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틀조선TV 유튜브 바로가기

유가 뛰고 나프타 막히고…중동 사태에 석유화학·건설·자동차업계 촉각

임윤서 기자 ㅣ seoo@chosun.com
등록 2026.04.03 17:28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파로 원유·나프타 수급 불안
석유화학·자동차 등 제조업 비용 압박 확대
중동 프로젝트·소비시장 위축 가능성도 제기

이란 전쟁 발발 이후 차량 통행이 감소한 지난 3월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 시내 모습. /디지틀조선TV 임윤서 기자

중동 전쟁 장기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석유화학·건설·자동차 등 산업 전반에 ‘전쟁발 원가 쇼크’가 확산되고 있다.


국제 유가와 항공유 가격이 급등하면서 산업군 전체에 원재료 비용 상승 압력이 커지고 있다. 특히 중동산 원유와 석유화학 원료 의존도가 높은 한국 기업들은 생산비 상승과 공급망 불안에 대응하기 위해 비상 대응에 나섰다.


지난 1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앞으로 2~3주 내에 극도로 강력한 타격을 가할 것이며 이란을 석기시대로 돌려보낼 것"이라고 선언했다. 전쟁 장기화를 시사한 이 발언은 국제 원자재 시장에 즉각적인 파문을 일으키며 한국 산업계의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지난 2월 28일 이란을 선제 공습하면서 시작된 이번 전쟁은 한 달여 만에 국제 에너지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달 12일 "현재의 중동 전쟁은 글로벌 석유 시장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공급 교란을 초래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쟁 이전 전 세계 원유·액화천연가스 해상 수송량의 약 20%인 하루 약 2000만 배럴의 원유와 석유 제품이 통과하던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 왕래가 사실상 중단되면서, 걸프 산유국들은 하루 최소 1000만 배럴 이상 원유 생산을 감축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에너지기구 회원국들은 지난달 11일 사상 최대 규모인 4억 배럴의 비축유 방출에 합의했지만, "분쟁이 신속히 해결되지 않는 한 이는 단기적 완충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에너지 제품별 중동산 수입 비중 및 주요 4개국 수입 비중(중동산 중) 추이/한국무역협회, 디지틀조선TV

한국은 이 같은 구조적 충격에 가장 직접적으로 노출된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중동산 원유 수입 의존도는 70.7%에 달하며, 이 가운데 약 99%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반입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상황은 호르무즈 해협 통행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는 단계까지 위협이 높아진 상태”라며 “이란의 석유 공급이 실제로 차단될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 공급 부족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동 공급망이 흔들리면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특히 일본은 원유 도입처 다변화와 알래스카 가스 개발 등 에너지 확보 전략을 이미 추진해왔지만 한국은 상대적으로 뒤따라가는 상황이어서 충격이 더 클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 석유화학 산업은 이번 위기의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은 업종으로 평가된다. 국내 석유화학 공장은 중동산 나프타를 주원료로 하는 나프타 분해시설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글로벌 에너지·석유화학 가격 정보업체 ICIS에 따르면 한국은 2025년 총 2670만 톤의 나프타를 수입했으며 이는 국내 소비량의 45%에 해당한다. 이 가운데 77%가 중동산이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해당 물량의 절반 이상이 차단됐고, 나프타 가격은 한 달 새 두 배 가까이 급등했다.


산업연구원은 국제 유가가 10% 상승할 경우 석유제품 산업의 생산 비용은 6.30%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화학제품 생산 비용도 1.59%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월 25일 전남 여수산단 내 NCC 2공장/뉴스 1

결국 LG화학은 지난 23일 여수 국가산업단지 내 NCC 2호기 가동을 중단했다. LG화학 측은 나프타 원료 수급 차질로 인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업계 전반에서도 가동률을 평소의 약 65% 수준으로 낮추는 '보존 운전'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도 긴급 대응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7일 자정을 기해 나프타 수출을 5개월간 전면 금지했다. 이어 31일에는 4695억 원 규모의 나프타 수입단가 차액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중동 분쟁 이후 상승한 나프타 수입단가의 차액을 일부 지원해 대체 나프타 도입에 따른 기업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다.


자동차 업계에도 유가 상승은 여러 경로를 통해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국제 유가가 10% 상승할 경우 고무·플라스틱 업종의 생산 비용은 0.46%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 부품 가운데 고무·플라스틱 소재 비중이 상당한 점을 고려하면 부품 조달 비용이 연쇄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이미 진행 중이던 원자재 가격 상승까지 겹쳤다. 기아는 지난 1월 2025년 4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백금·팔라듐·로듐 등 귀금속 가격 상승이 자사 원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들 금속은 촉매변환기의 핵심 소재로, 글로벌 공급망 차질이 자동차 생산 원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해 11월 아랍에미리트 수도 아부다비에서 술탄 아흐마드 알 자베르 UAE 첨단산업기술부 장관 겸 ADNOC 사장과 면담하고 있다./산업부 제공

이와 함께 중동 지역에서 추진 중인 약 100조 원 규모의 프로젝트와 현지 내수시장 침체에 따른 수출 둔화 가능성도 우려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 기업의 참여와 수주 확대가 핵심인 사우디아라비아·UAE 등 중동 국가들과 추진 중인 사우디아라비아 ‘네옴시티’, UAE ‘스타게이트’ 등 AI·신재생에너지·플랜트·수소 분야의 대형 경제협력 프로젝트가 지연되거나 좌초될 가능성에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중동 스마트폰 시장 1위인 삼성전자, 사우디아라비아 자동차 시장 2위인 현대차, 최근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는 K-뷰티·K-푸드 등 소비재 시장의 침체 가능성도 제기되면서 대응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만 중동 내수시장 자체가 급격히 붕괴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양 교수는 “현재 상황이 민간인의 생활 기반이 붕괴될 정도의 전면전 단계는 아니기 때문에 중동 소비시장 자체가 크게 위축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오히려 최악의 경우 유가 상승으로 일부 국가가 어려움을 겪더라도 미국 등 에너지 생산국 경제가 반사 이익을 얻으면서 글로벌 시장은 일정 부분 균형을 찾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전쟁 전개와 관련해 양 교수는 단기 협상 가능성도 언급했다. 양 교수는 “현재 발언 수위는 강하지만 실제로 최대 수준의 공급망 교란이 발생할 가능성은 아직 제한적”이라며 “이란이 협상 국면에 들어가거나 상황이 조기에 안정된다면 호르무즈 해협 통행 문제 역시 빠르게 해소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어 “짧게는 3개월, 길어도 6개월 정도 에너지 물량 확보가 이뤄진다면 한국 경제 역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범위”라고 말했다.

최신기사


    최신 뉴스 더보기




        많이 본 뉴스

          산업 최신 뉴스 더보기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