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주오구에 위치한 일본은행. 1882년에 설립됐다 / 일본은행 홈페이지
일본의 10년물 국채금리가 22일 오전 26년 10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본경제신문에 따르면 이날 일본 채권시장에서 10년물 국채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0.055% 포인트 오른 2.07%까지 치솟았다.
앞서 일본은행은 지난 19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정책금리를 0.75%로 인상해 '초완화'라는 이름으로 유지돼 온 일본 특유의 통화정책 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리고 있음을 알렸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엔화 약세'와 '국채 이자 부담'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 숙제 앞에 일본은행의 선택지는 그닥 넓지 않다. 이번 금리 인상의 직접적 배경은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 인플레이션이다.
11월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대비 3% 상승하며 일본은행 목표치 2%를 44개월 연속 웃돌았다. 보조금에 의존한 정부의 물가 대응은 한계에 다다랐고, 고물가로 인한 민생 불만은 다카이치 정권의 가장 취약한 지점으로 떠올랐다. 통화정책 정상화에 대한 압박이 일본은행으로 쏠릴 수밖에 없는 형국이었다.
시장은 벌써 일본 통화정책의 다음을 예측하고 있다. 다수의 경제학자들은 2026년 중 정책금리가 1.0%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시점을 놓고 갑론을박이 있다. 향후 엔화 약세가 이어질 경우 4월 조기 인상 가능성을 거론하는 쪽이 있는 반면, 경기 회복을 지켜보며 10월까지 늦춰질 것이라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금리 인상 자체보다도 속도와 타이밍이 일본 경제의 향방을 가를 변수로 부상한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금리 인상 발표 이후에도 외환시장에서 뚜렷한 엔화 강세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난주 일본은행(BOJ)은 금리를 인상했지만 오히려 달러-엔 환율은 157.75엔대까지 가파르게 올랐다.
이는 시장이 일본은행의 '의지'를 아직 신뢰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은행 우에다 가즈오 총재가 환율 변동에 따른 수입 물가 상승에 강한 경계감을 드러내는 가운데, 정책 메시지는 여전히 모호하다.
JP모건이 "금리를 올려야 할 상황이지만, 애매한 태도 탓에 엔화 강세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지적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경우 일본 정부는 다시 외환시장 개입이라는 부담스러운 선택지로 내몰릴 가능성이 크다.
더 큰 문제는 재정이다. 금리 인상은 인플레이션 해소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1000조 엔이 넘는 일본의 정부 부채에는 치명적 부담이다. 현재 1.9% 수준인 10년물 국채 금리가 2.5%까지 오를 경우 차입 비용은 사실상 두 배로 늘어난다. 2028년 이자 지급액이 16조 엔 규모로 불어날 것이라는 추산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여기에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본격적으로 청산될 경우 충격은 일본을 넘어 글로벌 금융시장으로 확산될 수 있다.
일본은행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엔화 방어에 집중하면 재정이 흔들리고, 재정을 고려하면 엔화 약세를 감수해야 하는 딜레마다. 알리안츠 글로벌 인베스터스의 그레고르 마에이 히르트 CIO는 보고서에서 "시장 반응은 일본은행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드러나는 미묘한 뉘앙스에 달려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책 그 자체보다 ‘소통’이 중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가령 금리의 경우 '몇프로 올렸다'보다 '앞으로 어디까지 어떤 속도로 올릴 것인지'를 설명해 정책 입안자의 확고부동한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지난 19일 일본은행의 정책금리 인상은 단순한 통화정책의 변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생각보다 그 파급 효과는 매우 크며 우에다 총재가 뚝심을 가지고 내년까지 금리 인상을 밀어 붙일 경우 기업 세수 감소 및 국채 이자 부담으로 인한 재정 악화를 각오해야 한다. 장기 경기 침체와 초저금리의 후유증이 한꺼번에 까발려진 채 일본 경제가 수술대에 올랐다. 그리고 수술이 이제 막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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