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펜실베이니아 필라델피아의 한화오션 산하 필리조선소. 2024년 6월 한화오션·한화시스템이 1억 달러에 인수했다 / 한화그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 건조’를 공식적으로 승인했다. 이 한 문장에는 세 개의 이슈가 겹쳐 있다. 첫째, 워싱턴이 수십 년 간 유지해 온 핵추진 잠수함 기술 이전 금기의 해제. 둘째, 한국이 염원해 온 '군사 전략 자율성’ 확보. 셋째, 트럼프 재선을 이끌어 준 '아메리카 퍼스트 2.0'의 경제·외교 거래술이다.
언뜻 보면 파격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결정 방식엔 일관성이 있다. 그에게 모든 동맹은 '보안 파트너'가 아닌 '거래 대상'이다. 한국의 핵잠 프로젝트 승인 또한 안보 이슈라기보다 투자 협상 테이블 위에 올려진 피자 한 판이었다.
한국은 지난달 미국에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약속했다. 이 금액은 트럼프 정부가 유럽과 일본으로부터 받아낸 약속(6,000억 달러 및 5,500억 달러)에 이은 세 번째 ‘빅딜’이다. 트럼프는 이 수치를 공개하며 “한국이 미국 일자리를 되살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 후 이재명 대통령은 워싱턴에 “핵추진 잠수함용 연료 공급 승인”을 요청했을 것이다. 트럼프는 “좋다, 한국이 돈을 쓸 준비가 돼 있다면 우리도 기술을 열겠다”고 응수했다. 요약하자면 핵잠 딜은 투자 대 기술 이전의 맞교환이었다.
트럼프는 2017년 첫 임기 때부터 미국은 세계의 경찰이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그 논리는 지금도 유효하다.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을 갖게 되면 미 해군의 동북아 순찰 비용이 줄어든다. 게다가 한국이 자체 핵잠을 운용하면 북한 및 중국 잠수함 활동에 대한 지역 감시망이 더 촘촘해진다. 트럼프에게 이 모델은 이중의 이익이다. 안보 공백을 메우면서 미국 재정 지출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안보를 팔고, 동맹이 비용을 내는’ 새로운 형태의 군사 합작 모델이다. 한국은 자율성을 얻고, 미국은 부담을 덜고, 조선소는 일감을 얻는다.
핵추진 잠수함 기술은 군사력의 심장부다. 트럼프가 이를 한국에 허용한다는 건 군사기술을 '동맹 프리미엄'으로 상품화하겠다는 뜻이다. 워싱턴 입장에선 이중의 메시지를 보낸다. 하나는 중국을 향한 전략적 경고다. 한국이 핵잠 보유국이 되면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의 세력 균형이 흔들린다. 다른 하나는 일본을 향한 견제다. 트럼프는 자민당 내 보수파와 친밀하면서도 “일본은 항상 공짜 보호를 받는다”고 공공연히 비판해 왔다. 한국에 핵잠을 허락하는 순간 일본도 '미국의 동맹 위계 재편'을 체감한다.
다만 이번 결정이 곧 핵연료 재처리나 고농축 우라늄 이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미 국무부와 에너지부(DOE)는 아직 세부 기술 범위를 조율 중이다. 워싱턴 내 핵비확산 세력들은 “트럼프식 허가가 곧 법적 허용은 아니다”라며 냉정히 선을 긋는다. 핵잠 연료는 핵무기용 연료와 성분이 비슷하다. 이 지점은 중국뿐만 아니라 IAEA(국제원자력기구)에도 민감한 문제다. 따라서 이번 승인이 ‘기술 이전 가능성’의 문을 연 정도에 그칠 가능성도 크다.
한국으로서는 전략적 자율성이 커졌다. 그동안 미국 잠수함에 의존했던 수중 감시 능력을 자체적으로 보유할 수 있게 됐다. 또한 해양 수출 산업, 조선 기술, 방산 수출 분야의 파급 효과도 막대하다. 하지만 리스크도 분명하다. 중국 궈자쿤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30일 "중국은 한미가 비확산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지역 평화와 안정을 증진하길 바란다."며 트럼프의 한국 핵잠 승인을 즉각 견제하고 나섰다. 국내에서도 핵연료 관리 및 IAEA 사찰 문제가 정치적 논란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의 승인은 전략적 결단이자, 정치적 쇼맨십이다. 그는 한반도의 안보 이슈로 또 하나의 '빅딜 무대'를 만들었다. 핵잠 허가는 그 자체로 워싱턴 및 관련 국가들에게 충격을 줬지만 트럼프에게 그건 또하나의 거래에 불과하다. 그는 언제나 숫자로 외교를 한다. 투자 규모, 일자리 수, 무기 계약 금액...그 모두가 마가(MAGA)의 밑거름이 된다. 이번 결정도 안보라는 단어 속에 포장된 거래 명세표다.
한국은 이제 안보의 자율성과 외교의 종속 사이, 핵기술의 획득과 비확산 원칙 사이라는 절묘한 균형 위에 섰다. 트럼프식 '거래 외교'가 열어준 문은 새로운 기회이자 시험대다. 결국 한국이 얻는 것은 잠수함 하나가 아닌 핵을 다루는 국가로서의 책임이다. 그 책임을 어떻게 정치적 지혜로 관리하느냐가 향후 10년 한반도 안보의 무게를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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