책이 업체 간 제 살 깍아 먹기 경쟁을 초래하고 있다”며 “과도한 가격 인하는 조잡한 생산 및 품질 저하로 이어져 산업 전체에 피해를 준다”고 말했다.

창청자동차 웨이젠쥔(魏建軍) 회장은 BYD를 파산한 부동산 기업 헝다(恒大)에 빗대 ‘헝다 2호’라고 비판했다. 그는 “BYD는 이미 자본잠식 상태이며 가격 인하 정책은 채무 상황 개선을 위한 술수”라고 주장했다.

업체 간 과열 경쟁을 진정시키기 위해 정부도 나섰다. 관영언론 인민일보(人民日報)는 “제 살 깍아 먹기 경쟁은 자원 낭비와 다수의 패자만을 낳는 결과로 이어진다”며 “정부의 '보이는 손'이 나서서 시장을 조정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에 중국 시장감독관리총국은 관련 부서에 공정한 경쟁 질서 유지를 위해 경쟁 감독 및 법 집행을 강화하라는 내용의 문서를 전달했다.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가격 인하에 나선 이유는 과다한 재고 탓이다. 연간 약 4000만 대의 생산 설비를 갖춘 중국 전기차 업체들은 1400만 대는 국내에, 나머지는 해외에 팔아야 한다. 그런데 최근 경기 침체로 전기차 내수 시장이 정체되면서 공급 과잉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 무역 정책 탓에 해외 시장은 고관세 장벽에 막혀버렸다. 미국 100%, 유럽 45.3%, 인도 70~100%, 튀르키예 40% 등 대부분의 나라가 높은 관세를 통해 중국산 덤핑 전기차를 막고 있다.

중국의 자동차 전문 인플루언서들이 촬영한 영상을 보면 중국 도심 곳곳의 공터엔 수백 대의 전기차 재고가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방치돼 있다. 재고가 쌓이니 자연스럽게 공장 가동률도 줄었다. 올해 중국 전기차 공장 가동률은 40% 이하로 예상되는데 이는 현대차, 토요타, 테슬라의 80~95% 에 비해 매우 낮은 수치다.

판촉을 위한 적절한 가격 인하 이벤트는 시장 경제의 정상적 현상이지만 마지노선 없는 가격 전쟁은 기업 이익을 압박해 장기적으로 시장 생태계를 위협한다. 헝다와 완다 등 도산한 중국 대형 부동산 회사들이 좋은 사례다. 그들은 대책 없는 투자 및 확장을 거듭하다 공급 과잉에 몰려 도산해 중국 경를 침체에 빠뜨렸다.

다만 일각에선 출혈 경쟁 이후 살아남은 중국 전기차 브랜드들의 경쟁력은 더 강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충분히 저렴해진 가격으로 세계 시장에서 보조금 없이도 경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중국 전기차 업계의 치킨게임이 ‘옥석 가리기’가 될지 아니면 ‘제2의 헝다 사태’가 될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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