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주석의 정상회담 내용을 대서특필한 5월14일자 인민일보 1면 / 인민일보 갈무리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지난 14일 미중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를 향해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중국과 미국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넘어 대국 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 수 있느냐, 글로벌 도전에 함께 대응해 세계에 더 많은 안정성을 불어넣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며 "이것들은 역사적 질문, 세계적 질문이라고 할 수 있으며 나와 당신이 함께 시대의 답안을 써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국제정치학자 그레이엄 엘리슨은 2017년 저서 <예정된 전쟁>에서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란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신흥 강대국이 부상하면 기존 패권국이 두려움을 느껴 결국 전쟁으로 치닫는다"며 "과거 500년 간 16개 사례 중 12개가 전쟁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이에 일부 전문가들은 전쟁 없이 끝난 나머지 4개 사례 가운데 19세기 말 영국과 미국 관계를 예로 들며 미·중 관계도 관리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시 주석 또한 이 연장선에서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극복한 새로운 대국 관계를 언급했겠지만 지금의 미·중 관계는 역사 속 그 어떤 패권 경쟁보다 훨씬 복합적이고 위험한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19세기 말 패권국 영국과 신흥 강대국 미국은 같은 언어, 문화 그리고 체제를 공유했다. 당시 영국은 미국을 적이 아닌 장기적으로 함께 갈 수 있는 파트너로 인식했다.
반면 오늘날 미국과 중국은 정치 체제부터 정면으로 충돌한다. 미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앞세우고 있고 중국은 공산당이라는 일당 지배 체제와 국가 주도 경제 모델을 견지하고 있다. 이에 미국 보수 진영에서는 중국을 단순 경쟁국이 아니라 미국 중심의 자유시장경제 질서를 뒤엎으려는 '체제 경쟁자'로 규정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경쟁 영역이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는 점이다. 과거엔 패권 경쟁이 군사력, 식민지, 무역 등에 집중된 반면 현재 미·중 충돌은 첨단기술 주도권 경쟁으로 확대됐다. 반도체 공급망, 인공지능 알고리즘, 위성 네트워크, 2차 전지, 희토류, 양자역학, 우주 패권까지 안 부딪히는 곳이 없다.
특히 인공지능은 단순 기술 경쟁이 아닌 미래 첨단 무기 및 정보 통제 체계까지 연결돼 일방이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이 중국 반도체 산업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워싱턴은 이미 중국의 기술 굴기를 경제 문제가 아닌 안보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무엇보다 현재 양국 간의 가장 위험한 변수는 대만이다. 이번 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만 문제를 잘못 다루면 충돌과 대결로 이어질 수 있다"며 작심 경고했다. 대만 문제는 단순 영토 분쟁이 아닌 중국 공산당 체제의 정통성과 직결된 문제다. 시진핑은 공개적으로 '조국 통일'을 자신의 역사적 과업으로 강조해 왔다.
반면 미국은 반도체 산업과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 차원에서 대만의 전략적 가치를 포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TSMC를 보유한 대만이 중국 영향권으로 넘어갈 경우 미국의 패권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과거엔 미·중 경제 교류가 활성화되면 상호의존성이 강해져 전쟁을 막는 안전핀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최근엔 미국이 공급망 재편으로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중국은 내수 시장을 확대하고 기술 자립도를 높여 점점 요원한 얘기가 됐다.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반드시 예정된 운명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을 피하려면 양국 모두 상대를 완전히 굴복시킬 수 있다는 환상부터 버려야 한다. 지금의 워싱턴과 베이징이 과연 그 정도의 전략적 절제와 인내심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현재 분위기는 협력보다 장기 대결 국면에 가깝다. 시진핑의 '새로운 대국 관계' 제안에서 상생을 위한 진정성이 아닌 높아진 위상 만큼 대우해 달라는 2인자의 엄포가 느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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