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의회는 지난 3월31일 호르무즈 해협 통과 선박에 통행료를 부과하는 계획을 승인했다.
1956년 10월, 수에즈 전쟁은 겉으로 보기엔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이스라엘의 완승으로 끝난 전쟁이었다. 이집트군은 빠르게 밀렸고, 수에즈 운하는 다시 서방의 통제 아래 들어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된 지 불과 며칠 만에 영국과 프랑스는 철군을 강요당했다. 그 압박의 주체는 다름 아닌 미국과 소련이었다. 금융 제재와 외교적 압박 앞에서 두 유럽 제국은 자신들이 더 이상 '독자적 패권국'이 아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수에즈 운하는 가말 압델 나세르가 이끄는 이집트의 손에 남았다.
이 사건은 단순한 전쟁이 아닌 세계 권력 구조의 전환점이었다. 그 후 국제질서에서 영국과 프랑스는 2선으로 밀려났고 미국과 소련이 냉전의 양대 축으로 자리 잡았다. 수에즈 전쟁은 군사적 승리가 패권 유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교훈을 남겼다. 패권은 경제력, 동맹, 국제적 정당성이라는 보이지 않는 기반 위에서 유지된다.
지난 2월28일 발발한 미국-이란 전쟁으로 세계는 지금 심각한 균열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은 압도적 군사력을 바탕으로 이란에 타격을 가했지만 전쟁의 본질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문제는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고 글로벌 에너지 시장은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다.
그런데 정작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 미국은 "이란서 2~3주 내 아주 떠날 것"이라며 발을 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전술적 후퇴가 아닌 전략적 피로의 신호로 읽힌다. 전쟁을 끝까지 밀어붙일 정치적 의지와 국제적 지지가 부족해진 것이다.
파이낸셜 타임즈는 지난 29일 칼럼에서 "이란 전쟁이 단순한 지역 분쟁이 아닌 글로벌 패권 경쟁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중동에서 군사적 개입을 지속하면서도 결정적인 질서 재편을 이루지 못하는 사이 중국은 비용을 치르지 않고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중동에서 두 강대국의 전략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미국은 여전히 항모전단과 공군력, 그리고 동맹 체제를 통해 질서를 유지하려 한다. 이런 방식은 막대한 비용을 요구하며, 동시에 현지 반감을 키운다.
반면 중국은 군사 개입 대신 에너지 계약, 인프라 투자, 외교 중재를 통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 정상화 중재에서 보듯 중국은 '갈등의 당사자'가 아니라 '거래의 파트너'로 등장하고 있다.
미국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싸우는 동안, 중국은 질서를 활용해 이익을 쌓고 있는 것이다. 이 차이는 결정적이다. 전쟁은 비용을 낳지만, 거래는 네트워크를 만든다. 패권은 결국 네트워크 위에서 작동한다.
훗날 역사가 증명하겠지만 미국은 지금 1956년의 영국과 같은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군사적으로 우위에 있는 미국은 현재 외교·경제적 제약 속에서 전쟁의 성과를 정치적 승리로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다.
수에즈 전쟁 이후 세계는 금방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그 사건은 분명히 한 시대의 끝을 알리는 신호였다. 오늘의 이란 전쟁 역시 마찬가지일 수 있다. 미국은 여전히 달러 패권, 글로벌 금융 시스템 그리고 광범위한 동맹 네트워크를 보유한 세계 최강국이지만 그 힘을 유지하는 방식은 비효율적으로 변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충돌을 피하면서도 영향력을 확장하는 새로운 방식을 실험하고 있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그러나 종종 닮은 모습으로 돌아온다. 수에즈의 그림자가 지금 호르무즈 해협 위에서 다시 어른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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