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자동차·부품 제조사, SDV 기술 고도화 집중
테슬라·현대차·BMW, 소프트웨어 구독으로 '제2의 수익원' 개척
"독자 OS 없으면 하청 기업 전락"…생존 건 기술 경쟁 치열
/ 디지틀조선TV
자동차 산업이 약 100년 만에 근본적 전환기를 맞고 있다. 1908년 포드 모델T가 대량생산 체계를 열며 엔진과 변속기 중심의 기계 산업 시대를 연 이후, 자동차의 가치는 하드웨어 성능에서 결정됐다. 하지만 이제는 소프트웨어가 차량의 성능과 기능을 좌우하는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자동차·부품 제조사들은 SDV 기술 고도화에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자동차가 움직이는 스마트폰으로 진화 하는 가운데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향후 시장 지배력을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다.
최근 SDV 시장의 성장세는 가파르다. 시장조사기관 리서치네스터에 따르면 글로벌 SDV 시장은 2025년 2876억달러에서 2035년 3조4000억달러로, 연평균 28%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 최대 전략 컨설팅사 롤랜드버거는 완성차 업체(OEM)의 소프트웨어 지출은 2021년 430억달러에서 2030년 590억달러로 약 2배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SDV를 위한 기반 형성은 2030년까지 완료될 것으로 예상되나 OEM별 특성에 따라 SDV로의 전환 경로는 상이할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전통적 자동차 강국인 일본의 OEM 업체들이 이런 변화에 5∼6년 정도 뒤처져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의 대전환=대한기계학회./ 디지틀조선TV
◇ '구독 경제' 차량 판매 후에도 계속 돈 번다
전통적으로 자동차의 가치와 가격은 엔진, 변속기, 차체 같은 하드웨어에 의해 결정됐다. 하지만 SDV 시대에는 제동, 조향, 주행 보조, 편의 기능까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개선할 수 있다. 마치 스마트폰이 앱 업데이트로 새로운 기능과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SDV가 완성차 업계의 새로운 캐시카우로 주목받는 이유는 명확하다. 기존 비즈니스 모델이 '차를 한 번 팔고 끝'이었다면 SDV는 '차량 판매 후에도 지속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테슬라는 이 모델의 선구자다. 완전자율주행(FSD) 기능을 월 199달러(약 28만원)에 구독 서비스로 제공하며 차량 판매 후에도 지속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다.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주행 거리 증가, 가속 성능 향상 등도 제공하며 한 번 구매한 차량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높이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이 혁신을 일으키는 영역들=삼일회계법인. /디지틀조선TV
현대차그룹도 FoD(Features on Demand) 서비스를 통해 이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기아 EV9에 적용된 이 서비스는 차량에 이미 탑재된 하드웨어 기능을 소비자가 필요할 때 소프트웨어로 활성화해 사용할 수 있게 한다. 무선 통신 기술로 차량 내 소프트웨어를 제어해 자동차 기능을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이다. 스마트폰에 앱을 설치하는 것처럼 자동차에 원하는 기능을 구매해 적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서비스다.
BMW는 열선 시트, 어댑티브 서스펜션을, 메르세데스-벤츠는 후륜 조향 기능과 출력 향상 소프트웨어를 구독형으로 제공하고 있다.
현대모비스 최근 5세대(5G) 무선통신 기반 내장형 텔레매틱스 제어기(MTCU) 개발에 착수했다. 텔레매틱스는 자동차에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해 운전 경로 안내, 사고 및 도난 감지, 원격 제어 등 기능을 제공하는 운전자 편의 기술이다. 기존 4G 통신으로는 차량 내 무선 업데이트(OTA), 카투홈 서비스(차량과 스마트홈 연결), 인포테인먼트 콘텐츠 스트리밍 등 기본적인 서비스만 가능했지만, 5G로는 고정밀 지도 서비스, 자율주행 원격제어, 초고화질 스트리밍 등 고도화된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자동차 기능 구독 서비스 ‘FoD(Feature on Demand)’를 설명한 자료 이미지. /현대자동차그룹 제공
◇ 넘어야 할 산도 만만치 않다
SDV가 완성차 업계의 확실한 수익원이 되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가장 큰 장벽은 소비자 저항이다. 과거 BMW가 열선 시트 구독 서비스를 시도했다가 전 세계 소비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철회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미 차량에 탑재된 하드웨어를 소프트웨어로 잠가두고 추가 비용을 요구하는 방식에 대해 소비자들은 "이중 과금"이라고 비판했다.
기술적 한계와 복잡성도 존재한다. SDV 상용화를 위해서는 소프트웨어를 뒷받침하는 센서, 통신, 새로운 아키텍처(설계)가 필수적이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차량 한 대에 이미 1억줄 이상의 소프트웨어 코드가 탑재되고 있으며 2030년에는 약 10억줄 이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소프트웨어 복잡성이 크게 높아지며 오류 발생 가능성도 증가하게 된다.
또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인한 차량 결함이나 보안 문제도 리스크 요소다. 테슬라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200만대 이상의 리콜 문제를 해결한 바 있지만 반대로 OTA 업데이트가 새로운 오류를 발생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결국 핵심은 '고객 가치'
SDV가 완성차 기업의 캐시카우가 되기 위해서는 '고객에게 얼마나 명확한 가치를 제공하느냐'가 관건이다. 차량 구매 후에도 지속적인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성능이 개선되고,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는 등의 소비자 경험 제공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SDV는 독자적인 소프트웨어 역량이 없으면 하청 기업으로 전락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독자적인 SDV 구축에 사활을 걸고 있다"며 "OTA(무선 업데이트), 텔레매틱스, 디스플레이, 인공지능, 자율주행 등이 모두 융합돼 작동하는데, 이 모든 것의 베이스에 SDV가 구현돼야 한다"고 말했했다.
다만 김 교수는 당면 과제도 지적했다. "문제는 SDV 구현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다 보니 차량 가격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라며 "초기에는 상당 기간 고가 차량 중심으로 가격이 상승할 것이고, 가성비에 민감한 소비자들의 부정적 반응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런 고급 옵션들이 보편화돼 가격이 저렴해지면 정착하기 시작할 것"이라며 "오래 쓰면서 점점 똑똑해지는 시스템의 차량을 갖추기 위해서는 SDV가 필수적인 기본 요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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