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47대 미국 대통령
19세기 야만적 ‘함포외교’가 최근 미국에 의해 재현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른바 '돈로 독트린'을 앞세워 중남미에 대한 배타적 영향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한국, 일본, 유럽 등 핵심 우방국들을 향해서는 방위비 증액과 관세 폭탄이라는 양날의 검을 휘두르고 있다. 미국 제조업 부활과 국가 부채 해결이라는 명분은 정당해 보이지만 ‘글로벌 리더십의 포기’가 불러올 파장은 만만치 않다.
자유주의 국제질서 수호를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미국의 ‘고립주의’가 결국 부메랑이 돼 미국을 공격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전 미국외교협회 회장 리처드 하스(Richard Haass)는 미국이 국제 질서의 보루 역할을 포기할 때 발생하는 '권력의 진공' 상태를 경고했다. 그는 “미국이 빠져나간 자리는 민주주의나 자유가 채우는 것이 아니라, 혼란과 지역 패권국들의 각자도생이 채우게 될 것”이라며 “이는 결국 미국의 안보 비용을 장기적으로 폭증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브루킹스 연구소 수석연구원 로버트 케이건(Robert Kagan)은 미국이 전 세계에 제공해 온 ‘안보’라는 공공재가 무너질 때 글로벌 무역 자체가 불가능해질 것임을 지적했다. 그는 “정글이 다시 자라나고 있다. 미국이 질서 유지를 멈추면 세계는 다시 약육강식의 시대로 회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전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Condoleezza Rice)는 “고립주의는 미국의 안보와 번영에 도움되지 않는다”며 “동맹을 위협하는 방식의 ‘거래적 외교’는 수십 년간 쌓아온 미국의 도덕적 권위와 신뢰자본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미국의 고립주의가 초래할 부메랑은 다음 세가지다. 첫째, 동맹의 이탈과 적대 세력의 부상이다. 미국이 관세와 안보를 무기로 우방을 압박하면서 동맹국들은 더 이상 미국을 신뢰할 수 없는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자체 핵무장 논의를 시작했고 유럽은 독자적 방위 체계 구축에 나섰다. 이 틈을 타 중국과 러시아는 자신들만의 블록을 형성해 ‘포스트 아메리카’ 시대를 앞당기려 하고 있다.
둘째, 글로벌 경제 네트워크의 붕괴다. 트럼프식 보호무역주의는 단기적으로 미국 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이 주도해 온 자유무역 질서가 붕괴되면 글로벌 공급망이 파편화돼 전체적인 비용이 상승한다. 이는 결국 미국 물가 상승과 수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다.
셋째, '팍스 아메리카나' 프리미엄의 상실이다. 달러화가 기축통화로서 지위를 유지하고 미국이 저금리로 막대한 부채를 조달할 수 있는 이유는 세계 질서를 관리하는 미국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미국이 세계 조정자 역할을 포기하고 일개 지역 패권국으로 전락하면 시장은 더 이상 미국에 특권을 부여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는 고립주의가 어떤 참혹한 결과를 낳았는지 명확히 보여준다. 1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은 먼로주의를 내세워 국제연맹 가입을 거부하며 유럽의 군비 경쟁과 파시즘 창궐을 방치했다. 그 결과 2차 세계대전이라는 대재앙이 발생했고, 미국은 훨씬 더 많은 피와 돈을 희생해야만 했다. 보호무역도 마찬가지다. 1929년 미국은 자국 제조업 보호를 위해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제정하고 수입관세율을 59.1%까지 올렸다. 그 결과 세계적인 보복 관세 전쟁이 촉발돼 글로벌 무역량이 60% 이상 급감하고, 대공황은 더욱 심화됐다.
트럼프의 ‘고립주의’ 노선이 당장의 지지층 결집과 경제 지표에 도움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미국이 지난 80년간 누려온 유례없는 번영은 세계 질서를 주도하며 얻은 ‘리더십 배당금’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미국은 약육강식 생태계의 포식자가 아닌 상생 생태계의 파수꾼이 돼야 한다. 다소 늦더라도 그것이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실현의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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