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성과급 개편안 재확인·대화 요청에도 노조 “6월 7일 이후 협의”
TSMC·AMD는 주식·장기 인센티브 확대…“삼성은 사업 구조 자체 달라”
전문가들 “반도체 업황 변동성 큰 산업 특성 감안해야”
지난달 23일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에서 열린 ‘4·23 투쟁 결의대회’에서 삼성전자 노조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총파업을 예고한 삼성전자 노조와 사측의 갈등이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 의 사업구조를 고려하지 않은 노조의 주장이 이어지면서 국가 핵심 산업의 축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는 15일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지부(이하 초기업노조)에 공문을 보내 기존 성과급 제도 개편안을 재확인하며 대화를 요청했지만, 최승호 위원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공보방에서 "6월 7일 이후 협의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노조는 오는 21일부터 6월 7일까지 예정된 18일간 총파업 계획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사측은 같은 날 오후 노사 갈등과 관련해 국민과 정부에 공개 사과하고, 최 위원장을 직접 만나기 위해 평택으로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총파업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업계에서는 노조 요구의 현실성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노조가 요구하는 보상 체계는 글로벌 반도체 업계 기준에서 어느 정도 수준일까.
최승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이 13일 경기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조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 2차 심문 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 성과급 투명성 강화 나선 삼성전자…노조는 “영업익 15% 보장해야”
삼성전자의 기존 OPI(초과이익성과급) 제도는 사업부 실적이 연초 목표를 초과할 경우, 초과 이익의 20% 범위 내에서 개인 연봉의 최대 50%까지 연 1회 지급하는 구조다. 산정 기준은 EVA(경제적부가가치)를 기반으로 하지만, EVA 자체가 외부에 공개되지 않아 직원들이 성과급 규모를 직접 예측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이에 삼성전자는 지난 3월 중앙노동위원회 조정 과정에서 이런 불투명성을 개선하겠다며 새로운 방안을 제시했다. 성과급 재원을 영업이익의 10% 또는 EVA의 20% 가운데 선택해 공개하고, 기존 OPI 제도는 유지하되 별도의 특별보상 제도를 신설하겠다는 내용이다. 특히 특별보상에는 상한을 두지 않겠다는 점도 포함됐다.
그러나 노조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10%’라는 숫자와 ‘특별보상’의 성격이다. 노조는 영업이익의 15% 수준을 요구하고 있는데다, 특별보상 제도가 단체협약이 아닌 사내 규정 형태로 운영될 경우 회사 판단에 따라 언제든 변경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결국 노조가 요구하는 ‘제도화’는 성과급 규모뿐 아니라 지급 기준 자체를 단체협약으로 고정하겠다는 의미에 가깝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2025년도 사업보고서(2026년 3월 공시) 기준 임직원 수. /각사 공시
◇ 직원 13만명 삼성의 고민…SK하이닉스식 성과급 공식 적용 어려운 이유
업계에서는 이번 삼성전자 성과급 갈등의 출발점으로 SK하이닉스 노사 합의를 지목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SK하이닉스 노사는 지난해 9월 영업이익의 10%를 초과이익분배금(PS) 재원으로 고정하고, 기존 기본급 1000%였던 성과급 상한도 폐지하는 내용의 10년 장기 협약을 체결했다. 영업이익과 직원 수가 공시되기 때문에 성과급 규모를 누구나 계산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제도가 주목받은 이유는 ‘예측 가능성’ 때문이다. 영업이익과 직원 수가 공개되기 때문에 직원들이 성과급 규모를 직접 계산할 수 있다. 2024년 SK하이닉스 영업이익은 47조2063억원, 직원 수는 약 3만3500명이었다. 영업이익의 10%를 단순 적용하면 약 4조7206억원 규모의 재원이 마련되며, 이를 직원 수로 나누면 1인당 약 1억4000만원 수준이 된다.
삼성전자 노조 역시 이런 구조를 요구하고 있다. 다만 차이가 있다. SK하이닉스는 영업이익의 10%를 기준으로 삼았지만, 삼성전자 노조는 15%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양사의 구조적 차이다. 삼성전자 국내 직원 수는 12만8881명으로 SK하이닉스(3만4549명)의 3배를 웃돈다. 특히 반도체를 담당하는 DS부문 인력만 7만8064명에 달한다. 단순 계산으로도 동일한 비율을 적용했을 때 삼성전자가 부담해야 하는 총액은 훨씬 커질 수밖에 없다.
사업 구조도 다르다.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반도체 중심의 단일 사업 구조지만, 삼성전자는 DS부문과 DX부문으로 나뉜 복합 구조다. 만약 DS부문에만 ‘영업이익 15%+상한 폐지’를 적용할 경우 DX부문과의 보상 체계 차이가 새로운 갈등 요인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가총액 기준으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단순 비교가 어렵다는 평가다. 15일 기준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약 158조1418억원, SK하이닉스는 약 129조6405억원이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훨씬 더 많은 주주와 사업 이해관계 속에서 움직이는 만큼 성과급 제도 변화가 미치는 영향 역시 훨씬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TSMC는 인센티브 규정에서 분기별 현금 보너스와 이익 공유 제도가 직원 보상과 동기 부여, 주주와의 이해관계 일치를 목표로 한다고 설명한다. /TSMC 제공
◇ TSMC는 달랐다…‘영업익 연동’보다 장기 보상에 무게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성과급 제도는 어떤 모습일까. 글로벌 파운드리 1위 TSMC의 보상 체계는 삼성전자 노조의 요구 방향과는 결이 다르다. TSMC의 2025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회사는 정관을 통해 해당 연도 이익의 최소 1%를 직원 보상 재원으로 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실제 지급 규모는 운영 성과와 대만 반도체 업계 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된다.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고정적으로 지급하는 방식과는 거리가 있다.
TSMC 보상 체계의 핵심은 현금 성과급보다 장기 보상에 있다. 회사는 2021년부터 제한조건부 주식 보상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임원과 핵심 인재에게 주식을 지급하되, 최소 3년의 베스팅(vesting) 기간을 충족해야 실제 소유권이 완전히 이전되는 구조다. 단기 현금 보상보다 장기 성과와 기업 가치 상승에 무게를 둔 셈이다.
TSMC는 2025년부터 연간 장기 인센티브 보너스 제도도 도입했다. 해당 제도는 단순 영업이익 연동형이 아니다. 개인 성과뿐 아니라 매출 성장률, 매출총이익률, 자기자본이익률(ROE), 동종 업계 대비 총주주수익률(TSR), ESG 성과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보상 규모를 산정한다. 환경(E)·사회(S)·지배구조(G) 지표까지 성과급 산정 기준에 포함된다는 점도 특징이다.
결국 TSMC의 보상 철학은 단기 현금 보상보다 장기 주주가치와 기업 경쟁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회사·주주·직원이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영업이익의 15%를 현금으로 고정 지급하자는 삼성전자 노조 요구와는 접근 방식 자체가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AMD는 연간 성과 평가 사이클에 따라 제한조건부 주식(RSU) 보상과 은퇴 자금 저축 플랜 제도를 운영 중이다. /AMD 제공
◇ 단기 성과급보다 장기 보상에 무게…AMD식 보상 체계의 핵심
다른 미국 반도체 기업들도 단순 현금 성과급 중심의 보상 체계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대표적으로 AMD는 기본급 외에 연간 현금 보너스(AIP)를 지급하면서도, 장기 주식 보상을 핵심 축으로 운영하고 있다.
AMD 직원들은 성과 평가 결과에 따라 RSU(제한조건부 주식) 형태의 보상을 받는다. RSU는 일정 기간 근속하거나 성과 목표를 달성해야 최종 지급되는 구조다. 단기 현금 지급보다 장기적인 기업 가치 상승과 직원 보상을 연결하는 방식에 가깝다.
여기에 퇴직저축과 의료·보험 혜택까지 포함되면서 AMD의 보상 체계는 ‘현금+주식+복지’를 결합한 종합 패키지 형태를 띤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단순 성과급 비율보다 장기 인센티브와 복지 체계를 함께 설계하는 글로벌 반도체 업계 흐름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15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직원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 반도체 업황 변동성 큰데…삼성 성과급 갈등, 글로벌 기준과도 거리
글로벌 반도체 선도 기업들의 보상 체계를 고려하면 삼성전자 노조가 요구하는 방식은 오히려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TSMC는 영업이익의 고정 비율 배분 대신 재무성과·주주수익률·ESG 등을 반영한 복합 지표 기반 보상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AMD 역시 현금 보너스에 RSU(제한조건부 주식), 직원주식매입제도(ESPP), 퇴직저축 등을 결합한 장기 인센티브 중심 구조를 택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고정하는 단순 구조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는 메모리 반도체 중심의 단일 사업 구조와 3만4549명 규모의 인력 체계가 전제된 모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삼성전자 노조는 영업이익의 15%를 고정 제도화하고 상한까지 폐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DS부문 인력만 7만8064명으로 SK하이닉스 전체 직원 수의 2배를 넘는 데다, DX부문 5만817명과의 형평성 문제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 노조가 SK하이닉스식 ‘투명성’은 차용하면서도 보상 수준은 한층 더 높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특히 삼성전자처럼 사업 구조와 이해관계가 복잡한 기업에서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고정 비용처럼 제도화하는 방식은 경영 유연성을 크게 제약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TSMC와 AMD가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방향은 단기 현금 성과급 확대보다 회사와 직원의 장기적 이해관계를 연결하는 데 있다. 주식 보상과 장기 인센티브, 복합 성과 지표를 통해 기업 가치 상승과 직원 보상을 함께 설계하는 방식이다. 반면 삼성전자 노조는 현금 성과급 비율 확대와 상한 폐지를 핵심 요구로 내세우고 있다.
삼성전자가 ‘유연한 제도화’를 강조하는 이유 역시 반도체 산업 특수성과 연결된다. 반도체 업황은 사이클에 따라 수익 변동성이 극단적으로 큰 산업이다. 업황 악화 국면에서도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고정 비용처럼 지급해야 한다면 경영 부담이 급격히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대규모 인력을 보유한 DS부문에서는 이러한 구조가 향후 투자와 인력 운영 전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총파업 D-데이가 다가오면서 전문가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문송천 카이스트 명예교수는 삼성전자 노조의 요구안에 대해 “기업 차원을 넘어 국가 산업 경쟁력 측면에서도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는 수준”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파업은 시작 이후에는 감정과 조직 논리가 결합되면서 쉽게 종료되기 어려운 특성이 있다”며 “자칫 노사 모두 출구를 찾기 어려운 장기 대치 국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현재 국민 여론 자체가 이번 파업과 요구 수준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며 “SK하이닉스는 물론 글로벌 기업들과 비교해도 사업 구조와 인력 규모가 전혀 다른데, 하나의 기준만을 고집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사측이 대국민 사과까지 발표하며 대화 의지를 보이고 있는 만큼, 노조 역시 강경 대응만 반복하기보다 협상 테이블로 돌아와 현실적인 논의를 이어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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