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혁의 글로벌인사이트] 사나에노믹스와 영국 '트러스 쇼크'

정상혁 기자 ㅣ digihyuk@chosun.com
등록 2026.02.19 11:14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18일 중의원 총리 지명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며 105대 총리에 취임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개인 SNS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지난 18일 소집된 특별 국회에서 총리로 재선출됐다. 그는 지난 중의원 총선에서 일본 재건 청사진을 단순하고 명료한 언어로 예고한 바 있다. ‘다카이치 2기’의 경제정책은 다음 네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양적완화 통화정책 유지다. 다카이치 총리는 일본 경제가 아직 정상화되지 않아 금리 인상이나 긴축은 성장의 싹을 꺾을 수 있다고 본다.

둘째, 소비세 인하를 포함한 감세 확대다. 일본의 장기 경기침체 원인을 내수 부진에서 찾고 소비를 살리기 위해 소비세 부담을 줄이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식료품 소비세율 2년간 제로’ 정책이 거론되고 있다.

셋째, 재정 확대를 통한 성장 유도다. 인프라 투자, 방위비 증액, 첨단 산업 지원 등 국가 주도의 성장 전략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넷째, 국방 강화와 기술 자립이다. 일본을 둘러싼 안보 위기를 강조하며 방위산업 육성, 첨단 기술 투자, 공급망 재편을 통해 ‘강한 국가’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과거 총리들의 우유부단함에 질린 일본 유권자들은 다카이치 총리의 선명하고 공격적인 국가 재건 구상에 열광하고 있다. 반면 다수의 국제 경제 기관 및 전문가들은 ‘강한 일본’의 구호 뒤에 숨은 취약한 숫자와 불안정한 구조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그들은 재정의 한계를 논하며 ‘사나에노믹스’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던진다. 일본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의 국가부채를 안고 있지만 제로에 가까운 낮은 금리와 내국인 중심 국채 매입 구조로 가까스로 버텨왔다. 문제는 감세 정책이 그 버팀목을 약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IMF가 일본 정부를 향해 “소비세 인하를 피해야 한다”는 취지의 경고를 낸 것은 의미심장하다. 소비세는 일본 정부가 가진 몇 안 되는 안정적 재원이다. 그 소비세를 깎는 순간 세계는 일본의 재정에서 마지막 안전장치가 풀렸다고 해석할 것이다. 다카이치 총리의 정책은 경제 활성화의 처방일 수 있지만 국제사회는 그것을 재정 기반 약화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국제 금융시장은 이미 ‘정치적 감세’가 채권시장 위기를 부른 사례를 경험한 바 있다. 2022년 영국의 리즈 트러스 정부는 대규모 감세안을 발표했지만 재원과 로드맵이 부실했던 탓에 시장은 즉각 국채를 투매했다. 파운드는 급락했고 국채 금리는 급등했으며 결국 트러스 총리는 취임 45일만에 사임했다. 감세와 재정 확대가 선거 구호로는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지만 채권시장에는 ‘정책이 통제되지 않는다’는 공포로 읽힐 수 있다.

금융시장에선 숫자보다 신뢰가 중요하다. 신뢰가 깨지면 금리와 환율은 정치가 통제할 수 없는 속도로 움직인다. 일본이 오랫동안 누려온 ‘안정 프리미엄’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 사나에노믹스의 가장 큰 리스크다. 정부와 일본은행(BOJ)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다카이치 총리는 일본 경제가 아직 긴축을 감당할 만큼 강하지 않다고 여겨 통화완화 정책에 적극적이다. 설득력도 있고 방향도 맞지만 시장이 불안해 하는 것은 독립성이다.

만약 정부가 일본은행에 금리 인상을 막거나 국채 매입을 유지하도록 압박한다면 시장은 이를 ‘재정 지배(fiscal dominance)’로 인식한다. 물가 안정을 위해 독립적이어야 할 중앙은행이 정부 부채 관리를 위한 하청기관이 돼선 안 된다. 세계 금융시장은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여부보다 ‘다카이치 2기’가 금융을 쥐락펴락할 것인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나에노믹스 비관론자들이 특히 우려하는 시나리오는 재정확대와 양적완화가 엔화 가치 하락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일본은 에너지와 식료품을 대규모로 수입하는 국가다. 엔저는 수출기업에는 이익이지만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국민 삶을 팍팍하게 만든다. 일본 국민이 체감하는 생활물가 상승은 이미 정치적 부담이 된 지 오래다. ‘다카이치 2기’가 일본 재건의 깃발을 흔드는 순간 국민들이 가장 먼저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강한 일본’이 아닌 ‘비싼 일본’이 될 수도 있다.

일본이 진짜로 강해지려면 노동시장 유연화, 생산성 혁신, 사회보장 구조 변화, 규제 완화, 여성·고령 인력 활용 확대, 이민 정책 등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그러나 개혁은 정치적으로 고통스럽고 저항도 크다. 반면 양적완화와 감세는 압도적 다수당 입장에서 매우 수월하고 지지율 상승에도 효과적이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다카이치 총리의 경제 구상은 ‘성장 전략’이 아닌 ‘정치 전략’으로 의심받는다. 정치가 국민에게 꿈을 안겨주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시장은 냉정해서 항상 꿈보다는 계산서를 먼저 본다.

다카이치 총리는 일본 국민에게 ‘다시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줬다. 그것은 정치 지도자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다. 그러나 국제 금융시장은 ‘다시 강해질 일본’이 아닌 ‘이미 너무 큰 부채를 가진 일본’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진정 일본 재건을 원한다면 ‘다카이치 2기’ 정책은 단기 효과를 위한 감세와 양적완화가 아닌 ‘구조 개혁’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세계는 다카이치 총리의 강한 일본을 만들겠다는 ‘정치적 확신’이 아닌 그 확신을 뒷받침할 재정적 근거와 구체적 청사진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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