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혁의 글로벌인사이트] 중국 중심으로 세력화하는 反서방 국가들

정상혁 기자 ㅣ digihyuk@chosun.com
등록 2025.09.04 09:48 / 수정 2025.09.04 09:51

지난 1일 중국 텐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 참석한 러시아 푸틴 대통령, 인도 모디 총리, 중국 시진핑 주석(좌측부터)/모디 총리 X 갈무리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북·중·러 지도자가 동시 입장하자 해외 언론들은 일제히 이 소식을 타전하며 ‘중국의 반(反)서방 도전장’으로 평가했다.

특히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는 “시진핑의 퍼레이드는 중국이 다시는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며 “푸틴 대통령이 참석하는 베이징에서의 무력시위는 중국이 외세의 압력에 저항할 만큼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사실상 '중국의 반(反)서방 도전장'은 전승절 이틀전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10개국 정상들(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인도, 파키스탄, 이란, 벨라루스)이 모인 가운데 이미 던져졌다.


지난 1일 이들은 중국 텐진에 모여  “글로벌 공급망의 안정성을 저해하는 조치에 우려를 표한다”며 세계 각국을 상대로 관세 압박을 이어가고 있는 미국을 겨냥한 ‘톈진 선언’을 채택했다.

선언문에서 회원국들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칙과 원칙을 위반하는 경제적 조치를 포함한 일방적이고 강압적 조치에 반대한다”면서 “이런 조치는 식량·에너지 안보 같은 국제 안보 이익을 저해하고, 세계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회원국들은 SCO 프레임워크 내에서 무역 원활화 협정을 개발하려는 움직임에 주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직접 미국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공급망 안정 저해’, ‘경제적 조치’ 등의 표현을 통해 세계 각국과 관세 전쟁을 벌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사실상 겨냥했다.

스위스 일간지 NZZ(Neue Zuercher Zeitung)는 SCO 정상회의를 다룬 최근 논평에서 “서방은 오랫동안 중국의 영향력을 심각하게 과소평가해 왔다”고 지적했다. 이제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으며, 중국의 부상이 국제 질서를 재편하고 있다는 사실을 서방이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SCO 정상회의에서 중국은 14억 달러 규모의 대출 제공을 발표했다. 이는 단순한 재정 지원을 넘어 중국이 미국을 대체한 국제질서를 설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3일 전승절 열병식 또한 단순한 군사 퍼레이드가 아니라 중국이 자국의 역사적 위상과 정치적 안정 그리고 국력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장치로 기능했다.

NZZ는 그동안 서방이 SCO와 브릭스(BRICS)를 하찮게 보며 평가 절하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중국의 매력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서방의 제재나 관세 압박에 직면한 국가들은 중국 주도의 대체 기구를 전략적 선택지로 삼고 있다. 심지어 아세안 국가들조차 중국과의 오랜 교역·투자 관계를 바탕으로 전략적 파트너로 중국을 선호하고 있다.

중국은 스스로를 자유무역과 세계화의 수호자로 포장하고 국영기업을 앞세워 철도·항만·정부 청사 건설 등 실질적 협력을 이어간다. '신취리히신문'은 “서방은 중국의 능력을 늘 과소평가해 왔으나 이제는 깨어나야 한다”고 경고했다.

스위스의 또 다른 유력지 타게스안차이거(Tages-Anzeiger)는 이번 SCO 정상회의에서 연출된 시진핑과 푸틴의 만남을 “유럽의 입장에선 눈뜨고 보기 힘든 현실”이라고 평가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유럽 외교관들은 “시진핑은 실용주의자이므로 모스크바 편에 서지 않을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EU가 중국의 최대 교역 파트너라는 점에서 러시아가 중국에 줄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이번 회의를 기점으로 중국은 사실상 친러시아 권위주의 진영의 주도 세력임이 명백해졌다.

타게스안차이거는 이를 “서방에 대한 정치적 모욕, 곧 중지 손가락을 치켜세운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72세의 시진핑은 중국의 부상과 서방 질서의 쇠퇴를 꾸준히 강조해 왔고 트럼프 집권 이후 그의 비전은 점차 현실로 다가왔다.

이 신문은 “도덕적으로 유럽은 민주주의 가치를 지켜야 하며 중국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현 미국 대통령이 법치 원칙을 스스로 훼손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EU가 도덕적 책임을 감당할 능력이 있는가”라는 냉혹한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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